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메르스 정보 공개 못하는 진짜 이유

선수와 심판 겸하는 한국 방역체계가 '미공개' 부추겨

등록 2015.06.06 16:23수정 2015.06.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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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메르스 환자 발생으로 인해 폐쇄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앞에서 한 환자 보호자가 입구 앞을 지나고 있다. ⓒ 이희훈


묻지마 연쇄살인자가 등장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을 공격한다고 하자. 정부는 이름이 '멸치'라고 하는 살인자에 의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음을 시시각각 전하면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피해야 된다는 일반 지침을 내리고 엄중한 경계망으로 곧 잡겠다고 공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멸치는 허술한 정부 방어망을 뚫고 전국을 헤집고 다니면서 사람을 공격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정부는 살인이 일어난 장소나 그의 이동경로에 대하여 비밀에 부치고 있다. 그가 살인을 하고 있는 지역이나 그의 예상 경로 등 모든 것이 모호한데 계속 피해자 상황은 보도되고 있으니 불안과 더불어 소문만 흉흉해지고 있다.

국민들은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장소와 이동경로나 그와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알아야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준비할 수 있으니 정보를 공개하라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살인 장소나 그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면 국민이 불안해 한다며 정보 공개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살인자는 성폭력자이건 전염병이건 마찬가지다.

정보 공개 못한다는 이유가 국민 불안 때문?

그렇게 국민을 믿지 못하여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때 일반 국민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번에도 단지 손이나 씻고 손 막고 재채기하라는 수준이다. 연이어 전달되는 초확산(superspeading)의 피해 상황에서 과연 국민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조건 전문가에 맡기라고 할 것이라면 어차피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차라리 피해상황이나 질병 발생 현황마저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하면서 국민들에게는 손이나 씻고 다니라고 하는 것이 정부가 그토록 주장하는 국민 불안을 막는 가장 좋은 방식이 아니겠는가.

인간사회건 자연계건 범죄나 전염병의 발생이 없을 수 없다. 이때 유행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 공개와 이에 근거한 정부와 시민 모두의 긴밀한 협조다. 정부가 국민 불안을 이유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국민에게 상황을 그대로 알려주면 국민들이 공황에 빠지고 우왕좌왕하게 된다고 보는 불신 외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국민을 불신하고 바보 취급을 하고 있는데 국민이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정부 공언과 달리 전염병은 미비한 초동대처와 더불어 초확산 상태로 계속 증폭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국민이 연쇄살인자에 대하여 불편함과 일말의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보하고 있는 살인자가 언제 어떻게 자신에게 등장할지 모른다는 불안 상황를 조성하여 일반 시민을 공황 상태에 빠트리는 정부의 행태는 너무도 잘못되었다. 언제나 관련 정보를 투명 공개하는 다른 선진국을 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진정한 불안은 정부가 언제나 국민 불안을 이유로 행하는 정보 차단과 독점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불행하게도 국민이 불안해 하니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멍청하기까지 한 정부의 이런 태도와 입장은 과거로부터 유지되어 왔다. 최근에도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신종 플루, 광우병 사태 등 사람과 동물을 막론하고 방역이나 검역이 논란이 된 상황이 있을 때마다 관련 정보를 숨기면서 단지 정부의 일방적 조치와 주장만을 믿으라고 되풀이 했다. 결과적으로 사회재난으로 까지 확대되면서 국내에서 큰 피해를 주는 상태로 막을 내리고, 추후에 그런 상황에 대하여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지나간다.

선수와 심판 겸하는 한국 방역체계... 정보 공개하면 책임질 일 많아져

심지어 주변국으로부터 정보 미공개에 대한 질타를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들과 함께 방역에 대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토록 강고한 정보 미공개와 독점으로 인해 얻는 정부나 관계부처의 이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같다. 이는 결코 국민의 불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간의 여러 사례를 통해 보면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얻을 수 있다. 한국은 선진제도를 가진 해외 다른 나라와 달리 방역과 검역에 있어서 담당 부처가 선수와 심판을 겸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염병이 전국 사태로까지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부나 담당 부처 공무원들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자신들의 실패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결국 책임져야 할 자들이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독점하면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회피하려고 한다. 이것 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책임질 일이 없으면 개선될 것도 없다. 굳이 필요하면 사태가 조용해진 다음에 조용히 그리고 적당히 땜질해 놓으면 된다.

국내 방역 체제가 과거로부터 여러 재난을 거치면서 개선되기는커녕 늘 소동이 반복되는 답보 형태가 등장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며, 이런 사례는 꽤나 많다. 그 동안 국내의 광우병, 신종 플루,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등의 상황에서도 그랬다. 2008년도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것만 제대로 실행했어도 신속한 초기 대응이 가능했다. 그랬다면 무수히 많은 동물을 생매장하고 사회재난으로까지 확대된 구제역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국내도 유럽연합(EU)처럼 하루 빨리 방역을 담당하는 조직와 실시된 방역 관련 정보를 취합해 평가 분석하는 행정조직을 분리시켜야 한다. 방역을 평가 분석하는 독립 부처는 대국민 소통을 담당하고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나 책임져야할 부처가 방역 정보를 독점해서는 안 되며, 공개되어 늘 검토와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책임한 발언이나 대처를 한 담당자는 반드시 책임지게 해야 체제나 시스템이 개선 발전될 수 있다. 외압에 취약한 한국문화에서 질병관리본부와 농수산검역검사본부 등의 방역 및 검역 대응을 추후 평가할 전문행정조직을 최소한 감사원장 산하에 독립적으로 둘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런 문화와 조직 체계를 갖추기 위해 그 첫걸음은 다른 나라처럼 전염병이 창궐할 때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서 관민이 협력해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정부는 국민을 믿고,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정부 스스로가 그런 신뢰 관계 형성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철저하게 반성, 개선하고 실질적 행정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우희종 교수는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입니다.
#MERS #정보 공개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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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동물권, 복잡계 과학 및 포스트휴먼에 관심.남북 평화와 미래세대를 위한 바람직한 사회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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