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사이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큰사진] 지진이 흔들어 놓은 땅... 포카라로 가는 길

등록 2015.08.13 17:04수정 2015.08.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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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세계의 지붕' 네팔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지 3개월여가 지났습니다. 이후 평화여행단체인 이매진피스 임영신 공동책임자와 신주희씨는 네팔로 달려가 공정무역 생산자들 및 신두팔촉 피해지역 현황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이매진피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네팔 현지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매진피스의 동의를 얻어 최근 네팔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편집자말]
82년 만에 찾아왔다는 두 번의 강력한 지진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여진은 네팔의 모든 산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약해진 지반과 흔들린 돌들이 여기저기서 굴러떨어지고 쓸려 내려오며,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사태 소식이 전해졌다.

신두팔촉 태양광 전달을 마치고 쓰리시스터즈를 만나기 위해 포카라로 향하는 아침, 뉴스 속에서 포카라의 산사태를 마주했다. 지난 7월 30일 새벽, 포카라 근처 룸리와 바다우레에서 일어난 산사태로 길이 끊기고 중장비도 진입할 수 없어 구조도 더뎌 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보 속 사망자는 늘어나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포카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쓰리시스터즈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길, 택시기사 아저씨께 산사태 상황을 물었다.

"너무 끔찍하죠. 한 마을이 통째로 휩쓸려 내려갔는걸요. 한밤중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피하지 못했어요. 16가구 정도 되는 작은 마을에서 28명이 죽었으니 얼마나 끔찍한 밤이었겠어요. 아직도 한 아이는 실종 상태라 시신을 찾고 있어요."

사고가 난 마을의 상황을 뉴스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아저씨께 혹여 그 마을이 페와 호수에서 가까운 곳인지 다시 물었다. 

"아니에요. 한 시간 정도 가야 해요. 트레킹하려면 지나야 하는 나야풀 가는 길에 있어요. 거기가 저희 집이거든요. 전 지금 포카라에 살지만 그곳엔 동생가족이 살고 있어요. 다행히 바로 옆 마을이라 다치지는 않았지만 너무 놀라고 무서워 (동생도) 포카라에 와 있어요. 지금은 산사태 때문에 길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군인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치우고 있으니 아마 비가 그치면 내일은 길이 뚫릴 거예요."

아저씨가 말한 내일이 되었건만 마을로 가는 길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물에 잠긴 도로, 산사태로 여전히 곳곳이 흙과 돌로 막혀, 차들은 길이 뚫릴 때까지 길 위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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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와 폭우로 길은 자주 물에 잠기고 차들은 무심히 물길을 가로지른다.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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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로 길이 막혀 버린 나야풀 가는 길. 차와 사람은 길이 복구되길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 신주희


시간당 강우량 375mm... 한 마을이 사라졌다


그렇게 다다른 룸리마을, 산자락을 타고 돌계단과 돌집으로 일구어낸 구룽족의 아름다운 전통마을이었다. 무너진 집과 지붕을 들어내며 실종자를 찾는 군인들, 곳곳에 아직도 널려있는 동물의 사체들, 산 위에선 뒤늦게 비보를 듣고 달려와 한밤중 사라져 버린 가족들의 장례를 치르고 초막을 짓고 예를 다하는 흰옷 입은 유족들로 마을은 수런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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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리마을은 산자락을 타고 돌계단과 돌집으로 일구어낸 구룽족의 아름다운 전통마을이었다.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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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일어난 산사태로 16가구 중 15가구가 통째로 쓸려내려갔다.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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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족들은 화장을 마치고 산 위에 초막을 짓고 가족들의 장례를 치른다. ⓒ 신주희


"그날 낮부터 비가 무섭게 쏟아졌어요. 그래도 산사태가 잦았던 지역이 아니라 다들 평소처럼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 우르르쾅 소리가 들리며 마을 한가운데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져 내렸어요.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돌이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커다란 공용 물탱크를 치면서 그 물과 흙, 돌들이 뒤엉켜 마을을 쓸어버린 거죠."

