반도 안 지났는데 '초과' 지출... 등골 휘는 5월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 ⑪] 작년, 재작년 5월도 이렇게 힘이 들었나

등록 2015.05.10 19:55수정 2015.05.10 19:5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한 지 13년. 서로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다르게 들리지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입니다. 그 남자 이야기는 남편 지용민 시민기자가, 그 여자 이야기는 아내 박보경 시민기자가 썼습니다. - 기자 말


[그 남자 이야기] 대책 없이 긍정적인 부부에게 찾아온 잔인한 5월

5월은 부담의 달? 설문조사의 질문 내용이 '5월 기념일 중 가장 부담스러운 날'이다. 이를 보도한 5월 8일자 뉴스 ⓒ ytn


아내와 나, 우리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물질적인 것에 큰 욕심이 없다. 행복은 마음 속에 있는 개념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 같은 환경이 천국일 수도, 지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그러하니 간혹 상황을 객관적이지 않고,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어떠한가. 웃음 꽃이 만발하니 그것으로 행복하지 않은가.

그런 우리에게도 5월은 힘든 달이다. 40대 가장에게 준비 없는 5월은 만만치가 않다. '등골브레이커'라는 표현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 단어를 백과사전에서는 '부모님의 등골을 부서트린다는 뜻으로 불효자를 의미하는 신조어'로 정의하고 있다. 경제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다. 가정의 달인 5월에 어쩌자고 행사는 이리도 많은 것인가.

먼저, 5월에는 기념일이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그것이다. 우선 앞의 두 기념일은 큰 출혈을 남긴 채 무난하게 지나갔다. 각각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이는 4월 중순부터 어린이날 선물을 노래 불렀다. 이번에는 특히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가 노래를 부르는 선물이 있었다. '요괴워치'라는 일본제 장난감이다. '또봇'시리즈에 열광하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이번에는 요괴였다. 별 다른 기능이 없음에도 가격대가 만만치가 않다.

초등학생인 큰 아이의 선물 역시 마트에 대량으로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다른 부모들도 경쟁적으로 사주는 것인데, 요즘 아이들 장난감 가격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대부분 맞벌이에 자식이 귀해서인지 마트에 늦게 가면 그나마 고가의 장난감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어린이날을 보내고 나니 곧이어 어버이날이 돌아왔다. 아내에게 양가 어른들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만 "현금이 최고다"는 대답을 들었다.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드려야 하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잠시 민망하더라도 지난해와 동일하게 최소한도로만 드리기로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상 5월 8일이 됐는데 아버지가 카카오톡으로 3남매와 배우자들, 총 6인을 초대해서 시중에 떠돌아 다니는 사진을 공유해주었다. '너 바쁠 것 같아서 어버이날 선물은 내가 알아서 샀다. 입금해라'는 메모와 함께 영수증이 보였다. 웃긴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맘의 부담이 있어서였는지 '저희는 입금했습니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웃으라고 공유한 사진이 분명했는데.

단기방학을 실시한 학교까지... 아빠의 부담은 커집니다

올해 5월이 조금 더 어렵게 다가온 이유는 휴일이 많기 때문이다. 연휴가 2차례나 있다. 5월초 징검다리로 5일 연휴가 있었고, 5월말에 석가탄신일을 포함한 3일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학교장 재량으로 단기방학을 실시했다. 나는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가족과 함께 속초로 여행을 다녀왔다.

5월은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평월에 비해 지출이 비약적인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아직 '스승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 요즘에는 이 날의 의미도 많이 바뀐 느낌이다. 학교보다 학원 선생님들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큰 아이도 두 군데 학원을 다닌다. 아내는 "선물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엄마들이 돈을 모아서 하자고 하면 거절하지는 못하리라.

아내에게 석가탄신일 연휴 때에는 여행을 가지 말고, 인근 사찰을 다녀오자고 말했다. 푸른 5월에 왜 떠나고 싶은 맘이 없겠는가. 그러나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 때문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지출했기 때문에 우리의 5월은 조기 마감된 느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옆에서 두 아이는 어린이날 선물을 가지고 놀고 있다. 한달 후에도 저 선물을 가지고 놀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양가 부모님들도 어버이날 선물에 대해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올해에도 부모 노릇, 자식 노릇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아내와 나는 그 누군가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작년 5월은, 재작년 5월도… 이렇게 힘이 들었나? 그렇게 5월이 지나고 있다.

