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그날의 추억... 투쟁하기 참 좋은 날이었다

[단상] 공무원연금법이 통과 된 지 한 달... 둘로 갈라진 공모원노조를 바라보며

등록 2015.06.17 11:16수정 2015.06.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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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법이 통과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공적연금강화'라는 여섯 글자 아래 서로를 다독였던 1년 반의 시간이 있었다. 지독한 사랑을 하고 난 뒤처럼 허탈과 당황이 동시에 밀려온다.

새누리당 당사 앞 노숙농성장에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사를 점거했다. 네 차례에 걸친 대형 집회에서 함께 울고 웃었다.

1년 반의 투쟁 그러나 한 달만에 둘로 갈라진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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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항의면담 과정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전국공무원노조


그러나 지금의 공무원노조는 공동투쟁본부에서 대타협기구로 그리고 실무협상기구로 탈바꿈했다. 협상과정에서 조합원에게 손해를 끼친 '직권조인'이라며 위원장 사퇴를 강하게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반면 나름 선방했고 앞으로의 투쟁에 집중하자는 측도 있다. 한 깃발 아래 있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

때로는 서로의 밤잠을 걱정해주고, 때로는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어깨를 걸기도 했다. 때로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현 정권의 광폭 질주에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그랬던 우리가 지금은 서로를 할퀴고 비난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막막함이 밀려 올 즈음, 선명한 추억이 그려지며 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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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4.25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공무원연금'이라고 적힌 풍선을 함께 옮기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전국공무원노조


시계를 지난 3월 28일로 돌려본다.

드넓은 문화마당은 그 자체가 산이었고 바다였다. 공적연금강화를 외치는 교사 공무원 8만 명의 함성이 거대한 진공의 섬이 되어 여의도에 둥둥거렸다.

중앙무대 앞에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한국노총공대위, 전교조, 민주노총대책위, 단위노조연합, 교원단체연합회, 사학연금공대위,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피켓이 순서대로 줄을 지어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 행사 전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아슬아슬 인라인을 배우고 있다. 달음질치다가 4개의 대형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뮤직비디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어린아이의 미소가 익살스럽다. 행사를 준비하던 스태프들은 가로수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는다. 그 앞으로 네 가족이 경쾌하게 자전거 두 바퀴를 쌩쌩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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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키다리 아저씨에게서 풍선을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 전국공무원노조


무대 뒤편에 마련된 조합원 자녀를 위한 놀이방 앞에 매화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사한 꽃그늘 아래에는 행사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흐뭇한 미소로 놀이방의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눴다.

잔디광장에 앉아 행사를 기다리던 조합원을 만났다. 대구 중구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70명이 함께 왔단다. 3월 27일, 대타협기구 전체회의 결과발표에 대해 그는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일부 수긍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많은 조합원들이 공무원연금개악과 공적연금강화에 대한 마음은 하나이지만, 나서진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경기교총소속 한 교원은 무대 맨 앞에 앉아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교사로 재직한 지 30여 년 됐다는 그는 "오늘 행사가 실무협의체 구성을 비롯한 공적연금논의에 영향을 미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매월 꼬박꼬박 기금을 뺐는데 연금을 줄인다고 하니 조합원들의 분노가 크다"고도 했다. 그는 "교사로 퇴직하면 다른 직장인들과 달리 노후에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연금만이 유일한 노후 희망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뜨거웠던 당시의 추억, 매화꽃비 내리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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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에서 <팩트 TV>를 통해 집회를 생방송하고 있다. ⓒ 전국공무원노조


<팩트TV>를 통해 생방송을 진행하던 이충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에게 타 언론사들의 인터뷰가 집중되었다.

노동자연대에서 배포하는 신문을 유심히 읽고 있는 시민을 만났다. 서울 신길동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는 "공무원들은 그래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지 않는가,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월급도 적을뿐더러 그마저도 제때 지급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행사장 주변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추모하며 조속한 인양을 호소하는 서명대가 곳곳에 있었다. 팔짱 낀 연인이 지나치다 집회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간이 화장실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 다소 불편한 점도 많아 보였지만 전국 각지에서 새벽부터 모인 교사와 공무원들은 넓은 문화광장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잔디광장과 전통문화의 숲에도 앉아 행사진행에 집중했다.

두 아들과 함께 참석한 인천서구청 소속 오아무개씨는 올 해 입사 12년째다. 황금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놀아줘야하지만 공적연금 강화하고 선순환복지가 보장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결의대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노후는 국가책임"이라는 머리띠와 손풍선이 앙증스러웠다.

미세먼지를 우려했지만, 청량한 하늘과 바람 내음이 느껴졌다. 온도계는 섭씨 14도를 가리켰다.

투쟁하기 딱 좋은 봄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정수미 시민기자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입니다.
#공무원연금 #공무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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