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잇따르는 롯데월드, '하인리히 법칙' 떠올려

[주장] 1:29:300의 법칙, 탈 많은 제2롯데월드에 적용한다면?

등록 2015.05.19 11:50수정 2015.05.1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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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19일 오후 3시 4분]

맨 처음 건축허가를 받을 때부터 시작해서 저층부 조기개장 그리고 공사중지 및 사용제한 이후 재개장에 이른 지금 이 순간까지, 각종 뉴스에 보도된 것들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논란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제2롯데월드(롯데월드타워)'. 이번에는 공사재개 일주일 만이자 재개장 사흘 만인 16일 전기합선으로 인한 화상 사고가 발생했다. 도대체 제2롯데월드 전체 공사기간에 총 몇 건의 사고가 일어났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롯데월드타워 2015년 1월, 한창 높이 올라가고 있는 롯데월드타워 ⓒ 정혁


# 제2롯데월드의 지난 2년간 사고 일지
- 2013년 6월 25일, 외벽 구조물 붕괴로 1명 사망·5명 부상.
- 2013년 10월 1일, 공사 구조물 추락으로 1명 부상.
- 2014년 2월 16일, 47층 컨테이너 박스 화재.
- 2014년 4월 8일, 냉각수 배관 작업 중 이음매 폭발로 1명 사망.
- 2014년 10월 26일, 롯데월드몰 5~6층 식당가 통로 바닥 균열.
- 2014년 10월 29일, 쇼핑몰 4층 금속장식의 1층 낙하로 1명 부상.
- 2014년 11월 4일, 명품관 8층 실내 천장 50cm 균열.
- 2014년 12월 3일, 롯데월드몰 아쿠아리움 균열·누수.
- 2014년 12월 10일, 롯데월드타워점 영화관 진동 발생(잠정 폐쇄).
- 2014년 12월 16일, 롯데월드몰 8층 콘서트홀 작업 중 추락 1명 사망.
- 2014년 12월 27일, 제2롯데월드 출입구 대형 유리문 넘어져 1명 부상.
- 2014년 12월 30일, 지하주차장 3~4층에서 대규모 균열 발견.


이외에도 엘리베이터가 여러 차례 오작동을 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고(2014년 10월~11월), 제2롯데월드 지하 버스 하차장에서 대형버스가 천장에 끼이는 황당한 사고(2014년 12월 24일)가 발생한 적도 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것만 사고 일지로 정리해도 이 정도인데 보도되지 않은 경미한 문제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재앙의 경고, 하인리히 법칙

제2롯데월드 사고 공중파 3사 메인뉴스 갈무리 - SBS(2013/06/25), MBC(2014/12/28), KBS(2015/05/15) ⓒ SBS, MBC, KBS


모든 재앙에는 크건 작건, 어떤 식으로든 일련의 조짐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난을 예측하고 피하기 위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점성술에서부터 동물의 움직임 그리고 최신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재앙의 전조를 탐지하고 해석하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물론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재난 발생 이전에 징후를 미리 알아차린다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시도들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실 최상의 경우는 재앙의 신호가 직접적으로 가시화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일 테고 일반적으로는 역사적인 경험과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난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순간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사람들이 힘을 합치는 게 보통이다.

그럼 최악의 경우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엄중하고 다양한 경고에도 그것을 무시한 채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럴 때 우리는 재앙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삼풍백화점이나 세월호를 포함해서 모든 참사의 역사가 분명하게 증명하듯, 재앙은 경고 없이 오지 않는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게 있다. 미국 보험사에 근무하던 하인리히라는 사람이 산업재해 사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알아낸 통계적 법칙인데,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하며, 산업재해가 발생해 중상자가 1명 나오면 벌써 그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가 발생했고 또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이미 300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법칙을 제2롯데월드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건물 메가기둥의 심각한 균열과 과도한 공기단축 시도, 계속해서 발생하는 인명사고와 교통지옥... 제2롯데월드는 인허가 과정에서부터 건설, 완공 계획까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경제공황의 경고, 마천루의 저주

롯데월드타워와 현대차 신사옥 건설 예정지 Daum 지도 갈무리 - 현대차 신사옥이 들어설 삼성동과 롯데 월드타워가 세워지고 있는 잠실동 일대 ⓒ Daum지도


롯데물산이 시행하고 롯데건설이 시공하는 제2롯데월드 사업은 초고층 랜드마크 건물(롯데월드타워, 2016년 말 완공 예정) 1개동과 에비뉴엘동, 쇼핑몰동, 엔터테인먼트동 등 8~11층짜리 상업용 건물 3개동(롯데월드몰)으로 구성된다. 제2롯데월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롯데월드타워(123층·555m)는 지난 3월 14일에 국내 건축물 가운데 최초로 100층 높이(416.35m)까지 올라갔다.

