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은 있고, 민주화는 없었다

[해설] 7·4 공동선언만 부각하고, 남북관계 타개 위한 담대한 제안 없어

등록 2015.08.15 15:30수정 2015.08.15 15:30
8
원고료로 응원
a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서 광복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 70주년 경축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경축사의 앞부분에는 부친이 일구어낸 '한강의 기적'과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으로 제시되어온 '창조경제'를 주요하게 배치했고, 그 뒤로 남북관계와 한일관계를 차례로 언급했다. 이를 통해 집권 후반기에도 '경제살리기'를 국정운영의 중심축으로 삼을 것임을 예고했다.

특히 경축사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 남북관계와 관련해 남북간 보건의료와 안전협력체제 구축, 남북한 이산가족명단 연내 교환 등 이전보다 좀 더 구체화된 제안을 내놓았지만, 지금의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담대한 제안'은 없었다. 야당에서 "통상 수준의 경축사"(새정치민주연합), "평가하기에도 민망하다"(정의당) 등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광복 70주년'에 걸맞은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들이다.

'한강의 기적' 부각하는 것으로 광복 70주년 경축사 시작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한다'던 박 대통령에게 '경제발전'은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역사였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을 염두에 둔 듯 "위대한 대한민국"을 부각하는 것으로 광복 70주년 경축사 연설을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지만, 황량한 모래벌판에 제철소와 조선소를 세웠고, 모진 난관을 뚫고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라며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제품과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고, 수출규모 세계 6위의 경제강국으로 우뚝 섰다"라고 평가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인구 5천만 이상 되는 국가 중에 국민소득이 3만불을 넘는 소위 '5030클럽' 국가는 지구상에 여섯 나라뿐이다"라며 "저는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일곱 번째 '5030클럽' 국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과 공유하면서, 번영을 이루려는 많은 나라들의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라며 "세계가 한강의 기적으로 부르는 대한민국 성취의 역사는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 불굴의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경축사에서는 광복 70주년의 중요한 축인 '민주화'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경제강국", "경제력", "발전경험", "한강의 기적" 등의 성장주의 단어만 나열했다. '박정희 시대'만 부각시킨 결과다. 보수진영에서 한국 현대사의 두 축을 '경제성장'과 '민주화'로 평가해왔다는 점에 비추어봐도 지나치게 인색하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국민소득 3만달러' 등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한 대안으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제시한 뒤 공공개혁과 노동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 등 4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경제의 도약을 이끌 성장엔진이라면, 공공개혁과 노동개혁, 금융개혁과 교육개혁 등의 4대 개혁은 그 성장엔진에 지속적인 동력을 제공하는 혁신의 토대다"라며 "저는 반드시 이 4대 개혁을 완수해서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희망의 대한민국을 물려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제살리기를 위해서 노정-노사 갈등이 예고되는 노동개혁 등 4대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4대 개혁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고통분담'("서로의 짐을 나눠지고")만 강조했다. 

부친의 7.4 공동성명만 강조... 6.15-10.4 공동선언 언급 안해

경축사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 주제는 남북관계였다. 남북관계에서는 전체적으로 전향적인 기조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숙청작업과 사이버 공격, DMZ 지뢰 도발 등은 비판하면서도 보건의료-안전협력체제 구축, 남북한 이산가족 명단 연내 전달,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수시 운영 등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대체로 전향적인 제안들을 내놓아서다.

박 대통령은 "지금 북한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숙청을 강행하고 있고, 북한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라며 "특히 최근에는 DMZ 지뢰 도발로 정전협정과 남북한 불가침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광복 70주년을 기리는 겨레의 염원을 짓밟았다"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다"라며 "북한은 도발과 위협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도발과 위협은 고립과 파멸을 자초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금도 북한에게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라며 DMZ 세계생태공원 조성,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 등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그는 "북한 지도자들도 이산의 한은 풀어주겠다는 전향적인 자세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라며 '남북한 이산가족 명단 연내 교환'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는 6만여 명의 남한 이산가족 명단을 북측에 일괄 전달할 것이고, 북한도 이에 동참해 남북 이산가족 명단 교환을 연내에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나아가 남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면회소를 이용해 수시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북한이 협력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홍수나 가뭄, 전염병 등의 반복되는 문제에 일회적 상황관리로 대응하기보다는 남북간 보건의료와 안전협력체제를 구축해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 나은 길이 될 것이다"라며 "보건, 위생, 수자원, 산림관리를 비롯한 남북 공동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끌어낸 7·4공동성명은 "분단 역사상 최초로 대화를 통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공동성명"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나온 성과물인 6·15와 10·4 공동선언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7·4 공동성명 당시 "남북한 대립과 갈등이 지금보다 훨씬 깊었고, 한반도의 긴장도 매우 높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자는 의지가 있었기에 남북한은 용기를 내어 마주 앉았다"라고 회고하며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거나 "한반도의 기적"을 이루어낼 만한 담대한 제안은 전혀 없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7·4 공동성명 평가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 끌어들인 수사로 보일 뿐이다.

고노담화 등 계승에 주목?... 야당 "일본에 면죄부 우려"

또한 박 대통령은 전날(14일) 발표된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가 '아쉽다'면서도 그동안 일본 정부가 발표해온 고노담화나 무라야마 담화 등을 계승하겠다고 언급한 부분에 주목했다.

박 대통령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일본 내각이 밝혀온 역사인식은 한일관계를 지탱해온 근간이었다"라며 "그러한 점에서 어제 있었던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가 일본 정부 역대 담화의 4대 핵심표현인 식민지 지배, 침략, 사죄, 반성은 모두 언급했지만 '과거형 담화'를 통해 직접 사죄하지 않고, 역사적 책임을 회피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 무라야먀 담화 등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힌 대목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아베 총리의 담화에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라고, 신중하면서도 꽤 순화된 표현을 쓴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 야당은 비판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혹여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라고 비판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도 "역사왜곡과 친일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 일본에 면죄부만 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광복 70주년 #7.4 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김건희·윤석열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 스님들의 경고
  3. 3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된 한국... 성명서가 부끄럽다
  4. 4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5. 5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