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할머니를 외면하지 마세요

등록 2015.07.18 10:19수정 2015.07.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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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나의 저서 출판계약을 하고자 서울에 갔다. 강서구 화곡동 소재 H출판사에서 사장님을 만나 출판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곤 다시 화곡역으로 나왔다.


지하철 5호선 열차가 까치산역을 발차할 즈음 한 어르신께서 조그만 크기의 전단지(알림 쪽지)를 전철 안 여기저기에 붙이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 본 일이 아닌 듯 그 어르신의 전단지 부착 솜씨는 그야말로 능수능란했다. 한데 그 모습을 보자니 회사 근처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려 '고군분투'하는 어르신들이 떠올라 마음이 짠했다.

야근을 하려고 회사에 출근을 하자면 시내버스에서 내려 노동부 고용지원센터 건물 앞을 지나야 한다. 그러면 네댓 명의 할머니들이 전단지를 들고 있다가 행인들에게 나눠 준다. 하지만 그 전단지를 흔쾌히 받는 이는 별로 없다. 심지어는 마치 송충이라도 만난 듯 질겁 내지 기겁까지 하는 여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고개를 불쑥 내민다.

'전혀 무겁지도 않은 그깟 전단지 좀 몇 장 받아주면 어디가 덧나니? 저 할머니들도 전단지를 다 나눠줘야만 비로소 알바비라도 받으실 거 아니겠니! 니들은 집안에 할머니도 안 계시니?"

이렇게 주장하는 나는 일부러 그들 할머니들께 다가간다. 아울러 나눠주시는 전단지를 모두 받는다. 그렇게 받은 전단지는 광고 일색이다. 양면으로 인쇄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한 면만 인쇄되어 하얀 여백으로 된 전단지는 잘라서 메모지로 사용한다.


그럼 여간 요긴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전단지 배부 아르바이트는 노인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어 보인다. 요즘 날씨는 집안에서 옷을 벗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한다.

따라서 가뜩이나 늙고 기운까지 없는 노인들의 전단지 나눠주기 알바는 여간 힘든 게 아닐 터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었다. 이는 동쪽에 있는 예의에 밝은 나라라는 뜻으로, 예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이다.

혹자는 이에 대하여 과거 중국이 자신들의 속국이라 생각했던 조선의 고분고분한 태도를 칭찬하며 사용했던 말이라는 뜻의 부정적 표현으로도 본다. 어쨌거나 '동방예의무(無)국'보다는 '동방예의지국'이 나으니 구태여 꼬집고 볼 일은 아니지 싶다.

점증하는 노인 인구는 필연적으로 빈곤 노인을 양산하고 있다. '백세시대'는 말만 번지르르할 따름이지 실제에 있어선 빈곤 노인들의 인간답지 않은 삶을 강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에 난전을 편 할머니도 텃밭에서 뜯어온 푸성귀조차 다 팔지 않으면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전단지를 나눠주시는 할머니를 외면치 말라. 그 종이를 받아다가 메모지로 이용해 보라. 당신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고 할머니는 좀 더 일찍 귀가하실 수 있으니 이런 일거양득이 또 어디에 있으랴? 피할 곳 없는 도적을 쫓지 말라는 것이 궁구막추(窮寇莫追)이다.

이는 또한 곤란한 지경에 있는 사람을 모질게 다루면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있는 사람 앞에서 비굴하고 없는 사람 앞에선 거만하게 구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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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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