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진흥법', 국회의장 인성부터 돌아보라

[게릴라칼럼] 국민교육헌장과 다를 바 없는 구태법

등록 2015.07.22 21:23수정 2015.07.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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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정의화 국회의장은 최근에야 일단락된 '국회법 개정'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일터인 국회 위에 군림하는 꼴과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동료 의원들의 외면으로 사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 전무후무하고도 비상식적인 사태를 지켜봐야 하는 국회의장의 '인성'은 어떠해야 하는가. 자가 진단 해보기 바란다.

- 나는 친구와 갈등이 있을 때 잘 해결한다(배려·소통)
- 나는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책임)
- 나는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행동으로 친구의 인권(생명, 자유, 평등 등을 보장받을 권리)을 침해하지 않는다(정의).
- 나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행동한다(정직·용기).

지난 1월 교육부가 내놨다는 '인성평가 자가진단법'의 일부다. 저런 평이한 질문들로 심지어 개인의 '인성'이란 다면적이고 복잡한 대상을 '자가 진단' 할 수 있으리란 믿음 자체가 놀랍다. 진단법에 의한다면, 정의화 국회의장 본인의 '인성'은 존경받을 만한가? 정의화 의장은 지난해 5월 "세월호 참사로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이 붕괴된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인성교육진흥법(일명 이준석 방지법)을 발의한 장본인이다. 

그런 정 의장이 보기에, 세월호에서 먼저 빠져나온 이준석 선장의 인성과 세월호 유족의 요구를 몰인정하게 묵살하고 궁지에 몰아넣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성 중 어떤 쪽이 더 악질인가. 이 질문을 과격하다 볼 필요는 없다. 어쩌면, 지난 21일부터 시행된 인성교육진흥법의 핵심을 살펴보는 기본 전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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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자가진단법' 항목. ⓒ 교육부


국민교육헌장 떠올리게 만드는 인성교육진흥법

인성평가 자가진단법은 전체 10개 카테고리의 70가지 문항으로 이뤄졌다. 그 중 섬뜩한 기분을 떨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시민성' 항목 중 "나는 태극기, 무궁화, 애국가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라는 문항이다. 비록, 같은 항목에 또 "나는 다문화 친구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문항이 있더라도 말이다.

저 시민성의 첫째 항목은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해야 나라 사랑"이라고 했다는 황교안 총리나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이는 이 박근혜 정부의 철학을 연상시킨다. 21세기에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하고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아야 애국심이 고취된다고 생각하는 대통령과 총리. 그런 정부, 그런 국회가 학생들의 '인성'을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지나가던 개가 웃지 않으면 다행일 일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의 세부 항목을 좀 더 들여다봐도, 다를 건 없어 보인다. 아니, 훨씬 더 근심스러워 진다. 시행법 제2조 (정의) 1, 2항은 이렇게 명시한다.

1.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말한다.

2. "핵심 가치·덕목"이란 인성교육의 목표가 되는 것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말한다.

국민교육헌장 전문(全文)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 12. 5
대통령 박정희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놀랍게도, 어디서 많이 듣던, 아니 지긋지긋하게 교육받아왔던 덕목들 아닌가. 1968년 12월 5일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이름으로 제정·선포됐던 국민교육헌장과 크게 달라 보이는가? '협동'이란 단어는 그대로 공유될 지경이다.

그러니까, '국가주의' 하에서의 순응적인 지배 계층이 갖춰야 할 필요 덕목들과 진정 놀랍게도 일치하지 않는가. 입 닥치고 귀 닫고 눈 가리고, 일이나 열심히 하는 신업 일꾼들을 기르는 필수 가치들이 말이다. 2015년의 '인성 교육'에 걸맞으려면, 인권이나 시민 의식, 자율이나 정의, 공동체 의식과 같은 가치가 최우선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논술 교육' 대체하는 '인성 교육' 시장?

세월호 참사는 이준석 선장 개인의 '인성'이 망가져서 벌어진 사고가 아니다. 노후하고 관리 불능 상태였던 선체와 선원들, 구조 시스템과 컨트롤 타워 부재로 벌어진 비극이라는 점이 이미 밝혀졌다. 지난 5월 '세월호 참사'를 거론하며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지극한 핑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성교육진흥법'을 주도한 정의화 의장은 역시 진흥법 제정 운동을 전개해온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아래 인실련)과 철학을 같이 해온 인물이다. 정의화 의장은 2013년 2월 창립한 국회인성교육실천포럼 상임대표를 맡은 바 있다. 인실련은 이 국회인성교육실천포럼의 창립과 활동을 자신들의 주요 업적으로 꼽을 정도다.

