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전쟁' 벌이는 여야, 모두 틀렸다

[주장] 저소득층 온누리상품권 지급 놓고 논란... 획기적인 실험 계속해야

등록 2015.08.11 19:07수정 2015.08.1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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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일본 국회는 긴급경제대책이라는 이름이 붙은, 추가경정예산 13조1000억 엔(약 154조 원)을 통과 시켰다. 2012년 말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사실상 식물 상태와 다름없는 일본경제를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풀면서 대대적인 양적 완화 조처를 한 지 만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소비는 도무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말 그대로 긴급 처방이다.

이 돈 가운데 4200억 엔(약 4조1890억 원)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방 정부들에게 지급해주는 교부금이다. 흥미로운 점은 총 교부금의 37%에 해당하는 1589억 엔(약 1조5848억 원)을 법정화폐가 아닌 상품권으로 지급해 준다는 사실이다. 1만 엔짜리 상품권을 구매하면 2000엔의 프리미엄을 얹어주어 1만2000엔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주고(평균 20% 할증) 해당 차액만큼을 정부가 대신 보전해주는 식이다.

일본 정부가 국민의 생활 안정을 돕기 위한 보조금을 상품권 형태로 지급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에도 저소득층 3500만 명에게 총 7000억 엔의 무료 상품권(고향 쿠폰)을 발행한 바 있다. 현금을 줄 경우, 쓰지 않고 저축할 것이기 때문에 상품권으로 지급해준 것인데 정책 효과는 미미했다. 우려했던 그대로, 상품권을 할인(깡)해 현금화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할인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사채업자들만 돈을 벌었다는 후문이 무성했고 이 정책은 대표적인 실정(失政)으로, 반대세력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일본 정부가 다시 상품권 정책을 추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도 역시 상품권을 받은 사람 중 다수가 예전처럼 금액 손실을 감수하면서 현금화를 시도할까.

예전과는 양상 다를 일본의 추경안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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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하는 日 재무상 지난 2015년 1월 26일, 일본 도쿄 국회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아소 타로 재무상이 2014 추가경정예산안 통과를 위해 국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EPA


먼저 지방자치단체 중 절대다수(97%)인 1739개(광역 30개, 기초 1709개)가 이 사업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 지방 정부들이 매우 적극적이다. 생활고로 신음하는 지역주민들과 빈사 상태에 빠져있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 못할 일이 없다는 절박함이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어려운 시기에 중앙정부가 차려주는 밥상을 굳이 걷어찰 이유가 없다.

과거 상품권 지급 방식이 주로 취약계층들에게 무상으로 지급해주는 쿠폰 형태였다면, 이번에는 '유상지급+인센티브 제공'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확실히 쓸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되(생각이 없으면 구매하지 않을 것이므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구매 유인을 높이는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지자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최고 30%까지 할증해주는 곳도 생기고 있다.


관건은 이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곳, 즉 가맹점이 얼마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액면 가격의 30%를 할증해준다 하더라도, 쓸 곳이 마땅치 않다면 사람들은 상품권을 멀리할 것이고 종전처럼 할인의 유혹을 느낄 것이다. 할증 혜택이 없더라도 법정화폐(법화, 법률에 의해 화폐로서의 능력을 지니게 된 화폐)를 갖는 것이 더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 무슨 재화와 서비스를 사들이건 아무 제약이 없는 돈이 법화 아닌가.

따라서 만일 이 상품권을 만든 목적이 오직 '소비'를 활성화하고자 함이라면 가맹점 조건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맞다. 받고자 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가맹점 입장에서는 교환 시점에 20%의 상품 손실을 보더라도, 다음날 상품권을 가져가면 관청에서 120%를 돌려받을 수 있으므로 '웃돈이 붙은 현금 교환증서'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 촉진을 위한 도구로서의 상품권은 지역 자금의 역외유출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지역 화폐와는 다르다. 지역 화폐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경제 내에서 순환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번 돈의 상당 부분을 밖으로 내보내는 외지 건설사, 대기업 유통체인(SSM) 등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곳들의 가맹점 가입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통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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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역상품권 유통체계 정부 교부금을 활용한 상품권 유통 흐름 ⓒ 문진수


이번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상품권 사업의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역외유출 문제보다는 소비 촉진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사업의 핵심 이해관계자인 사용자(주민)와 소매점, 음식점, 슈퍼 등 지역주민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주로 구매하는 핵심 판매처(가맹점)들을 교환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다면, 성공 가능성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상품권을 포함, 법정화폐가 아닌 새로운 대안 화폐 유통체계 시스템을 구축하려 할 때, 가장 힘든 문제는 '화폐의 신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이다. 내가 구매(교환)하고자 하는 돈이 혹시라도 금전적 가치를 상실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해소해주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이 돈을 진짜 돈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고 국가가 지급 보증한 돈(법화)을 이 이상한 화폐로 바꿔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 유가증권의 지급을 보장해준다면, 즉 정당한 방법으로 상품권을 소지한 경제주체(가맹점)는 언제든 법정화폐로의 환금이 가능하다는 약속을 해준다면 이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 국가가 채무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는 한, 정부가 공포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상품권을 매개로 한 교환 시스템을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재원 마련이다. 발행된 상품권의 액면 금액은 환전을 통해 확보되겠지만, 추가로 제공되는 인센티브(20%)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므로 총 발행금액의 2할을 충당할 수 있는 자금조달 방안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게 제공해주기로 약속한 교부금 1589억 엔이 바로 이 재원이다.