그날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 비는 시간당 강우량 375mm를 기록했다고 아저씨는 덧붙인다. 하늘이 뚫린 듯 쏟아져 내리던 비에 16가구가 살아가던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혹여 살아남은 사람들은 없는지 조심스레 묻자 곁에서 무심히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 한분이 불쑥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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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을 함께 해온 이웃을 하룻밤에 잃어버린 나라얀 할아버지(72) ⓒ 신주희


"살아남은 사람이요? 그게 바로 저예요. 저희 집이 유일하게 아무도 다치지 않은 집이에요. 나머지 집들은 모조리 쓸려 내려갔어요. 다 죽었어요. 한밤중에 산에서 물이 쏟아져 내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72년간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나랴얀 할아버지. 사망자 29명... 우리에게는 숫자일 뿐인 뉴스 속의 한 줄이 나라얀 할아버지에겐 평생을 함께해 온 이웃들의 떼죽음이었던 것이다. 72년을 더불어 살아온 마을이 사라진 지옥 같은 밤을 전하는 할아버지의 눈가가 이미 눈물로 짓물러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나라얀 할아버지 댁을 제외하면 심하게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실려 간 사람이 3명 정도 더 있다 했다. 마을 깊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시던 람 아저씨가 나라얀 할아버지 대신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다해야 겨우 6, 7명 정도가 살아남았어요."

사람만 간신히 수습한 마을 곳곳에 통째로 쓰러져 있는 소와 염소 가축들의 사체가 산사태의 무서움을 전해준다. 한국 뉴스에도 보도되었던 이 거대한 산사태의 현장... 여러 구호단체와 엔지오들이 도착해 있을 줄 알고 찾아온 현장에선 엔지오 조끼를 입은 사라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산사태가 난 지 불과 3일, 혹여 그간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묻자 람 아저씨가 가만히 알려주신다.

"그야 이웃들이죠. 작은 산길이 물길을 갈라서 다행히 바로 옆 마을 사람들은 피해가 없었어요. 그 무서웠던 밤, 아수라장이 된 집 속에서 시신을 수습한 것도 다친 사람을 병원에 옮긴 것도 다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이웃들이었어요."

마을에 다다른 도움은 네팔 적십자에서 가져다 준 쌀과 방수포... 그리고 산사태의 폐허 속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는 것은 네팔 군인들의 몫이었다. 4월의 네팔을 가득히 덮고 있던 세상의 카메라들은 이미 제자리로 돌아간 지 오래다. 가장 먼저 아픔의 자리에 서는 것도, 가난한 손 내밀어 이웃의 아픔을 돕고 있는 것도 여전히 네팔의 사람들의 몫이었다. 다행히 그들에겐 아직 '이웃'이 있었고, 그 이웃들은 지진이라는 아픔을 깊이 끌어안으며 새로운 삶을 함께 일구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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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명이 죽고 1명의 아이가 실종되었다. 마을 곳곳엔 아직 수습하지 못한 가축들의 사체가 널려있고 군인과 마을사람들은 실종된 아이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무너진 집들을 뒤진다. ⓒ 신주희


삶으로 짜는 희망의 베틀

산에서 내려오는 길, 포카라 전역에 흩어져 있는 500여 명의 여성들과 함께하는 WSDO(Women's Skill Development Organization)의 안부가 궁금해 포카라 한켠에 자리한 센터를 찾았다. 색색 고운 빛으로 염색된 실과 천들, 한켠에서는 베틀에 앉아 천을 짜는 여성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터전은 온갖 짐과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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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DDP의 대표, 람칼리씨 ⓒ 신주희


무슨 일인지 깜짝 놀라 여쭙자 마당 한가운데서 사람들을 지휘하던 람칼리 선생님은 이사하는 중이니 염려 말라며 웃는다. 그 경황에 몇 해 전 찾아뵈었던 일을 기억하고는 마당 가득 쌓인 짐 무더기 속에서 의자를 찾아내고 방석을 가져와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 송구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다행히 우리 생산자들 중에 지진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어요. 포카라는 지진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 어디로 지진이 찾아올지 모르는 두려움이 우리 속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마침, 정부가 40여년간 임대해 주던 땅을 갑자기 내놓으라 해서 이사를 하던 중이었어요... 공정무역이라는 말도 모르던 시절 여기서 몇몇 사람들과 작은 희망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586명이나 되는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네요."

