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의 생태계는 건강한가?

[서평] 이혁규의 <한국의 교육 생태계>를 읽고

등록 2015.06.20 17:57수정 2015.06.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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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 생태계(표지) ⓒ 안준철

이혁규의 <한국의 교육생태계>를 읽었다. 그동안 주로 수업 현상을 중심으로 우리 교육 현장을 연구해온 저자가 이 책에서는 교육 전반을 다루고 있다.

사담이지만, 이 책은 내가 돋보기를 쓰지 않고 보는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 여행 중에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내게 최근 들어 경험한 급격한 시력 저하는 우울한 신호가 아닐 수 없었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책을 덮고 눈을 쉬어주다가 하루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예 책을 집에 두고 출근을 했는데 종일 집에 두고 온 책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책 생각이 간절해지는 만큼 역으로 책 읽기에 대한 일말의 회의감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나빠진 시력을 어르고 달래며 애면글면 열심히 책을 읽은들 우리 교육이 달라질까 싶은 것이다. 얼른 집에 가서 책을 가지고 올까 하다가 문득 그런 서글픈 생각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돋보기를 구해서 책을 계속 읽을 것인지, 아니면 아예 이번 기회에 책 읽기와 조금 거리를 둘 것인지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 결국은 돋보기도 없이 책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런 와중에 나에게 상처처럼 다가온 문장들이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의 사건을 파헤쳐 보면 더 교육받은 사람일수록 더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19쪽)'
'만약 이러한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이 우리의 교육 현실을 규율하고 우리의 삶을 내면화된 원리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최소한 세월호 사건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23쪽)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에서 집단 백혈병이 발병했을 때 소비자들이 삼성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삼성이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 발병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부인하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을까?(30쪽)
'우리는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더 비윤리적인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무엇이 문제일까?(157쪽)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연구년 중이었다"고 술회하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연구년 동안 저자가 머문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작은 해변도시였다.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서 한국 관련 뉴스를 접하면 한국에 있을 때와는 느낌이 좀 달랐다고 한다.

지금 이 땅에서는 살인적인 경쟁 교육이나 유족들의 눈물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는 저급하고 참담한 현실이 현재진행중이지만, "지구적 시야에서 보면 한국은 분명 괜찮은 나라" 라고, 그는 적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자문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들은 왜 이런 성취에 전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짧은 기간 동안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 낸 한국의 사례는 분명 예외적이고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성취에 전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노력할수록 점점 더 삶은 팍팍해져 가고, 전망은 희미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도한 교육열과 입시 경쟁은 세계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몰고 왔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성공의 위기'라는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우리가 과거에 이룩한 눈부신 성취가 오늘날 우리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몇몇 명문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성공이 보장되던 낡은 신화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저자는 우리 교육에 대한 총체적 반성과 성찰을 촉구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가?

이 책의 1부에서 저자는 "교육은 언제나 특정한 사회를 상정하고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교육은 교육이 행해지는 맥락인 사회와 관련하여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특정한 사회를 전제하지 않고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좋은 교육이란 존재할 수 없다.

저자는 교육과 연관하여 '사회'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는 주어진 현실로서의 사회상과 지향해야 할 이상으로서 사회상이 함께 함축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교육이 '적응'과 '혁신'이라는 이중적 과업을 수행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민주 사회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하지 않고 민주시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시민교육의 목적이 현존하는 불완전한 민주 사회에 순응하는 인력을 기르는 데 제한되지는 않는다. 민주시민교육은 더 나은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지향하며, 이런 교육을 통해 민주 사회 또한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간다. (22쪽)"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를 소비 사회, 위험 사회, 팔꿈치 사회, 네트워트 사회로 상정한다. 그러면서 "이 사회 담론들은 공교육 체계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거나 외면되어 오거나 혹은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진 것"임을 시사하며, "이런 담론들이 포착하는 현실이 교육의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교육자들은 이런 사회 담론들이 주목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를 초월하는 미래 사회상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교육의 배경이 되는 사회 담론을 나 같은 게으른(혹은 시력 때문에 더 게으르고 싶은) 독자를 위해 저자가 잘 정리해 놓았다. 읽으면서 밑줄을 그어놓은 몇 대목만 소개한다.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못하고 실업자로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 행위의 본질을 이해하고 윤리적 소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교육의 주제이다.(28쪽)

'궁핍은 계급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울리히 벡'(31쪽)

'이런 단속 사회는 정보와 의견의 공유는 있을지 모르나 마음을 여는 소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진정한 소통은 나와 다른 타자와 만나는 심리적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38쪽)

'이 모든 것들은 다시 민주주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역과 국가와 세계적 차원에서 공적 영역을 재구축하지 않고서는 사회 담론들이 제시하는 암묵적 묵시록을 넘어서기 어렵다. 공적영역의 재구축은 협력하는 품성을 지닌 사람들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교육 없이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40쪽)'

교사들은 왜 교실 문을 열기를 싫어할까?

