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부추기는 사회, 봉고차에 살며 빚 갚았다니

[서평] 청년 학자금 분투기 <봉고차 월든>을 읽고

등록 2015.08.08 10:31수정 2015.08.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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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한국장학재단 - 2011년 2학기 대출이자 납입일이 08월 05일, 우리은행입니다.'

언제 받아도 익숙하지 않은 한국장학재단 대출 이자 납부일 알림 문자. '취업 후 상환제'를 통해 대출받은 1학년 1학기를 제외하고 매달 알림 문자가 온다. 이번이 7번째다. 벌써 7년째 받는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문자를 받고 나서 혹여 통장에 이자 나갈 돈이 없을까 싶어 통장 잔액을 확인한다. 다행히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이자가 연체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자 연체로 인해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었기에 이자 납부일까지 항상 통장에 돈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매달 7번의 학자금, 생활비, 대출 이자가 빠져나가고 나면 한숨을 돌린다. 누군가는 매달 월세를 내고 나면 이번 달도 이렇게 버티는구나, 싶다는데 난 월세에 학자금 이자까지 다 나가는 매달 중순이 지나면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이번 달도 잘 버텼구나, 잘 살았구나."

스무 살에게 수천만 원 대출해주는 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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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대출 이자 납입 문자 매번 줄줄이 올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 이수지


대한민국에서 대학교는 핫 키워드다. 고등학생 10명 중 8명이 대학을 간다. 등록금 대출이나 성적을 비관한 자살 등 대학 내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들도 많다. 대학과 관련된 다양한 고민을 갖고 살았던 내가 우연히 읽게 된 책이 <봉고차 월든>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대학생활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지게 된 청년이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빚을 갚으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던 한 청년의 일대기를 담은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는 '학자금 대출'이라는 빚에 자신의 시간을 저당 잡혀 알바, 인턴 등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고 있는 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아무런 뜻도, 의미도 없이 온 대학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른 채 헤매는 청년들의 삶을 친구 '조지'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대학을 간 개인에게 잘못의 잣대를 들이대고, 돈도 없으면서 대학은 왜 갔느냐며 꾸짖는 어른들. 이 책은 그들에게 청년이 어쩌다 이런 현실을 살게 되었는지 담담하지만 사실적인 어조로 보여주고 있다.

켄은 미래의 직장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학위를 위해 3만 달러가 넘는 학자금을 대출받는다. 이자와 원금 상환에 대한 부담으로 학업 중에도 끊임없는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전전한다. 푼푼이 모은 돈으로 학자금을 상환한다. 그렇지만 '열심히 갚는다'라는 뿌듯함보단 '이래서 언제 다 갚느냐'는 무력감만 든다.

빚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무엇이라도 해야지 마음이 편해지는 시대. 책은 오늘날 청년의 모습을 당사자 입장에서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정말 내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일하면서 매달 어떻게든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아왔던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씩 벌어서 꾸준히 갚아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아무리 갚아도 크게 줄지 않는 대출금을 보며 느낀 내 삶이 무력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무력감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음을 책을 통해 위로받고 책을 통해 분노하며 책을 통해 더 깊게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시간당 8.25달러를 받으며 일주일에 30시간 이상씩 홈디포에서 일했다. 물론 일반적인 대학생들보다는 검소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돈을 잘 쓰며 살던 시절이었다. 힘들게 번 돈의 상당 부분을 매일같이 닥터페퍼를 사 마시거나, 가끔 CD, DVD, 비디오게임을 사며 낭비했고, 아르바이트를 쉬는 주말이면 자동차를 몰고 나가 멀리 떨어진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과 진탕 술을 마셨다. (중략)

어찌저찌 해서 차는 계속 굴렸지만, 얼마 안 되는 대출 상환금은 언제나 너무 보잘것없이 느껴졌고, 심지어 무슨 의미인가 싶기까지 했다. 활활 타오르는 건물에 물 한 컵 끼얹는 셈이었다. (본문 23쪽 중에서)

읽으면서 내가 깊이 공감했던 부분은 쌓여가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시점 직전까지도 켄이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학자금 대출이 직접적인 이야기로 다가올 것은 막연한 먼 미래의 이야기로 느끼기 쉽다. 언젠가는 상환하겠지만, 대학교 1~2학년 때에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했다. 내 몫이고 짐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이야기였다.

