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가 뱀에 물리면 '뱀 사진'을 찍는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초등 보건교육 바로 잡아야 한다

등록 2015.07.23 18:14수정 2015.07.2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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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은 <유러피안 드림>에서 '유러피안 드림'과 '아메리칸 드림'의 차이점을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은 어려움을 용기로 극복하고 현실을 개척하는 개인들에 대하여 열광하면서 세계사를 이끌어왔지만, 유러피안 드림은 공동체주의를 표방하면서 이제는 기후변화, 유전자 조작 식품, 성차별 등 다소 민감한 주제까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진일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체는 실용, 효율, 성과 등에 집중했던 아메리칸 드림이 기울어가는 반면, 날로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사회 속에서 성찰, 가치, 과정 등에 무게 중심을 둔 유러피안 드림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

현재, 2017년을 시초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될 2015 개정 교육과정이 9월 고시를 목표로 한참 막바지 연구 중이다. 292개 교과목의 전면 개정을 앞두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교과목별 교육과정 개정의 장·단점이나 문제점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보건과의 경우,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초등학교도 중·고등학교처럼 초등 보건교육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초등학교 보건교육과정은 없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가이드라인이 없이 초등 보건 교과서만 개발되다 보니, 중·고등학교 보건교육과정과의 연계성이나 체계성이 미흡하다.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교과서가 개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보건과의 경우엔 사회적 필요 때문에 부랴부랴 보건 교과서는 개발되었지만, 보건교육과정은 없는 기형적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즉, 머리는 없는데, 몸통만 움직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대개 응급처치 수업은 실습에 들어가기 전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응급처치 방법을 스스로 생각해보면서 익히도록 하는데, 아이들의 대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초·중·고 보건교육의 구멍이 어떤 식으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경험이 가능하다.  


평소 흠모하던 오빠가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삐었다면, 얼음 팩과 뜨거운 찜질 팩 중 무엇을 먼저 대주어야 할까, 물었더니 생각지도 못한 답이 튀어나온다. 얼음 팩을 먼저 사용하겠다는 인화(가명). 이유인즉 얼음 팩을 사용해, 오빠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함으로써 누가 간호하는지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뜨거운 찜질 팩을 쓰겠다는 서영(가명)이는 오빠가 아파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으니, 찜질을 통해 통증을 먼저 가라앉히겠다고 주장한다.

여자 친구가 뱀에 물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자, 성호(가명)는 가능하다면 핸드폰으로 뱀의 사진을 찍겠단다. 병원에 가서 어떤 뱀에 물렸는지 보여주면 빨리 해독제를 찾지 않겠느냐는 게 이유다. 강호(가명)는 뱀에 물리면 독성 반응으로 숨쉬는 게 힘들어질 수 있으니 얼굴이나 목 부위가 괜찮은지 수시로 살피겠단다.  

다섯 살 딸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앞니가 빠졌다면 어떤 응급처치가 필요할지 묻자, 인미(가명)는 딸에게 동화를 들려주면서 딸과 함께 치아를 지붕으로 던지겠단다. 반면 성후(가명)는 치아를 우유에 넣어 치과로 곧장 달려가겠다고 답변했다.  

다리를 삐면 얼음 팩을 먼저 대주어야 하며, 뱀에 물렸을 때는 독성 반응이 급작스럽게 나타나 호흡곤란 등이 올 수 있으므로 호흡을 잘 살펴야 한다. 유치인 경우에는 별다른 응급처치가 없고, 필요 시 2주 내에 치과를 가서 상담만 받아도 된다.  

그나마 정확하게 말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보건 수업을 받은 아이들이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보건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갈 길이 멀다. 2009년부터 모든 학교에서 초·중·고등학교 보건교육이 정규적으로 이루어졌으니, 불과 7년여 동안 법률이 정한 보건 수업 이수 유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의무화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심폐소생술이 포함된 초등학교 보건교육과정이 없는데, 어떻게 교육을 의무화할 수 있을까. 유러피안 드림이 표방하는 '성찰'은 2015 교육과정 개정에도 적용해야 할 가치가 아닐는지.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지학 시민기자는 중흥고 보건교사입니다.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건교육 #2015 개정 교육과정 #심폐소생술 #응급처치 #학교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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