[그 여자 이야기] 장난감 사줄 때마다 고민하는 엄마 이야기

5월 직장인들 허리휜다? 한 취업포털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월 기념일 비용'으로 평균 50만원을 계획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보도한 <머니투데이> 5월 1일자 ⓒ 머니투데이


이번에도 한 고개를 잘 넘겼다. 어린이 날도 어버이 날도 아무 탈없이 무사히 넘겼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집이라면야 걱정이 없겠지만 우리처럼 빠듯한 살림살이라면 '무슨 무슨 날'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사주고 싶은 것, 해드리고 싶은 게 왜 없겠냐만은 풍족하게 할 수 없다는 게 아이들에게, 부모님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은 몇 년째 동결된 상태다. 드리면서도 민망한 마음에 '나중에 여유 생기면 더 많이 드릴게요'라는 애교의 메시지를 꼭 남겨야 한다. 더 많이 드리고 싶지만, 더 좋은 것 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5월 초 긴 연휴를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들은 사실은 어린이 날 선물을 더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유치원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날 파티만으로 충분히 어린이 날을 지낼 수 있었는데 큰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어린이 날은 공식적으로 당당하게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인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보는 눈이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만큼 커진 것이다. 누나의 생각이 달라지니 동생은 '얼씨구나 좋다'하며 같이 달라졌다.

올 해도 모르는 척 넘기고 싶었으나 놀이터에서 겪고 있는 아이들의 쓸쓸함을 알게 된 후로는 이번만큼은 모르는 척 할 수 가 없었다. 일단 놀이터에서는 최신 유행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왕(?)이 된다. 그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리고 그 비슷한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그룹을 만든다.

장난감 주인이 인심 좋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다음에는 최신 장난감을 만져보기 위해서 애타는 기다림이 필수가 된다. 운이 좋으면 가지고 놀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 순서를 기다림으로 끝날 경우가 있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쨌는지 기다림에 지친 큰 아이는 자기가 가지고 나온 줄넘기를 하며 그 주위를 맴돈다. 그보다 속없는 작은 아이는 기다림 끝에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그 모습을 몇 번 지켜본 나로서는 이번에도 눈 감고 귀 닫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큰 맘먹고 손잡고 간 마트에서 아이들이 고른 장난감은 '헉'소리가 날 정도다. '이 사람들이 부모를 봉으로 아나'싶다. 눈치가 있는지 큰 아이가 고른 건 2만 원이 조금 넘었다. 작은 아이가 고른 건 만화로 방영이 되면서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장난감이었다.

오랜 품절 끝에 어렵게 발견하기도 한 것이어서 나 역시 신기하긴 했지만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 돈으로 중고서점에 가서 책이나 몇 권 샀으면 좋으련만 내 속을 알지 못하는 작은 아이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카드를 건네는 내 손은 살며시 떨렸다.

기죽이지 말아야지... 고가의 장난감은 누굴 위해 사준 것인가

그러면서 지난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고 내게 일러줬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역시 아이들 주변에는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일본제 공룡변신로봇은 품절사태를 거듭하면서 20만 원을 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과 5개월 만에 20만 원이 넘던 그 장난감은 아이들 기억 속에서 이름조차 지워졌다. 5만 원을 넘게 주고 산 우리 아이의 이번 장난감의 유통기한은 얼마만큼일까?

말귀를 알아듣는 큰 아이에게 '너의 인생을 살라'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네가 생각하는 진짜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건 사실 아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놀이터에서 쓸쓸히 돌아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이번만큼은 기죽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사준 장난감을 보면서 과연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지, 우리 가족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질문의 끝에 답은 없었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5월 #가정의달 #단기방학 #등골브레이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군산 갯벌에서 '국외 반출 금지' 식물 발견... 탄성이 나왔다
  2. 2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3. 3 광주 찾는 합천 사람들 "전두환 공원, 국민이 거부권 행사해달라"
  4. 4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두려움에 떨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