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반말이야!" 적반하장 보이스피싱

[경험담] '중앙지검'에서 온 전화, 정말 아찔했습니다

등록 2015.07.01 20:48수정 2015.07.0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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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나가자마자 지하철이 바로 도착한다든지,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건널 수 있도록 초록불로 바뀐다든지 하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가득했던 금요일 아침.

오늘이 금요일이란 사실에 기분도 좋았고 아침부터 일이 뭔가 잘 풀리는 것 같아서 기분 좋게 출근하고 책상정리를 하고 있었다. 누구나 오늘의 할 일은 많지만, 일을 다 끝내놓고 오랜만에 집에 가서 푹 쉴 생각에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 '02'로 시작되는, 모르는 번호였다.

원래 학생 때부터 모르는 번호는 유선이든 무선번호든 절대 안 받는 편이었는데 지난해 일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모르는 번호라고 해서 무작정 안 받는 것도 어렵게 됐다.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터라 개인번호로도 문의전화가 오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번호라고 해도 별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었기에 찜찜하긴 했지만, 어느 기관에서 건 전화했겠거니 하고 덜컥 받게 됐다. 금요일 아침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내 이름으로 된 대포통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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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로 시작되는 모르는 번호... 금요일 아침의 비극이 시작됐다. ⓒ 오마이뉴스


다음은 내가 당할 뻔한 보이스피싱 사기 전화의 대략적 통화 내용이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수지씨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네, 안녕하세요. 여긴 서울중앙지검 xxx 수사관입니다. 혹시 '김수철'씨라고 알고 계십니까?"


"네? 김수철이요? 아니오. 처음 들어보는데요."
"아, 처음 들어보셨다고요? 다름이 아니라 김수철씨가 이수지씨 이름으로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한 것으로 나타나는데요. 이수지씨가 대포통장을 개설해 임의로 대여를 해줬는지, 실질적 피해자인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히 질문을 드릴까 하는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이렇게 시작된 보이스피싱. 사건은 혼자 지레 겁먹고 무작정 큰일이라고 호들갑 떨던 내 순진함에서부터 비롯됐다. 평소에 워낙 지갑·휴대전화 등을 심심치 않게 잃어버리는 터라 내 이름으로 된 대포통장이 개설됐다고 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

페이스북 등 흔한 SNS에서 보이스피싱 영상을 몇 번 봤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며 볼 뿐 그게 내 일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자체가 금융사고라고 생각 못하고 내가 금융사고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된 건 아닌가 싶어 대포통장이란 말에 덜컥 겁만 먹고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부터 해버렸다. 정말 한 치 앞도 못 보고 사는 인생이다.

평소에 보이스 피싱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했고, 말도 안 되는 그들의 논리에 순진하게 넘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오죽 절박하면 그랬을까' 싶었다. 근데 그게 막상 내 일이 되니 순식간에 속아 넘어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수천만 명 중 한 명이 걸려 넘어가는 것이었겠지만, 나같이 평소 행실이나 행태가 칠칠치 못한 사람들이라면, 괜히 찔리거나 뜨끔한 구석이 있었다면, 절박한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면,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서야 배울 뻔했다.

'설마 내게도?'라는 안일한 생각이 정말 어처구니없는 보이스피싱 피해로 이어질 뻔했던 것이다.  메르스다, 메르스다 하면서 메르스 공포에도 맞서기 바빴는데 사실 내겐 당장 엄청난 피해를 볼 뻔한 보이스피싱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사기를 이용한 또 다른 사기

보이스피싱 사기의 주된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당신 이름으로 대포통장을 개설한 용의자와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주된 거래장소는 경기도 광주였는데 그 거래장소에 간 적이 있는지, 주된 거래 은행 및 주요 예금 및 적금 개수와 총액은 어느 정도인가 등을 묻더니 사건번호를 말해주고 사건을 맡은 검사에게 전화를 넘겨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메모를 하려고 책상에 나와 앉아 있는데 사무실에 계신 분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표정이 심각해?"
"아…. 제 이름으로 대포통장 개설됐다고 서울 중앙지검? 그쪽에서 전화가 왔어요."

"대포통장? 야! 그거 보이스피싱이잖아!"

사무실 분들에게 보이스피싱이란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쪽이 말하는 검사에게 전화가 연결되고 나서 나는 스피커폰으로 전환한 뒤 걸려온 전화번호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포털사이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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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했던 보이스피싱 이렇게나 많은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들. ⓒ 이수지


'이 번호 보이스피싱이니까 조심하세요. 대포통장 사건이라고 전화왔어요.'

이렇게 적힌 글들이 화면 한 가득. 이렇게 바보같이 당할 줄이야…. 순진하게 의심도 한 번 안 하고 묻는 말에 곧이곧대로 대답하던 나는 그 포털 검색창을 보며 멍해졌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무실 분들께서 전화기에 대고 다짜고짜 물었다.

