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 내린 날, 숲길에는 바람이 불었다

[고양힐링누리길] 고봉누리길 가는 길을 걷다

등록 2015.07.16 09:40수정 2015.07.1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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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힐링누리길 ⓒ 유혜준


서울에 첫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고양힐링누리길을 걸었다. 더운 날, 뭐하는 짓이냐고 하지 마시라. 녹음이 우거진 숲은 도심보다 4도~7도가량 낮다. 그러니 더위를 피하려면 숲으로, 산으로 가면 된다. 아무리 뜨거운 한낮이라도 숲에서는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걷느라 흘린 땀을 식혀준다.

10일, 우리가 걸은 길은 공양왕릉에서 고봉누리길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고봉누리길과 송강누리길을 이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고양힐링누리길 코스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지만, 조만간 들어갈 예정이다. 작년에 이 길을 이으려고 서너 번 정도 걸었던 적이 있다. 결국, 걷기 좋은 길을 찾았고, 길은 이어졌다. 이날, 우리가 걸은 길은 10km 남짓.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걷다가 더위 먹을 일 있나, 유유자적 걷는 거지.


안보선 고양시청 녹지과 자연생태팀장, 정창식 주무관, 유정순 고양생태공원 생태해설사가 함께 걸었다. 유 해설사는 평소에 고양힐링누리길을 걷고 싶었는데, 마침 쉬는 날이라 짬이 났다면서 걷기에 참여했다. 덕분에 걷기가 더 즐거워졌다.

오후 1시, 공양왕릉 입구는 푹푹 쪘다.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공양왕이 너무 더워서 도저히 못 참겠다면서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할 정도였다. 하지만 폭염은 숲길이 시작되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따가운 햇빛 가려 주는 고마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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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을 피해 숲길로 들어갔다. 시원하다. ⓒ 유혜준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들은 깊은 그늘을 만들었고, 바람은 그사이를 비집고 불어왔다. 길 한쪽에서 화려하게 피어났던 금국이 지고 있었다. 봉숭아꽃이 색색으로 피어났다. 내가 기억하는 봉숭아꽃은 손톱에 물을 들이던 핏빛처럼 붉은빛인데, 길 위에서 만나는 봉숭아꽃은 연분홍도 있고 보랏빛도 있다.

나뭇가지들이 엉키면서 무성한 나뭇잎들이 숲길에 햇빛을 막아주는 가림막이 만들었다. 그 아래를 지나가려니 시원한 바람이 분다. 여름에는 멀리 갈 것 없이 가까운 숲을 찾아가자. 고양시에는 이런 숲길이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우와 산딸기다. 내 뒤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눈길을 돌리니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지천이다. 그 사이로 아직 새파란 딸기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7월인데 아직도 산딸기가 익지 않았구나. 아마도 나무가 만든 자연 햇빛 가림막 때문이겠지. 햇빛을 막았으니, 더디 열매를 맺었고, 더디 익어가는 것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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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을 피해 길 위로 나섰다. ⓒ 유혜준


이 길을 꼭 기억했다가 나중에 다시 산딸기를 따러 와야겠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때까지 남아 있을까?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그렇게 누군가 받아쳤다. 그럼, 지금 익은 것만이라도 따먹어야지.

이 길에서는 자두나무에 열린 자두마저 풋내를 푹푹 풍기는 푸른빛이다. 진짜로 이 길은 열매가 더디 익는 길인가 보다.

앙상한 작은 나무 아래 개집 2개가 놓였다. 개 한 마리가 사람의 기척에 뒤로 주춤거리면서 물러난다. 경계하는 눈빛이 또렷하다. 녀석 뒤에 있는 개집에 개 한 마리가 숨어서 끙끙거린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녀석들인 것 같다. 개집 주변 풍경이 색달라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고 들이밀자 녀석들의 두려움이 한층 깊어졌다.

해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개집에서 멀어지자 그제야 기가 살아난 녀석들이 목청껏 짖어댄다. 우리가 멀어질수록 녀석들의 목청이 커진다. 에이, 가까이 가면 깨갱 할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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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아, 우리 무서운 사람 아니야. ⓒ 유혜준


걷고 또 걸었다. 걷기 좋은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걷는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폭염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지만 숲길에서 벗어나자 폭염이 기다렸다는 듯이 발톱을 세우고 덤벼든다.

이날, 길 위에서 가장 많이 본 꽃은 도라지꽃이었다. 하얀 꽃을 먼저 봤고, 보라색 꽃을 나중에 봤다. 몇백 송이의 도라지꽃을 보고 또 봤다. 꽃을 보고 있노라니 도라지의 그윽한 향이 솔솔 풍기는 것 같다. 으음, 저녁에 도라지 나물이나 해먹을까?

하지만 도라지 나물은 손이 많이 가지. 도라지 특유의 쓴 물을 빼려면 몇 시간이고 물에 담가둬야 한다. 그리고 소금으로 주물럭거리면서 쓴맛을 더 빼내야 하고. 그냥 꽃을 본 것으로 만족하자.

걷고 또 걷고, 끝없이 이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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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친구가 있으면 걷기가 즐겁다. ⓒ 유혜준


은행나무가 유명한 사리현길을 지나고 견달산 사격장을 지났다. 콩을 볶는 것 같은 총 쏘는 소리가 메아리가 돼 들려온다. 견달산 사격장 근처를 지날 때는 조심하는 게 좋다. 사격장에서 쏜 총알 파편이 날아다닐 수 있다나.

"저기, 목매달아 자살했다."

창식씨 말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 어디? 누가, 누가?

"곰 인형이."

곰 인형이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보인다. 얼씨구 '곰 인형, 세상 비관 자살로 생을 마감' 기사 제목 나왔네. 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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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힐링누리길 ⓒ 유혜준


문봉 낚시터에서 우리는 쉬었다. 숲길이 사라지니 폭염이 배낭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점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막걸리로 입을 축였다. 으음, 언제부터 막걸리가 꿀맛이었지?

숲길은 다시 이어졌다. 무덤가에 도라지꽃들이 피었다. 노란 산나리들도 외로울까 봐 덩달아 피었다. 안골마을을 지나고 성석천을 따라 잠시 걸었다. 논이 펼쳐지고, 잠자리가 날았다. 어디선가 산비둘기가 울었다. 마을을 벗어나서도 길은 이어진다. 그 길은 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도시로 돌아오니, 폭염은 꺾이지 않은 채 도심을 달구고 있었다. 이날은 밤이 깊어도 더위는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드디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구나. 자주 걷자.

○ 편집ㅣ곽우신 기자

#고양누리길 #고양힐링누리길 #고양시 #도라지꽃 #고봉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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