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는 늘 새롭게 배운다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체 게바라, <공부하는 혁명가>

등록 2015.06.22 15:34수정 2015.06.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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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에 빗소리를 듣고, 안개가 낀 아침에 안개를 바라보며, 구름 한 조각 없이 맑은 하루일 적에는 밝고 뜨거운 햇볕을 맞이합니다. 똑같은 하루가 없이 흐르는 삶입니다. 달력에 적힌 날짜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한테나 날마다 새롭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늘 배웁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도 배우고, 아침저녁으로 도시락을 먹어도 배웁니다.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동안에도 배우며, 줄넘기를 하거나 숨바꼭질을 할 적에도 배웁니다.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은 배움이 됩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택한 첫 번째 무기는 시를 쓰는 문학적인 작업이었지만 평론가들은 그 시들을 그다지 의미 있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젊은 시절의 이런 호기는 곧 끝을 맺었고, 이후 두 청년은 헤겔 철학에 이끌렸으며 청년헤겔학파에 참여하게 되었다 … 정치 저술가로서 맑스의 경력은 검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글도 검열로 출판이 금지되었다. (26, 32쪽)

겉그림 ⓒ 오월의봄

<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오월의봄,2013)를 읽습니다. <공부하는 혁명가>는 책이름에 적힌 대로 체 게바라 님이 '맑스(마르크스)'하고 '엥겔스'를 놓고 쓴 책입니다. 다만, 이 책은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책을 한창 쓰던 어느 날 숨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맑스나 엥겔스를 잘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부하는 혁명가>를 읽고서는 궁금한 대목을 모두 채우기는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혁명가>를 읽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늘 새로 배우는 사람'이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배우는 사람인 줄 새삼스레 돌아볼 만합니다.

맑스의 유일한 수입원은 그가 <뉴욕 트리뷴>에 썼던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들도 항상 신문에 실린 것은 아니었고, 실리지 않으면 원고료도 받지 못했다. 따라서 맑스 가족은 원고료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었지만 맑스나 그의 아내는 절약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데 능숙하지 않았다 … 맑스와 엥겔스는 실패로부터 배웠다. 맑스는 이 사건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했고 인터내셔널의 감수 아래 <프랑스내전>을 출판했다. 파리코뮌의 가장 중요한 결과들 중 하나는 민중의 권력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낡은 정부기가룰 파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조명했다는 것이다. (62, 78쪽)

맑스하고 엥겔스를 잘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체 게바라도 잘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잘 알려고 애쓰지 말고, 내가 누구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선 이곳, 내 보금자리와 마을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두 발을 디디고 삶을 가꾸는 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나 스스로 잘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을 알 길도 없습니다. 내 삶부터 제대로 알지 못하는 넋으로는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가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아니, 내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배우려고 하는 몸짓이 없다면, 나를 둘러싼 이웃하고 동무를 제대로 마주하면서 사랑하려고 하는 몸짓이 못 되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언제나 새롭게 배운다고 한다면, 무엇보다 나 스스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배울 때에 즐거움을 찾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밥 한 그릇을 맛있게 짓는 길을 찾습니다. 밥 한 그릇을 기쁘게 나누는 길을 생각합니다. 밥 한 그릇을 아름답게 일구는 길을 돌아봅니다. 밥 한 그릇을 오롯이 내 손으로 얻는 길을 걷습니다. 작은 발걸음이라 하더라도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이제껏 스스로 돌아보지 못한 길을 짚으면서,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갈 길을 내다봅니다.

그의 동지 엥겔스 덕분에 경제적 걱정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훨씬 더 쇠약해진 맑스는 남은 마지막 몇 년 동안 두 명의 예니를 잃고 고통 받았다. 일을 할 수도 없었고 아내와 딸을 잃어 그의 에너지의 비밀스러운 원천도 말라버렸기 때문에 맑스에게는 1883년 3월 14일 세상에서 물러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 엥겔스는 <자본>을 완성해야 한다는 엄청난 과제를 안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가장 큰 관심이었다. <자본> 2권은 상대적으로 이른, 맑스가 죽은 지 2년 만인 1885년에 출판되었는데 … 엥겔스는 맑스가 남긴 엄청난 원고 더미를 편찬하는 데 10년이 걸렸고 <자본> 3권은 엥겔스 자신이 죽기 몇 달 전이 되어서야 출판될 수 있었다. (86, 95쪽)

체 게바라 님은 왜 맑스하고 엥겔스를 배우려고 했을까요? 이녁이 몸담은 쿠바에서 '새로운 경제 틀'을 세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에만 적힌 이념을 따르려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두 발을 디딘 이 땅에서 아름답게 나아갈 길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돈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을 아끼는 돈이 흐르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고, 돈이 많으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삶을 사랑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구별 어느 나라에서든 돈이나 자원이 모자라는 일은 없습니다. 돈이나 자원을 제대로 제자리에 쓰지 못하거나 않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평화를 지키려고 한다면서 평화로는 나아가지 않고 전쟁무기에만 끝없이 돈을 퍼붓습니다. 젊은이한테 평화를 가르치거나 보여주려고는 하지 않고 군부대를 크게 건사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붓습니다. 바닷물을 더럽히고 나서 부랴부랴 바다를 되살리려고 애쓰고, 냇물을 망가뜨리고 나서 냇물을 어떻게 되살리는가를 놓고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체 게바라)는 독서와 관념적 급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현실과 생생하게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맑스주의로 나아갔다 … 체에게 진정한 맑스주의는 인간주의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쿠바혁명을 퉁해 실현하려고 했던 맑스주의도 인간주의적인 것이었다 … 체는 소련의 노선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재단하기 위해 성장률이나 생산성에만 초점을 둘 뿐 철학적 또는 정치적 측면들에는 무관심하다"고 보았다 … 체는 새로운 사회주의적 윤리에 충실한 인간이 정치적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계획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주의를 꿈꾸었다. (138, 142, 149, 151쪽)

공부하는 혁명가는 <공부하는 혁명가>라는 책을 남깁니다. 배우는 사람은 기쁘게 배운 발자취를 남깁니다. 삶을 배우면 삶을 남기고, 사랑을 배우면 사랑을 남깁니다. 미움이나 시샘을 배웠으면 미움이나 시샘을 남길 테니,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배우는 대로 스스로 이곳에 무엇인가를 남깁니다.

어른으로서 이 땅에 무엇을 남길 적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른으로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남기거나 물려줄 적에 아름다울까 하고 거듭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평화를 이 땅에 남겨야 할까요, 아니면 군대와 전쟁무기를 남겨야 할까요? 우리는 미움과 시샘을 이 땅에 남겨야 할까요, 아니면 사랑과 꿈을 남겨야 할까요?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삶을 지어야 할까요?

이념이나 주의주장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이 되는 씨앗이 대수롭습니다. 정치권력이나 종교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꿈으로 나아가는 숨결이 대단합니다. 배울 수 있는 사람일 때에 사랑을 하고, 꿈꿀 수 있는 사람일 때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aladin.co.kr/hbooks)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
체 게바라 글
한형식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13.5.30.

공부하는 혁명가 -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

체 게바라 지음, 한형식 옮김,
오월의봄, 2013


#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 #인문책 #삶읽기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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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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