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만난 낙타, 구슬프게 우는 이유는

[몽골기행 5] 엘승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 사막

등록 2015.08.18 15:21수정 2015.08.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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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몽골의 중서부 초원지대에서 엘승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의 사막을 찾아가고 있었다. 몽골에서 엘승타사르하이를 찾는 이유는 이곳에 길게 띠처럼 이어진 사막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몽골 남부의 고비(Gobi) 사막까지 사막 여행을 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작은 사막지대를 경험할 수 있는 엘승타사르하이 사막은 여행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외국여행을 다니면서 실제로 사막을 보았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 홀로 여행을 다녔으면 외국의 여러 사막지대를 경험해 보았을 것 같은데 항상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다보니 여행하기에 열악한 사막을 여행한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영상으로 수없이 보아온 사막이지만 엘승타사르하이에서 사막지형을 보자 주변 경관의 모든 게 신비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 사막여행에서 낙타를 타고 이동을 해 보기로 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서 메르스의 여파가 끝나지 않을 때였고 주변에서는 몽골에 가서 메르스 바이러스를 옮기는 낙타를 타도 괜찮은지 궁긍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탈 낙타는 메르스 바이러스를 옮겼던 중동의 낙타가 아니라 몽골의 낙타라서 조금만 과학적으로 판단해도 문제 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연약하기 때문인지 심정적으로 불안했고 어디선가 괜찮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기로 결심하다

그래서 몽골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았다.

"요새 낙타가 메르스를 옮긴다고 해서 불안한데 몽골 여행 가서 낙타를 타도 되나요?"

목소리에서 몽골 전문가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직원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중동의 낙타는 단봉낙타지만 몽골의 낙타는 쌍봉낙타라서 다른 낙타예요. 원하시면 낙타 타기 말고 말 타기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요새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도 몽골에서 다 낙타를 타고 있어요."

나는 바양고비(Bayan Gobi) 캠프에서 차를 타고 낙타를 탈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낙타를 기르는 유목민의 게르는 바양고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역시 낙타들은 엘승타사르하이에서도 초원 지대가 아닌 사막 지대 앞에 모여 있었다. 이 낙타들은 사막 앞에서 기막힌 사진 배경이 되고 있었다. 낙타는 사막에 사는 동물이어서인지 사막 앞에 앉아있는 낙타가 사막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몽골 유목민들이 기르는 5종류의 가축인 5축(畜) 말, 소, 염소, 양, 낙타 중 낙타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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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낙타 몽골의 엘승타사르하이 사막에서는 낙타타기를 즐길 수 있다. ⓒ 노시경


낙타를 기르는 유목민 가족의 게르 앞에는 낙타 10여 마리가 땅에 배를 깔고 쉬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 낙타들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한가하게 쉬고 있었다. 낙타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낙타들에게 나와 아내는 불청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운 날씨에 쉬고 싶은데 일을 시키는 손님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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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타기 준비. 낙타 주인이 낙타의 무릎을 꿇린 후 낙타 등에 탈 수 있도록 도와준다. ⓒ 노시경


하지만 낙타들의 바람과는 달리 낙타 주인은 그 중 낙타 두 마리를 툭툭 친 후 고삐를 잡아끌며 일으켜 세운다. 주인의 명령에 마지못해 꾸역꾸역 일어나는 낙타의 표정이 너무나도 사람의 표정을 닮아 있다. 사람 표정만큼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이 낙타 얼굴에 그려져서 크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낙타가 사람을 태우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도 낙타의 키는 높다. 나는 낙타의 왼쪽으로 돌아간 후 오른발을 먼저 들어서 낙타에 올라탔다. 무릎을 꿇고 있던 낙타가 무릎을 펴고 일어서면 갑자기 시야가 높아지는데 이 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낙타 등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일단 낙타의 등 위에 올라타면 낙타 쌍봉의 앞 봉을 손으로 잡고 편안히 앉아서 이동할 수 있었다. 쌍봉낙타는 사람들이 타고 이동하기에 아주 적당한 낙타였다. 게다가 낙타의 봉은 말랑말랑해서 마치 쿠션처럼 부드러우니 잡고 이동하기에 부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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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타기 사막으로 나갈 때는 낙타 주인이 낙타 고삐 줄을 잡고 이끌어준다. ⓒ 노시경


