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션처럼 정해진 길을 권하는 한국 사회, 덴마크는?

[서평] 학점과 등록금에 불안한 대학생이 읽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등록 2015.07.21 11:47수정 2015.07.2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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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에서 일반인 부문 [꿈틀상(가작)]을 받은 글입니다. [편집자말]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 바로 행복이에요."

모델 홍진경이 이런 말을 했다. 이 글귀를 자기 전에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행복이 거창한 게 아니지.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행복은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거라고 하지만, 내 마음 속 나뭇가지들에 걸리는 걱정들은 아주 많았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이고, 모아둔 돈은 하나도 없는데, 이미 나라에 빚을 1000만원이나 지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의 세상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행복을 찾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행복하지는 못해도 불행하지만 않게 살면 다행인 세상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나 거창하다. 행복. 행복. 자꾸 같은 모양의 단어를 되뇌어 보니 어째 그것은 나의 손에서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가 더 가슴 저리게 다가온 것은. 우리'는'이 아닌 우리'도' 라는 그 작은 표현의 차이에서도 우리는 현실을 볼 수 있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더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해보는 것은 퍽 슬픈 일이지만, 해결을 위해 우리의 현실을 파악해 보는 정공법을 마냥 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등록금 무료인 덴마크, 대학생의 여유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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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대학생들. 등록금으로 등골이 휜다는 의미에서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청년 대학생. ⓒ 김용한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 국가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야, 덴마크는 행복하댄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살지도 않는다던데? 그 나라 사람들은 늘 웃고 다니겠지? 진짜 좋겠다. 우리도 덴마크로 이민갈래?"

시답잖은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속으로는 "그 행복지수 별거 있겠어? 표면적인 수치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한국에 사는 내 자신을 위로했다. "행복지수 그거 뭐, 돈 많으면 행복한 거 아닌가? 인간사는 게 다 똑같지 뭐"라는 생각이 불과 이 책을 보기 전까지도 나의 내면을 지배해왔다. 일단 한국에서의 나의 삶이 너무도 지치니까 다른 사람들(것도 타국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존경할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직접 덴마크로 날아가 발품을 팔며 그들의 행복이야기를 들어본 오연호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그들의 행복은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돈이 많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었고, 표면적으로만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직 글과 흑백의 사진으로만 그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들 개인의 행복은 순도 100퍼센트의 행복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돈에 대한 애증으로 잠 못 이루던 대학생인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챕터는 3장 '행복한 학교', 그중에서도 '공부에 전념하는 대학생의 여유'였다. 이미 책 중반을 넘어서며 구체적인 행복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장에서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초기화되는 기분이었다.

대학생이라는 단어 뒤에 '여유'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것이 어찌나 어색했는지. 그리고 나의 모습을 사찰한 듯 묘사되는 일반적인 한국 대학생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며 말하는' 코크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덴마크에서의 등록금은 모두 무료고,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일정한 생활비까지 지원해준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교육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 지원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었기에,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을 알게 되자 도대체 어떻게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있나 싶었다.

"돈이 모든 걸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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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겉그림 ⓒ 오마이북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덴마크라는 국가도 신기했고 그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며 받은 만큼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월급의 반을 세금으로 내놓는 국민들도 신기했다. 또한 국가의 역할에만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이 받은 만큼 후대에도 돌려줘야한다는 그들의 선진국적인 마음가짐에 감탄했다.

역시 행복은 일방적인 요소만으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것이 맞구나 싶었다. 그 어떤 특별한 정책이나 거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시너지 효과 그 자체가 덴마크에게 행복지수 1위라는 이름을 선물해준 것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졸업장과 학사모를 받음과 동시에 잠시 잊고 있었던 빚까지 떠맡게 될 나의 모습과 불안함에 잠 못 이루던 밤에 읽고 있던 이 책 속 단어들은 마치 우주와 내 방 사이만큼의 간극으로 느껴져서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충격은 잠시였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내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덴마크의 행복지수는 무조건적인 국가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행복'에 대한 구체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1장에 나왔던 노조비처럼 사회가 지원하는 만큼 국민 개인들 또한 국가의 고마움을 느끼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나는 표면적인 행복만을 따라 하기만 하면 행복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사회의 불행 원인을 국가에게 가장 먼저 뒤집어 씌웠다. 일단 국가가 뭐든 국민한테 퍼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행복하려면 가장 필요하고 또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돈' 아닌가? 그러니 국가가 복지비용을 늘리고 국민들이 그것을 나눠가지면 되는 것 아닌가?

오연호 작가가 만난 여러 직업을 가진 덴마크인의 이야기와 흑백 사진에서도 가려지지 않는 그들의 눈빛 속 반짝임이 나의 안일한 생각을 새롭게 깨우쳤다. 그들은 눈빛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돈이 모든 걸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직 당신이 당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죠."

오연호 작가가 자유의 다른 이름은 '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라는 문장으로 정의한 것처럼, 자유는 자아정체성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성취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10대와 20대, 30대 40대에 정해진 일반적인 코스들을 차례차례로 밟아나가야지만 사회로부터 올바르게 살고 있다는 박수갈채를 받아낼 수 있다.

경로 이탈의 불안감,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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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교통표지판 세상의 시선이 무서웠다. 경로를 이탈하면 네비게이션에서 삐빅 소리가 나는 것처럼, 내가 평범한 길로 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큰 죄악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 문병호


지금 나는 20대의 길을 걷고 있으므로, 반드시 열심히 공부해 4.5점 만점의 학점을 취득해서 최대한 빠르게 대기업에 입사하여 괜찮은 남자와 결혼을 해야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당연히 내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정해둔 기준에서 조금씩 멀어지려고 하는 것을 깨달은 시점이 바로 요 근래였고, 나는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부모님과 어른들, 나아가서는 세상의 시선이 무서웠다. 경로를 이탈하면 네비게이션에서 삐빅 소리가 나는 것처럼, 내가 평범한 길로 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큰 죄악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암울한 미래가 걱정되어 지금 이 상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지속된다면 희망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포기해버리고 싶을 만큼, 정말 그 만큼의 마음으로 행복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오연호 작가와 덴마크 국민들로부터 응원과 에너지를 받았다. 나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니 나는 내 스스로 선택하니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었고, 남들이 보내주는 박수갈채와 성공이 가져다주는 돈이 아닌, 바로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록 내 고민의 시작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나만의 문제였지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으며 그 고민은 비단 나만의 고민이 아니며, 문제점이 나에게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지구촌 사회, 좁게 보자면 한국사회는 결국 개인과 개인이 이루어져 만들어진 공동체이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해결 방법 또한 나만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과 개인으로 이루어진 '우리'라는 이름을 가진 모두가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행복의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서 시작되며, 나의 손에서 날아간 나비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다수와 단체, 그리고 나아가 국가 차원의 옷깃에까지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행복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을 읽기 전인 어제의 밤과 읽은 후 오늘밤의 하늘은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명백히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지금,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마냥 서글프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행복한 어조로 느껴진다. 이제 나는 자려고 누울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캄캄하지만 조금씩 빛나고 있는 밤하늘을 보며 당당하게 대답해 본다.

"그럼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4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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