'교육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은 은연중에 교육낙관론을 전제한 셈이 된다. 과연 이 시대에 교육은 가능한 걸까? 이런 물음을 던지다 보면 처음에 던졌던 물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더 교육받은 사람일수록 더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결국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잘못을 찾아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선 방안을 모색하거나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순이기도 하다.

"교사는 왜 교실 문을 열기를 싫어할까?"라는 물음도 그런 일련의 과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그는 매우 조심스럽다. 교실 수업을 다루는 2부에 수록된 다음 글에는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는 내가 묘사하는 현상이 한국 교직사회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교사들이 나에게 당신은 한국 교사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잘 모르고 딴 소리를 하고 있다고 질타해주기를 바란다. 만약 내 글이 틀렸다면 한국 교사 사회는 그만큼 개선된 것이리라.(98쪽)"

하지만 그의 연구적 성취가 이런 조심스러움만으로 이루어질 리는 없을 터다. 이론 중심이 아닌 현장을 지원하는 교육연구자답게 작금의 학교 교육의 허상을 꿰뚫어보는 그의 시선은 예리하다. 그가 작심한 듯 열어놓은 판도라 상자 안에는 도망칠 수 없는, 불편하지만 엄연한 진실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 중 내가 무릎을 치면서 읽은 한 대목이다.

"교육 영역은 그 활동의 의미와 성과가 쉽게 측정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에 비해 관리 영역은 관료적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공문처리를 요구하는 서류가 도착하면 학교는 제때 서류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문서로 소통되는 이 관리 영역은 학교의 반응 속도와 처리 과정에 쉽게 노출되는 가시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장은 교육 활동보다 관리 영역을 중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교육 활동을 일부 희생시키더라도 관리 영역을 잘 작동시키는 것이 유능한 교장으로 인정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학생을 자습시키고 공문처리를 잘 하도록 하는 잘못된 교장도 생겨나는 것이다. 관리 영역을 더 중시함으로써 교장은 교사들의 교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수업활동을 지원하는 장학의 전문성을 쌓는 일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해도 된다. (…)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교사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공문 처리와 같은 행정적인 일만 잘하면 교육 활동을 잘 하든 못하든 별로 간섭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교실을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106쪽)'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EBS의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주지하다시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교사들은 자신의 교실을 과감하게 개방하고 수업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나 저자는 교육학자로서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교육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이 자신의 학교에서 동료, 선배, 교감, 교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멀리 방송국까지 와서 컨설팅을 받아야 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고립적인 교사 문화가 중요한 원인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좋은 교육은 개별 교사들의 우수성이 아니라 교사들의 협력적 네트워크에 의해서 가능하다. 한국 교사 사회는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교실 밖 타자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극복하고 서로 돕는 협력적 문화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을까?(108쪽)"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우리의 교육 이념과 철학>에서 저자는 '좋은 부모'라는 이상적 목표 대신에 '나쁜 부모 안 되기'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제안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목표'는 '자녀들을 독립적인 인격으로 인정하기', '성적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자녀를 타자와 평가하기를 중단하기', '자녀가 타자의 고통에 둔감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가르치기'이다.

2부<교실 수업, 공교육의 최전선>에서는 학교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교실수업에 대해 다룬다. 미국과 독일어권 학자들의 연구물을 분석하여 '좋은 수업'에 대한 보편적 정의를 탐색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전통적인 교사의 역할을 위협하거나 교사가 설 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수업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거꾸로 교실'을 통해 저자는 학생들과 면 대 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수업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그리고 교사의 주먹구구식 시행착오를 넘어 좋은 수업에 대한 일정 정도의 합의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3부<한국의 교원과 교원양성기관>에서는 교사의 양성과 성장, 그리고 그와 관계된 제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논쟁이 많은 직업인 교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교사에 대한 존경이 당위적으로 확보되지 않음을 강조하며 학원 강사와는 다른 공적 임무를 지닌 존재로서의 교사의 역할이 발현될 때 교사에 대한 존경의 풍토도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4부〈교육운동과 교원단체>에서 저자는 배움의 공동체 운동에 대해 '왜 핀란드가 아니라 일본인가', '왜 배움의 공동체인가'라는 두 가지 핵심 질문을 통해 배움의 공동체가 주는 이중적 과제에 대해 고민하는 한편, 혁신학교운동에 대해서는 자발성에 의해 아래로부터의 일어나는 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혁신이 어떻게 확산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또한, 한국교총과 전교조 두 단체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지면도 할애했다. 특히 전교조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은 아직도 눈에 밟힌다. 그 중 한 대목만 소개하고 부족한 글을 마칠까 한다.

"정부를 대상으로 싸우는 일은 힘들지만 명분도 있고 폼도 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장의 일상을 바꾸는 일은 날품도 많이 들고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현장 운동이 착근되지 못하는 한 진보 운동은 계속 헛바퀴를 돌고 우리의 일상은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303쪽)" 
덧붙이는 글 한국의 교육 생태계/교육공동체 벗/이혁규/15,000원

한국의 교육 생태계

이혁규 지음,
교육공동체벗, 2015


#교육공동체 벗 #한국의 교육 생태계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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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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