학자금 대출은 큰 액수의 돈을 빌리는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사회는 이자율을 낮춰 줄테니 일단 대출받으라고 부추긴다. 나쁘고 좋고 판단을 못 한 채 일단 대출받고 대학부터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몰아가던 구조. 그 흐름에 당시의 나도 쓸려가 버렸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난 세탁기는 어떻게 돌리는지, 공과금은 언제 어떻게 내야 하는 지도 모를 정도로 어렸던 스무 살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빚이 가져올 결과나 대학 졸업 후에 암울한 취업시장이 기다릴 가능성에 대해 어떤 경고도 듣지 못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마치 합창하듯 "학자금 대출은 좋은 대출입니다""돈 때문에 원하는 학교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는 소리도 들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나도 그 말에 따랐다. (중략) 그때만 해도 나는 정부, 대학, 그리고 대형 은행이 '이자'가 뭔지도 모르고 가스레인지 사용법도 모르는 열여덟 살짜리 아이에게 그의 삶을 크게 바꿀 정도의 다섯 자리 숫자인 거액을 순순히 대출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생각지 못했다. (본문 27쪽 중에서)

엄마와 달리 나는 대출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언젠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날은 늘 후생이나 날아다니는 차나 로봇이 일상화되고 국민의료보험 제도가 갖춰진 먼 미래의 일인 것만 같았다. (본문 61쪽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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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차 월든 표지 잉여 청춘의 학자금 상환 분투기 <봉고차 월든> 표지사진. ⓒ 문학동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켄을 통해 학자금으로 저당 잡힌 청춘에 대한 공감은 많이 했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통스러웠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들을 직접 마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 장, 한 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으며 다시 손을 뻗어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켄이 변하지 않는 현실에 무기력해지는 모습만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학자금으로 인해 좌절하고 힘들어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인생 중 순간을 놓쳤을 때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저 대출을 갚기 위한 인생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보고 느끼고 싶었던 것을 드러낸다. 내적 욕망이 강한 청년이었다.

학자금으로 인해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것. 이를 실천으로 옮겨 그는 알래스카로 간다. 알래스카에서 다양한 업무를 하며 돈을 갚아 나가고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꽤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알래스카에서 일하며 학자금을 드디어 다 갚던 순간,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욕심을 갖고 대학원 진학을 꿈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편하게 갈 방법을 두고 고민한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새미와 함께 히치하이킹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켄은 대학원 진학을 위해 짬짬이 일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삶을 움직인다.

이후 켄은 대학원 진학에 성공한다. 또다시 등록금으로 인한 빚을 지고 싶진 않아서 봉고차 생활을 하게 된다. 모든 행동의 원인에는 학자금이 있었지만 켄은 대출 상환에 파묻힌 삶을 살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더 호기심을 갖고 책을 끝까지 잡게 해 준 이유였다.

다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아가고 싶지만 빚과 다른 현실의 짐 때문에 무기력하게 사는 현대인들. 우리에게 켄의 자유분방함은 동경과 대리만족의 시원함을 선사해준다.

수백만 명의 다른 대학 졸업생들과 달리 그나마 일자리라도 있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나,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굶주리고 에이즈를 앓으며 참전 중인 이십대들보다는 나은 처지라고 쉽사리 내 상황을 정당화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나쁜 상황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일종의 체념 행위 같았다. 그 대신 나는 비통함과 증오,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을 가슴에 품었다. 그런 배은망덕함이야말로 엄청난 빚과 이따위 허드렛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본문 84쪽 중에서)

'나만의 알래스카'를 꿈꾸며 살자

젊은 날의 여행을 위한 몇십만 원이 사치로 느껴지는 현실. 무엇을 기대하고 꿈꾸며 살 수 있을까? 여전히 불안한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미래를 준비 못하는 청년 세대들은 나를 위한 투자가 점차 망설여진다. 내 삶의 방향이 '빚'에 의해서 결정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무기력해지고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이런 말이 굉장히 비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떠한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쉽사리 '힘내라'고 말을 하기도 쉽지 않다.

나는 소위 '직업 없는 세대'의 일원이었다. '망가진 세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취직을 하거나 괜찮은 월급을 받을 수가 없으며, 대학을 졸업한대도 마찬가지다. 이십대에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릴 만한 경제력을 갖출 수가 없다.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빈곤하고 더 불안한 첫 세대가 될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현실을 나보다 우리 부모님이 더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본문 315 쪽 중에서)

사실 책을 읽으면서 무조건 켄처럼 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빚을 내지 않기 위해 봉고차에서 살며 무소유를 미덕으로 삼는 삶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봉고차 월든>에서 켄을 보며 느낀 건 무조건 '빚'만 갚으며 사는 삶이 재미가 없다는 것. 그것 말고도 켄처럼 자유분방하게 사는 것이 정답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켄과 친구 조지는 서로 다른 삶을 살며 빚을 갚아나갔다. 저마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존중하며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빚을 다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돈에 혈안이 된 모습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제 몫을 하고 빚을 갚아나가며 열심히 사는 모습 중 하나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욕심은 생긴다. 물론 나는 봉고차에서 살아야 하거나 알래스카로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저마다의 알래스카'를 꿈꾸며 살아가는 건, 버텨야 하는 삶에서 자신을 움직이는 희망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나에게 알래스카는 아직 정확히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나만의 알래스카를 꿈꾸며 잔뜩 쌓여있는 학자금을 다 털어내는 그 날까지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가끔은 무기력하고 가끔은 늘어지더라도 그런 현재를 충실히 즐긴다고 생각하면서.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봉고차 월든>(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2015.6.22/ 1만4800원)

봉고차 월든 - 잉여 청춘의 학자금 상환 분투기

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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