"너 누구야, 이름이 뭐야!"

추궁이 이어지자 전화를 건 사람은 어쭙잖게 어디 소속 검사라고, 누구신데 이러시냐고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엔….

"왜 반말이야, XX새끼야!"

이렇게 외치곤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는 순간 내 머릿속도 순간 백지장처럼 하얘졌고 주변 분들은 '왜 이렇게 순진하냐'며 'SNS에서 돌아다니는 영상 못 봤냐'고, 대포통장이라면서 사건번호 말해주며 계좌번호,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술술 말하게 만드는 게 보이스피싱이라고 조언해줬다. 아, 진짜 바보같이 당할 뻔했구나.

얼마나 지났을까.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하다가 같이 일하는 사무실 분께서 받았다.

"여보세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다짜고짜 왜 반말이냐며, 너 누구냐며 소리를 질러댔다. 분이 덜 풀렸는지 욕을 한 번 더 하고 끊어버렸다. 거의 다 넘어온 먹잇감을 눈앞에서 놓친 분통인지, 가만히 있다가 반말을 들은 것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사무실 동료분들 덕분에 그 전화가 보이스피싱이란 걸 알았다. 덕분에 포털사이트에서 모르는 전화번호를 찾아보게 됐고,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화를 받았다는 글을 보면서 눈 뜨고도 코 베어간다는 말이 어떤 건지 절절히 실감했다.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보이스피싱에 낚일 뻔한 이야기를 페이스북, 블로그 등 각종 SNS에 올렸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일로 당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또 부모님, 동생, 친구들한테도 전했다.

혹자는 쪽 팔리지도 않냐고, 사기당한 게 뭐가 자랑이라고 올리는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보같이 당할 뻔한 내 잘못은 이미 과거일 뿐, 주변 지인들도 조심할 수 있도록 여기저기 소문을 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했지만 스팸 차단 등의 어플도 설치해 모르는 번호는 먼저 인터넷에 찾아보고 받기도 했고, 어떤 전화는 일단 안 받기도 했다. 열심히 뒷수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사기 치는 사람보다 당하는 사람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 보면 명의도용을 통한 신고를 빙자해 보이스피싱의 범죄를 저지른다는 뉴스를 보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내 명의를 도용해서 통장을 만들고 금융사고가 발생했으니 계좌번호나 비밀번호를 말해달라는 식이었다고 하던데, 나는 뉴스를 보면서 '바로 보이스피싱인지 알 것 같은데 왜 당하는 걸까' '나이분들께 일부러 맞춰서 전화를 하는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많든 적든 지레 겁먹고 묻는대로 술술 말해버리면 답도 없겠구나 싶었다. 막상 내게 그런 일이 닥치고 나니까 보이스피싱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단 범죄수사과 혹은 중앙지검이라는 말을 들으니 괜스레 무서워졌다. 보이스피싱이라고 하면 은행과 관련된 전화이거나 누군가 납치당한 것으로만 생각했던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다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세상의 무서움을 그대로 맞게 돼 한동안 보이스피싱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 개인적인 마음가짐이야 '앞으로 조심하자'라는 말로 정리하고 모르는 번호는 안 받으면 되지만, 근본적으로 보이스피싱이 주는 사회적 비용과 피해는 생각보다 더 클 것이다. 사무실 동료분들의 말씀을 빌리자면, 보이스피싱으로 큰 금액을 사기당한 지인의 아버지는 목숨까지 끊었다고 한다.

단순히 금융사고를 당해서 돈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내가 바보같이 사기를 당할 뻔했다는 자괴감은 생각보다 무척 컸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왜 그걸 당할 뻔했느냐'고 걱정해주는 말이 비아냥으로 들려 더 싫었다. 누구는 넘어가고 싶어서 넘어갈 뻔했겠는가.

그런데 의아한 게 하나 있다. 이런 금융 사기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그 사람이 행한 정당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비판이 그다지 신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런 금융 사기를 당했거나, 당할 뻔한 이에 대한 비판은 비교적 거세다. '멍청해서 그렇다' '이래서 사람이 바보처럼 살면 안 된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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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지킴이 보이스피싱에 대한 피해사례 및 신고는 바로바로! ⓒ 이수지


설사 피해자가 사람을 쉽게 믿고 바보처럼 당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피해자가 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냥 개인이 잘 대처하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보이스피싱 사태가 점차 심각해짐에 따라 단순 가담자도 징역 5년, 금액과 범죄사실에 따라 최고 무기징역까지 구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고 7년~15년의 솜방망이식 처벌에서 무기징역이라는 강수까지 뒀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사실이다.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인터넷만큼 나날이 발전해가는 사기 행각들에 여전히 시민들은 불안하다. 누구도 지켜주지 않으니 나라도 나를 지켜야 하지만 조금은 누군가를 믿고 살아갈 수 있는 구조적인 대안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모르는 번호는 받지 말아야겠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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