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던 집이 아니라 사는 집이면 좋겠다

[포토에세이]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평촌리의 농가

등록 2015.06.02 14:48수정 2015.06.0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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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강원도민은 아니지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생각을 하면 이런저런 걱정들이 앞선다. 이미 생태계의 보고 가리왕산이 훼손되고 있다는 보도는 뒤로 하더라도,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평창에 대한 거품 낀 기대 심리가 꺼지고 나면 또다시 지역경제가 곤두박질 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평창은 2018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뭔가 변화를 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창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곳곳 개발의 흔적들은 결코 즐겁거나 낙관적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불안하다. 수천 수백년 나무와 풀을 키워냈을 산들은 붉은 맨 살을 드러냈고, 지난해 아니면 봄에 파헤쳐졌던 산들은 그 모습이 수치스럽다는 듯 얼른 초록의 풀로 옷을 입었다. 아마도 그렇게 동계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평창은 기대와 불안의 두 그림자 사이를 오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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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면 평촌리의 농가 감자밭의 두렁이 정갈하여 농가가 초록의 치마를 두른듯 하다. 분홍저고리와 초록치마를 차려입은 새색시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 김민수


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에서 6번 국도(남양주시 도농삼거리에서 강릉항을 잇는 도로)를 타고 봉평으로 향했다. 봉평오일장(2,7일)에 맞춰 이곳을 찾을 수 있길 바랐지만, 하루 앞당겨서 봉평을 찾았다. 새로운 달이 시작된 첫날, 맨날 집안살림에 치여 고생하는 아내가 좋아하는 막국수라도 사주고 싶어 느닷없는 여행을 떠난 것이다.

봉평시내로 들어가기 직전 6번 국도에 접해있는 봉평면 평촌리의 한 농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마 정갈한 감자밭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갈한 밭두렁은 초록치마를 닮았고, 분홍색 농가의 지붕은 분홍저고리를 닮았다. 그리고 잣나무 숲 어딘가는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을 것 같다. 감자밭에는 이제 막 감자꽃이 하나 둘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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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면 평촌리의 민가 정면에 있는 작은 건물은 해우소(재래식 화장실), 화장실을 청소할 때 변을 퍼내는 곳에 금낭화가 피어있다. ⓒ 김민수


어떤 사람이 살까 궁금했다. 집으로 가는 길엔 재래식 화장실이 있고, 주변에는 화사한 금낭화가 피었다.

저렇게 모였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할 것들을 우리는 물로 내보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올무를 던지는 삶을 편리한 삶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당장 그 올무가 자신의 목을 조이지 않는 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올무가 목을 조이는 순간, 그 순간이 되면 누구도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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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사람이 사는 곳인지 아닌지 감이 오진 않지만, 사람이 오가는 흔적은 분명히 남아있다. 오른쪽에 뜯은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방가지싹이 있다. 그곳에 사람이 사는지는 모르겠다. ⓒ 김민수


참으로 의아했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산다고 하기엔 너무도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고, 아니라고 하기엔 최근까지 드나든 흔적이 있다. 평창뿐만 아니라 쇠락해가는 시골을 다니다 보면 폐가가 많다. 폐가는 그냥 잡풀에 쌓여 무너져 내리고, 새로 지어지는 집들은 대부분이 정체불명의 국적을 가진 형태의 집들이다. 도시의 집들은 성냥갑을 닮았고, 농촌의 집들은 그냥저냥 토이블록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떠났다면, 이 집도 수년 내에 잡풀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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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농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 바람이 잘 통하는 곳 그늘에 묵나물이나 시래기 등을 걸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찬으로 먹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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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이런저런 농기구들을 넣어두는 창고, 겹겹이 쌓인 것들이지만 필요한 때가 있어 그곳에 남아있는 것이리라. ⓒ 김민수


우리 나라에서는 몇몇 지방이나 유적지를 제외하면 전통적인 가옥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우리의 개발방식이라는 것이 다 때려부수고 짓는 것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고, 근원적인 처방보다는 새마을 운동식의 보여주기식 개발이다 보니 오랫동안 보존할 가옥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네 전통가옥을 제대로 이어오지 못했다. 고작해야 기와집이 우리네 전통가옥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수백년 혹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집에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유럽의 나라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도 사람이 살면서 보완해가면서 살아가다보면 제법 집의 운치가 더해지는 것이 아닐까? 불편해도 그런 소박한 집이야말로 우리가 가꾸어야 할 집이 아닐까 싶다. 기와집뿐 아니라 너와집, 초가집, 황토집 등 다양한 전통가옥들이 그 명맥을 유지해갈 때 우리만의 문화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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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툇마루에는 봄에 뜯어 데친 곰취와 참취가 말라가고 있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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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으로 만든 농기구 종다래끼로 보이는 짚으로 만든 물건으로 작은 물건이나 채소 등을 담을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젠 오래되어 짚이 다 삭았다. ⓒ 김민수


툇마루에 낀 흙먼지와 뜯어진 창호지, 처마 아래에 걸린 낡은 종다래끼를 보면서 '이곳에 사람이 살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예 발길이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떠난 지는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정갈한 감자밭을 보아하니 감자농사를 짓는 분과 관련이 있는 집이겠거니 싶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안다. 정갈하게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하는지를. 그리고 논밭을 보면, 그 논밭을 드나드는 사람의 성품도 알 수 있는 법이다. 딱, 자기 사는 방식대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더라면 참으로 포곤한 집, 머물고 싶은 집이었겠구나 싶다. 이제 이런 집들도 하나둘 사라진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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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전경 제법 반듯한 집이고, 여전히 사람이 살만한 곳이다. 이런 집들이 지속적으로 전통처럼 남아있으면 좋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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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장작이 벽에 가득 쟁여져 있다. 겨울이 다 지났건만 이토록 장작이 남아있다는 것은 지난 겨울엔 이 집이 비어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 김민수


그곳을 서성였지만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길가에 있는 집이었지만, 외딴집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한낮 뜨거운 햇살에는 농부들도 잠시 쉬는 시간이므로 그냥 주인도 없는 집을 서성이다 온 것이다.

한적함에서 오는 평온함이라기보다는 적막함 속에 오는 쓸쓸함을 마음 한 켠에 담고 봉평시내로 향했다. 봉평시내는 도로공사가 한창 중이었다. 그로 인해 분주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작은 시골마을이라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봉평오일장이 열리면, 메밀꽃 피는 가을이 되면 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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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횡성오일장(1,6일)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오일장을 본 분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김민수


6번국도를 타고 돌아돌아 서울로 돌아오는 길, 횡성오일장에 들렀다. 오후시간이라 파장일 거라 생각했는데 한창이다. 그리고 제법 북적거린다. 사람 사는 것 같다.

여럿이 함께 있으면 홀로 있고 싶다가도 홀로 있으면 함께 있고 싶다. 참으로 변덕스러운 것이 사람마음이라지만, 좀 이렇게 북적거리는 맛이 있어야 시골살이가 행복해 질 것 같다.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농촌, 힘없는 노인들만 남아있는 농촌은 너무 아프다. 그리고 그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도 밝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강원도 봉평면 평촌리 6번 국도에서 만났던 그 집, 사람이 살던 집이 아니라 사는 집이면 좋겠다.
#봉평 #평촌리 #농가 #횡성 #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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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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