이사중이라 한들, 어찌 먼 길 온 사람들을 홀대할 수 있겠느냐며 짜이를 가져다주시는 마음의 환대... 따뜻하고 달콤한 짜이를 마시며 40여년 베틀을 가르치고 천연염색을 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며 울고 웃었을 공간을 망연히 보시는 그 마음에 잠시 함께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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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전역 586명의 여성들과 함께 해온 수공예 공정무역 단체 WSDDP. 지난 40년간 사용해 온 터전을 갑자기 비우라는 정부의 요청에 우기와 산사태의 경황중에 이사를 하고 있다. ⓒ 신주희


포카라엔 웬일이냐는 물음에 룸리에서 내려오는 길이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현장이었지만 도울 수 있는 손은 너무 작고 무너진 삶과 마을이 너무 많아 아프고 무거운 여정이었다고 마음의 안부를 나눴다. 혹여 WSDO생산자들 중에 혹여 룸리 사람은 없는지 묻자 선생님 얼굴에 보이지 않던 그늘이 내려앉는다.

"왜 없겠어요... 586명 생산자 중 딱 한 사람이지만 룸리 여성이 있어요.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 산사태로 무릎 아래를 못 쓸 만큼 크게 다쳐 지금 병원에 있어요. 이사 중이라 곁에 있지 못해 약을 보내고 병원비를 지원하며 함께 보살피고 있어요. 얼른 이사 마치고 곁에 있어 주어야죠."

아프고 약한 이를 향해 흐르는 마음이 이 마당에 깃들었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40년간 어떻게 스며들었을지 가만가만 헤아려 본다. 짜이를 비우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순간, 한국의 그루에서 구매량을 계속 늘려주어 너무 감사하다고. 한국과 맺은 인연이 너무 소중하다고 이사 중인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사진을 찍자 하신다. 이사 중에 찾아 뵌 것도 송구하건만 사람을 모아 사진을 찍자 하시니 너무 죄송해 걸음을 재촉하니 가만히 손을 잡으며 말씀하신다.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요. 이 공간을, 이 마지막 순간을... 40년을 이곳에서 공정무역이라는 단어도 모른 채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져버렸네요.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여성들, 장애가 있고 눈이 먼 생산자들까지 먼 길 함께 해 왔어요. 마지막 순간을 기념하고 기억하고 싶어요. 함께 해 주세요."

한 장의 사진을 나눈다는 일은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던가. 그러나 때로 생의 한 순간을 나누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마당에서 마음에 담는다. 룸리의 아픔을 긴 시간 함께 나누어 갈 것은 멀리서 온 우리가 아니라, 여기 이곳에서 수십 년 동안 희망을 나누어 가는 네팔 사람들임을 기억하며 그저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작은 마음을 더하고 포카라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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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이라는 단어도 모른 채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져버렸네요. 지난 40년간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여성들, 장애가 있고 눈이 먼 생산자들까지 이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왔어요." ⓒ 신주희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페와 호수 한켠, 새로 생긴 WSDO 매장은 환하게 맑은 빛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지진은 지나갔으나 여전히 무너진 집과 가족을 잃은 마음의 통증으로 가파른 아픔의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네팔의 사람들. 그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다친 이웃을 돌보는 마음의 온기가 깃든 아름다운 수공예품들이 선반 가득 소중히 놓여있다. 희망이 절망을 어떻게 이겨 가는지 배워가는 네팔의 소중한 여정들이 40년의 시간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 스민다.

* 이매진피스 네팔 희망기금 중 100만 원이 WSDO와 쓰리시스터즈를 통해 룸리에 전해졌습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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