결론적으로, 몇 가지 전제 조건만 지킨다면 사업 실행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역주민들로부터 상품권을 써야겠다는 매력을 끌어내고(인센티브 제공) 가맹점들이 상품권을 받는 것이 당연히 이익(매출 증가)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나아가 환투기(20% 이익 실현)를 목적으로 상품권을 구매하려는 부정한 시도를 막을 방법을 강구하는 등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이제 우리나라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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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총리, 암사종합시장 상인 격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7월 9일 오후 서울 강동구 암사동 암사종합시장을 방문해 채소가게에서 야채를 구매한뒤 온누리상품권을 지불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에게 재래시장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해주는 문제를 놓고 여야의 설전이 한참이다. 지난 6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체 추경안에 온누리상품권을 저소득층에 지급하는 사업을 포함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정책이 소비 및 경기부양 효과가 입증된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과거 일본이 실패한 사례를 들며 효과가 불분명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사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을까. 기자가 보기에는 양쪽 모두 틀린 것 같다.

야당의 경우, 총론은 옳다. 그러나 이 방법을 통해 더 많은 지역민이 혜택을 볼 수 있음에도 상품권의 용도를 바우처와 같이 바라봄으로써 수혜 범위를 좁은 울타리(취약계층 지원)에 가두어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또 사용처가 한정됨(재래시장)으로 인해 상품권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할인(깡) 시장이 형성되어 결국 정책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정부 여당의 경우,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질이란, 재정확대 정책을 통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살아나지 않는 소비부진을 해소할 방안의 수립과 실행을 말한다. 일본 정부가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상품권이라는 생소한 정책수단까지 동원하고 있는 배경에는 전통적인 정책수단만으로는 소비를 살려내기 어렵다는, 오랜 경험적 판단이 깔렸다.

경기 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내하면서도 지난 18년간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돈을 쏟아 부었지만, 반짝 효과만 있었을 뿐,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에 대해 지금 이 나라의 정책입안자들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라도 가진 것일까.

우리나라가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시에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면 애초 목표한 성장률의 달성은 물론 경기회복도 요원한 일이 되리라는 것 역시 정부와 국민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놓고 볼 때, 이 정부는 괄목할만한 성과는 고사하고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불과 1년 전 경기 부양을 위해 주택담보대출 제한을 완화한 조처를 하다가 가계부채 규모가 위험 수위를 넘자 이내 방향을 틀어버리고는 '빚내서 집 사라고 한 적 없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신용확대 정책이 곧바로 소비로 연결되는 것이 아님을 바로 옆 나라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국민이 스스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면 어떤 인위적 처방들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상품권이라는 도구가 맞는가 아닌가가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생산한 부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하려면 어떤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이다. 또 젊은 세대는 쓸 돈이 없어서, 노년 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소비하지 않는 이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국민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정부에게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편, 최근 몇몇 지자체에서 지역 상품권을 통해 주민들의 소득 보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질 낮은 삶을 사는 주민들을 위한 생활임금이나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제공되는 기본소득(배당)을 상품권으로 줌으로써 가계 소득수준도 높이고 지역 내 소비도 늘리겠다는 정책 구상이 그것이다.

수도권의 한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청년 기본소득 전액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상품권 정책이 환전을 전제로 한 인센티브(차액)만을 보전해주는 것이라면, 이 접근방법은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상품권을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매년 상당한 수준의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훨씬 높은 수준의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주민들의 살림살이를 포함해 지역경제는 이전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안전성과 환금성이 확보된 화폐는 그것이 어떤 도구적 성격을 지녔는가에 무관하게 현금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며 이는 '지역승수효과' 측정을 통해서 이미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가장 큰 도전과제는 이 크고, 담대하고, 위험한 사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의지와 신념이 존재하느냐는 점일 것이다.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과 반대여론, 법적 의제에 대한 정밀한 검토 등 실제로 이 제도가 도입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획의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중앙정부가 쳐다보지도 않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계획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칭찬해줄 만한 일이라 여겨진다. 혁신적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 청년들의 아픈 현실을 좌시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나서고자 하는 진정성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당연시해왔던 것들에 질문을 던져야 할 때

소득과 소비의 간극을 메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본소득과 상품권이 함께 공명할 수 있을까. 한 나라에는 하나의 화폐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기업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고 오직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낡은 통념이 아닐까. 이미 익숙한 질서에 침잠되어 마치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길인 것처럼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시에 선례가 없어서 실패할 것처럼 보이는, 맹랑한 시도와 겁 없는 도전을 응원하고 지원해주어야 한다. 왜? 기존의 낡은 접근방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과제가 우리 앞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선장에게 키를 맡긴 채,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바다 위에서 나침반 없는 항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문진수 시민기자는 한국사회적금융원의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상품권 #지역화폐 #기본소득 #지역 활성화 #소비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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