그들이 주장하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허울만 있을 뿐이다. '논술 교육'을 강조했던 과거 일부 교육계 단체나 인사들의 주장과 수사만 바꿨을 뿐 크게 달라 보이지도 않는다. 수용자인 학생들은 제쳐두고, 누가 이 법과 시행령으로 이득을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실제 일련의 조짐만 살펴봐도 이러한 의문은 금세 어이없는 방향으로 풀려 버린다.

"교육부장관은 인성교육 진흥을 위하여 인성교육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거나 인성교육과정을 개설(開設)·운영하려는 자(이하 "인성교육프로그램개발자등"이라 한다)에 대하여 인성교육프로그램과 인성교육과정의 인증(이하 "인증"이라 한다)을 할 수 있다."

인성교육진흥법 제12조(인성교육프로그램의 인증) 1항의 내용이다. 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교육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인성교육프로그램을 공교육에 도입하려면, 프로그램 개발과 전문 자격을 갖춘 교육자가 필요하다. 인실련 소속 단체는 이미 인성교육 관련 민간자격증 사업에 뛰어든 지 오래라고 한다(관련 기사 : 앞에서는 '인성교육법 운동', 뒤에선 돈벌이?). 이를 위해 인성교육진흥위원회(제9조)도 설치된다. 교육계 인사들도 한 자리 차지할 '시장'이 열린 것이다. 

인성교육을 위한 학원들도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쯤 되면, 논술 교육을 대체할 기세다. 대학 입시에까지 반영되지 않으리란 보장을 누가할 수 있단 말인가. 반면 일선 교사들은 교육부가 정한 연간 15시간의 초중고 교사 인성교육 연수 시간에 반발했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 훈시도 아니고, 인성교육 연수라니. 연수 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일선 교사들은 과연 개별 교과목에 인성교육을 접목하라는 교육부의 방침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인성 교육을 교과목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인성 교육, 어른들의 모범이 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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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의장 ⓒ 남소연


"사람들과의 관계와 경험 속에서 스스로 발전시키지 않고 특정 기준에 맞춰져서 응용할 수 없는 '교육된' 인성이 얼마나 덕을 갖출 수 있을까. 교육자들은 그들의 역할이 아이들을 인내심 있게 지켜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진짜로 학생들의 인성이 함양되길 바란다면 직접 모범을 보이는 것 이외에는 교육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대한민국청소년의회'에 올라온 "인성 평가하는 한국의 교육 공장"이란 글의 말미다. 명쾌하고 정갈하다. 인성을 교육할 것이 아니라 본받을 만한 인성을 보여주는 것이 진짜 인성 교육이란 일갈이다. 어른들의 인성이 거울이 되어 아이들의 인성에 반영될 거라는 이 보편적이면서도 뼈 아픈 진리라니. 참고로, 대한민국청소년의회는 청소년 자신들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0년 청소년들의 힘으로 독립 법인화된 단체다.

만약, 정의화 의장과 인실련 등 일부 교육 단체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것처럼 아이들의 인성이 망가지고 있다면, 그건 교육의 부실 탓이 아니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그 경쟁을 입시로, 취업 시장으로 발전시키는 이 나라 교육 시스템 전체의 문제다. 그저 (제대로 실행될지도 의문인) '인성교육'이란 허울로 눈 가리고 아웅 할만한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최근 서울대학교는 집단 커닝 사건 이후로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교양 과목을 늘렸다고 한다. 또한 신입생 필독서 선정위원회를 발족, 신입생들에게 지정한 책을 읽고 서평 제출을 의무화하도록 했다고 한다. 환영하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책 몇 권 더 읽는다고 과연 인성이 변화되리라 믿는가.

인문학을 죽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제도 교육과 대학 교육 아래서 '인성 교육'이란 새로운 '학과 과정'을 신설하는 건 시간과 돈 낭비일 뿐이다. 정의화 의장은 한 포럼에서 "인성은 교육될 수 있어도 측정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그대로 돌려 드리려고 한다.

"인성은 (그런 식으로)교육될 수도, 측정될 수도 없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인성교육진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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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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