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집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울며 전셋집으로"

[현장] 가계부채 대책 발표 후 2주, 가을이사 앞둔 서민들 '멘붕'

등록 2015.08.08 13:08수정 2015.08.0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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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 워낙 없으니까 이번에는 전세 못 구하면 그냥 대출해서 집 사려고 했거든요. 근데 생각 고쳐먹었어요."

가을 이사를 앞둔 결혼 3년차 직장인 김대명(가명, 34)씨는 요즘 다시 전셋집을 알아보느라 분주하다. 직장에서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서울 전역과 고양시 등 일부 경기도 지역까지 뒤진다. 2년 전에도 귀하던 매물이 지금은 더 귀해졌다. 

김씨는 현재 서울시 강서구 부근에 산다. 9호선 연장으로 최근 전세가가 폭등한 지역이다. 직장과 가까운 곳이 좋아 이번 전세계약 만료 후 주택 구입도 고려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부가 지난 7월 말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 때문이다.

그는 "원래 대출 팍팍 해줄테니 빚내서 집 사라는 게 정부 입장 아니었느냐"면서 "그게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 보니 이제 집 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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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 연합뉴스


"내년부터는 나라에서 대출도 제대로 안해준다던데...집값 떨어질 것"

이번에 나온 정부 가계부채 대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균등분할상환 확대다. 그동안에는 빚 내서 집을 살 경우 주택 구매자가 상당한 거치기간동안 이자만 낼 수 있었는데 내년부터는 이 기간을 1년 정도로 줄이고 그 이후에는 원금도 같이 갚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월 수입이 한정되어 있는 서민들은 사실상 주택 대금으로 돈을 빌릴 수 없다. 불과 1년 전에 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를 완화하며 실수요자들의 주택 구입을 권장했던 정부가 갑자기 정반대 입장으로 돌변한 셈이다.


정부가 사실상 주택구입을 권장한 기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반등을 거듭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2.68% 올랐다. 그러나 대출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내년부터는 지금과 같은 오름세가 유지될 거라고 보기 어렵다.

7일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서 만난 전세 세입자들은 막막함을 감추지못했다.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세 매물은 구경하기 어려운데다, 아파트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있는데 그걸 이 시기에 사기는 부담된다는 것이다.

전셋집을 알아보러 왔다가 기자와 마주친 은평구 주민인 박규식(37)씨는 "2년 전에 비해 거의 배 가까이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대출 받아서 집 사는 것은 생각 안 해봤냐'고 묻자 "지금이 상투(최고점) 인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년부터는 나라에서 대출도 제대로 안 해준다는데 서민들이 요즘 같은 불경기에 집을 살리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내년부터는 신규 주택구매가 떨어질 것이니 '지금 사면 손해'라는 인식이다. 그는 "저도 아파트 사려고 계산해봤는데 필요한 대출을 받으면 한 달 이자만 70만 원이 넘어가더라"면서 "서민 입장에서는 그렇게 빚내서 산 아파트 가격 떨어지는 것만큼 난감한 일이 또 없다"고 말했다.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유 아무개(38)씨는 올 하반기에 아예 고양시 행신동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유씨는 "직장 통근시간은 20분 정도 더 늘어나는데 다른 방도가 없으니까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그쪽에서 전세를 구했다"고 털어놨다.

그가 구한 15평짜리 아파트 전세 가격은 약 1억 8000만 원. 그는 "처음에는 어떻게든 서울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막상 전셋집 보러 갔더니 집 상태가 좋아서 지금은 만족한다"면서 "경기도만 가도 아직 전세 매물이 꽤 있고 가격도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여론은 최근 통계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7일 부동산 사이트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8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9% 오르는데 그쳤다. 전주 상승률인 0.12%보다 오름세가 다소 둔화됐다. 매매가 오름세가 주춤하면서 전세 가격도 서울 전 지역에서 상승폭이 좁아진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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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 김동환


"재개발 등 투자 목적 부동산들은 위험, 거주용 주택 가격은 정체에 그칠 것"

이날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정부 가계부채 대책 이후로 매매 문의는 거의 끊겼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 발표가 주택 매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어느정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런 현상이 집값 하락이나 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모습이었다.

성동구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박 아무개(55)씨는 "지금 거래되는 집들은 대부분 실수요자들 위주"라면서 "어쩔수 없이 서울에 살아야 하는 집들이 많기 때문에 가격이 쉽게 떨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림동 H공인중개사무소의 김아무개 소장(49)은 "지금 나온 정책 만으로는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기 어렵지만 손님들이 집 구매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역대 최저 수준인 기준금리가 올라가는 모양새가 되면 그때는 (집값이) 고전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은평구 응암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살 집과 투자 목적인 집은 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기조가 확실히 바뀐 만큼 재개발, 재건축 시장은 빠르게 냉각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나 역시 재개발 투자차 매물을 몇 건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정리하는 중"이라면서 "그러나 거주 목적의 아파트 등은 집값이 정체되는 수준에서 그칠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계부채 대책 #전세 #전세대란 #전셋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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