마천루는 보통 20~30층 오피스 빌딩 건축비의 3~4배 정도가 들 정도로 건축비가 비싸고 100층 이상 빌딩은 기본적으로 경제성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랜드마크'와 경기 활황에 대한 판타지가 상당 부분 작용하며 대부분 사업 과정에서 무리수가 따른다. 다들 알다시피 제2롯데월드 건설 과정 중에 많은 무리수와 특혜가 있었다.

애초에 허가부터가 나기 힘든 상황이었음은 물론이고, 건축 도중에도 주변의 싱크홀, 석촌호수의 수위 저하 및 악취, 비행기 충돌 우려, 교통대책 부실 문제 등이 계속해서 불거졌다.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라는 말도 있다. 1999년에 도이치뱅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렌스가 100년간의 사례를 분석해 내놓은 가설로서, 과거 사례를 보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 빌딩 건설 프로젝트는 주로 돈줄이 풀리는 통화정책 완화 시기에 시작되지만 완공 시점엔 경기 과열이 정점에 이르고 버블이 꺼지면서 결국 경제 불황을 맞는다는 것이다(마천루의 저주를 처음 착안한 앤드루 로렌스는 이렇게 말했단다. "기업이 제일 큰 빌딩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첫삽을 뜨면, 당장 그 회사 주식을 팔아라.").

미국은 1931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102층, 381m)이 완공되면서 대공황이 깊어졌고, 말레이시아는 페트로나스타워(88층, 452m)가 완공된 1999년에 금융위기로 휘청거렸으며, 두바이도 부르즈칼리파가 완공된 2009년 경제 위기를 맞았다. 역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천루 붐이 불었던 중국도 벌써 부동산 가격 거품이 국가적 골칫거리가 된 상태고, 이는 세계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경기 침체 이전에 여러 곳에서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을 세웠지만, 지금은 아예 사업 포기 상태에 처한 곳이 많다. 원래는 서울과 수도권에 총 10여 곳의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이 있었지만, 롯데월드타워를 뺀 나머지 계획들은 현재 백지화 됐거나 파산 직전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1월 말 현대자동차도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에 그룹 사옥을 포함한 업무시설·전시컨벤션 시설·호텔·판매시설 등을 조성하겠다는 개발 구상과 사전협상 제안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역할을 하게 될 신사옥은 지상 115층(높이 571m)의 초고층 건물로 계획되어 있는데, 현존 가장 높은 빌딩인 인천 송도 동북아무역센터(68층·305m)보다 무려 266m나 더 올라가고 2020년쯤 완공 예정이다.

그래서 앞으로 5년 내에 불과 3~4km 정도의 거리(송파구 잠실동~강남구 삼성동)를 두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서울에 롯데월드타워와 현대차 신사옥, 이렇게 2개의 '마천루(하늘을 찌를 듯 높이 지은 건물, skyscraper)'가 생긴다. '마천루의 저주'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서울시의 딜레마, 불안한 시민들

제2롯데월드는 끊임없는 사고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거대 쇼핑몰 입주상인들의 이해관계가 결부된 상태고, 롯데도 그룹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서울시가 지금 당장 무슨 조치를 취하기도 그리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사회는 원래 토건 개발에 호의적이다. 서울시 공무원들 중에서도 재벌 특혜와 토건 중시에 익숙한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롯데월드타워 공사는 계속될 것이다. 또한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안전불감증과 무관심이 팽배한 시대에 일반 시민들도 지속적으로 제2롯데월드를 방문할 것이다.

반복되는 제2롯데월드 사고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서울시를 보며 답답할 뿐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본인의 개인 블로그(http://arthurjung.tistory.com)에 동시 게재했습니다.
#제2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하인리히법칙 #마천루의저주 #초고층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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