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점 반> 겉표지
창비
그림책 속 여자 아이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동네 슈퍼에 가서 시간을 물어본다.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때는 바야흐로 넉 점 반(네 시 반)! 아이는 행여 시간을 잊어버릴까 봐, '넉 점 반, 넉 점 반'을 중얼거리며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집으로 오는 아이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물 먹는 닭에서부터 개미와 잠자리도 살펴야 하고, 분꽃을 따 입에 물고 '니나니 나니나' 놀기도 해야 한다.
책 속의 여자아이처럼 여기저기 쏘다니게 하지는 못하지만, 첫째는 공원에만 나와도 무척 좋아한다. 이렇게 아이 둘과 밖으로 나오면 집에서 놀 때보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아 나도 좋다.
하지만 아이들과 공원에 온 지 한 시간이 넘어가면 초조해진다. 집에 가서 밥도 안쳐야 하고, 준비해둔 찬거리도 조리해야 하는데…. 지금은 저렇게 뛰어놀지만 분명 올라가자마자 배고프다고 난리 칠 텐데….
자꾸만 시간을 확인하던 나는 이미 상상 속에서 부엌으로 달려가 한창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엄마를 첫째가 같이 그네 타자고 부른다.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집으로부터 공원으로 소환된다.
저녁 식사 준비, 둘째 수유 등 해야 할 일들을 잠시 잊고 오래간만에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타면서 밀린 집안일을 잊고, 나도 아이처럼 깔깔거리며 웃어본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항상 앞만 보고 걸었던 나이다. '조금 더 빨리 걸어야 신호등이 켜질 때 바로 건너겠구나, 이제 곧 차가 막힐 시간이니 빨리 출발해야겠다' 등 머릿속에 항상 '빨리'를 달고 다녔다.
그랬던 내가 아이 덕분에 가만히 넋 놓고 하늘도 보고 땅도 본다. 내 키보다 훨씬 더 높이 달린 거미줄도 보고, 아이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 지렁이와 개미들을 한참이고 구경한다. 이제는 공원에 가면 어디에 큰 개미구멍이 있는지 척척 찾아낼 정도다.
들여다보기의 힘광고 홍보 전문가 박웅현은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 여덟 단어>라는 책에서 '견(見)'을 말한 바 있다.
모두가 보는 것을 보는 것, 시청(視聽).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 견문(見聞). 아이와 함께 느긋하게 공원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견'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봄에 피는 꽃은 뭐 뭐, 여름에 열리는 열매는 뭐 뭐 이런 식으로 암기만 했다. 그런데 아이와 공원을 거닐면서 봄이라고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목련이 먼저 피고, 그 하얀 꽃이 덩어리로 툭 떨어진 다음에야 벚꽃이 피어남을 보며 비로소 진정한 봄을 느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