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검사 날리기 좋아... 결국 검찰 장악하겠다는 것"

[검사 길들이기③] 검찰 내 풍문과 검사들의 생각

등록 2015.07.08 14:22수정 2015.07.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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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도입돼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듣던 검사 적격심사제로 검사 1명이 면직처분 됐습니다. 주요 언론들은 '11년 만에 첫 탈락자가 나왔다'고 단신으로 보도했지만 검찰 내부는 이 일을 두고 술렁였습니다. "내년엔 내 차례가 될 것"이라며 법무부의 적격심사 강화를 저지하겠다는 검사도 나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가뜩이나 '정치 검찰'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검찰, 여기서 벗어나고자 몸부림 치는 일선 검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검사 적격심사에서 탈락자가 나와 면직 처분됐다는 소식은 검찰 내부에서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제도시행 11년 만에 처음으로 면직됐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A 검사가 '튀는 검사'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심사내용이 비공개이기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이야기가 검찰 내부를 떠돌 뿐이다. 

'선배 검사들과 갈등이 심했다더라'

'제때 처리하지 않고 묵혀둔 사건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프로스에 불온한 글을 많이 올려 찍혔는데 적격심사를 계기로 A 검사가 맡은 수사기록을 다 뒤져서 탈탈 털었다더라'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는 결국은 A 검사가 직무를 태만히 한 게 적격심사 탈락 사유 아니냐는 것이다.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게으른 검사를 쫓아낸 조치라고 보는 시각이다.

서울 소재 지방검찰청에 근무하는 B 부장검사는 "설령 선배들과 안 맞고 사건을 묵혔다고 해도 적격심사로 내쳐선 안 된다고 본다"는 의견이다. 그는 "선배와 갈등이 있다면 그게 꼭 후배 탓인가. 양측을 다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만약에 그 친구가 일을 잘 못했다면 선배들이 훈계하고 잘하도록 만들어야 검찰이 제대로 돌아가는 거지, 그냥 잘라내서 될 일이냐"고 반문했다.


A검사와 같은 지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수도권 지검의 C 부장검사는 "이해가 안 간다. 굉장히 일을 열심히 한 후배"라고 기억했다. 그는 "A 검사가 독특한 면은 있었다. 다른 검사들이 신경을 안 쓰는 실무 부분의 세세한 부분까지 회의에서 얘길 꺼내놨던 게 인상 깊었다"고 했다.

한 전직 검찰 간부 D씨는 "같은 지검에 근무할 때였는데 이 친구가 며칠 휴가를 냈는데 뒤에 알고 보니 장가를 간 거였다. 동료들한테도 알리지 않고 결혼을 한 거였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불려가서 혼이 났다는 얘길 들었다. '너가 뭐가 대단하다고 얘기도 않고 그러냐'고. 그런데 A 검사는 '축의금 받고 그런 게 싫었다'고 했다고 들었다"고 기억했다.

이런 평가들을 들으면 과연 A 검사가 검찰청법이 규정한 "직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검사로서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해당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게시판에 글 올린 걸 못 참아 잘라내냐' 애기 돌아"

결국 세 가지 풍문 중 마지막 이야기가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상황이다. A 검사는 14년 동안 검찰에 재직하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110여 편의 글을 올렸다. 주로 공지사항이나 사직인사 등이 올라오는 이프로스 게시판에 검찰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올리니 '튀는 검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 중엔 과거사 재심 사건 때 상사의 지시를 어기고 법정 문을 걸어 잠근 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한 임은정 검사를 지지한 글도 포함돼 있다.

검찰 내부를 향한 의견개진이 활발했던 A 검사를 적격심사로 잘라낸 효과는 검사들의 인식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지검에 근무하는 평검사인 E 검사는 "A 검사가 잘린 뒤에 검사들끼리 '이프로스에 글 올린 걸 못 참아서 자르냐'는 얘길 했다"고 했다. A 검사의 면직을 '쓴소리한 검사 잘라내기'로 인식한 검사들이 많았던 것이다.

A 검사를 잘라내기에 앞서 법무부가 검사 적격심사 제도를 한층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우려를 증폭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국회에 검찰청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제출했는데, 골자는 임명 뒤 7년마다 하던 적격심사를 '임명 2년 뒤, 그 뒤엔 5년마다'로 주기를 줄이고, 부적격 사유도 ▲ 신체·정신상 장애 ▲ 근무성적 불량 ▲ 검사로서 품위유지 곤란 등으로 구체화했다.

법무부는 적격심사 강화 이유를 "검사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를 조기에 퇴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하지만 검사들에게선 "평검사들을 더욱 옭아매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검사장 출신 E 변호사는 "적격심사를 도입할 당시엔 사실 유명무실했다. 아주 무능한 사람이 있다면 경고 등 징계로 신호를 주면 본인이 스스로 검찰을 나갔다"며 "이번에 검사 한 명을 내보내고 난 다음에 '다음은 내 차례'라고 말하는 검사도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적격심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E 변호사는 "아주 안 좋다. 검사의 신분보장에 문제가 생기고, 모든 검사들이 겁먹게 된다"고 진단했다.

"검사가 소신에 따라 사건 처리할 수 있겠나"

C 부장검사는 먼저 적격심사 강화가 "부장검사 이상 되면 적격심사는 별 의미가 없고 결국은 평검사나 부부장 검사들을 날리는 데에 악용하기 좋은 제도"라고 했다. "일 잘했다고 부장 승진시켰는데 적격심사에서 탈락시키면 결국 스스로 인사를 잘못했다는 얘기밖에 더 되겠느냐"는 것이다. 

C 부장검사는 또 "비리 검사는 이미 징계 제도를 통해서 솎아내고 있는데, 적격심사를 강화하면 징계할 만한 사유가 없어도 검사들을 꽉 잡을 수 있게 된다"며 "어린 검사들은 적격심사가 겁날 수 있다. 그러면 검사가 소신에 따라 사건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검사도 판사와 대등하게 신분을 보장해줘야 한다. 사법권 독립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라면 검찰권의 독립은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런 식으로 껍데기만 민주주의 하겠다면 결국은 검찰을 장악하겠다는 걸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B부장검사는 법무부의 적격심사 강화방안에 탈락사유로 '근무성적 불량' 항목이 추가된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적격 심사에 근무점수를 반영하면 검사가 독립적으로 판단하면서 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그나마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은 건 정치적인 외압으로부터 자유롭고 법관들이 이런저런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판단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이는 법관의 신분보장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대법에서 파기환송 해도 1·2심 판사에게 재판 잘못했다고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적격심사를 강화할 게 아니라 검사도 독립된 소추기관으로서 신분을 보장해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검사 길들이기 #검사 적격심사 #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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