낙타 주인도 앞에서 낙타를 타고 우리가 탄 낙타 2마리의 고삐를 함께 끈다. 드디어 나와 아내는 낙타들이 향하는 사막으로 출발했다. 낙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타기가 편했다. 성격이 여유로운 낙타는 달리지 않고 사막 위를 터벅터벅 걷기 때문이다. 낙타 등위에서 낙타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다른 어느 동물보다도 품위 있게 걷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탄 낙타는 무언가 사람을 친구같이 보는 듯한 편한 행동을 한다. 낙타를 처음 타보는 나를 시험해보려는 행동도 하지 않고 듬직하게 사막 위를 걷는다. 낙타는 개같이 사람을 너무 올려다보지도 않고 고양이같이 사람 머리 위에서 놀지도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낙타는 왠지 모르게 정이 가고 사람과 마음이 통하는 것만 같다. 사람들의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에서 지치지 않고 묵묵히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낙타는 과거부터 보배 같은 동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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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먹기. 낙타들은 힘든 여정 중에 나뭇잎을 만나 간식을 먹는 휴식시간을 즐긴다. ⓒ 노시경


지친 낙타에게 짧은 자유시간을 주다

듬성듬성 자란 나무를 보자 내가 탄 낙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낙타는 잎 푸른 나무 앞으로 다가서더니 시원스럽게 나뭇잎을 뜯어먹는다. 나무들의 높이가  낙타 키 정도 돼서 낙타는 어렵지 않게 풀을 뜯어먹는다. 워낙 열심히 풀을 먹어서 풀 뜯어먹는 소리가 주변에도 들릴 정도로 크다.

이 사막의 풀잎은 낙타의 주인이 손님들을 태우고 고생하는 낙타들에게 주는 선물인 것 같다. 낙타들에게도 달콤한 보상을 쥐어 줘야 인간을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싱싱한 나뭇잎 먹기 코스는 낙타들에게 주어지는 짧은 자유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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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피. 낙타 몸 여기저기에 사막의 모기에 물린 작은 핏자국이 있다. ⓒ 노시경


다시 낙타를 타고 사막을 주유하는데 낙타의 머리를 보니 머리 뒤쪽에 마치 빨간 압정 같은 점이 여러 개 박혀 있다. 무언지 유심히 보았지만 도통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낙타 주인에게 이 새빨간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낙타 주인이 대뜸 이 빨간 점을 낙타 몸에 문지른다. 이 빨간 점의 붉은색은 낙타 몸에 퍼지듯이 길게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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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뒹굴기. 낙타 한 마리가 모기를 떼어내기 위해 사막 위에서 뒹굴고 있다. ⓒ 노시경


그것은 바로 낙타 몸에서 나온 피였던 것이다. 사막의 수많은 모기들이 사막에 나온 낙타를 발견하고 낙타의 싱싱한 피를 빨기 위해 덤벼든 것이다. 이 모기들은 처음에는 파리인 줄 알았을 정도로 몸통도 징그럽게 크다. 짖궂은 낙타 주인이 낙타 몸에 붙어 있던 모기 한 마리를 잡아 모기의 배를 터뜨려 보여준다.

모기 배에 가득한 낙타의 피가 줄줄 흐르는데 이걸 보던 아내가 기겁을 한다. 우리가 잠시 낙타 등에서 몸을 내리자 낙타들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몸을 사막의 모래 위에 누이고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한다. 손이 없는 낙타들이 몸에 붙은 모기들을 쫓아내기 위해 사막 위에 뒹구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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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취하는 낙타. 여유가 느껴지는 낙타는 참 정감 가는 동물이다. ⓒ 노시경


나와 아내는 지친 낙타들을 잠시 사막에 쉬게 하고 사막의 입자 고운 모래들을 느껴보기로 했다. 사막에 발을 딛고 둘러보니, 초원지대의 한 중간에 어떻게 이렇게 잘게 부수어진 모래성이 만들어졌는지 신비하기만 하다. 신비로운 모래사막 위에는 몽골 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강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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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승타사르하이 사막. 낙타에서 내려 아내와 함께 사막의 고운 모래를 느껴보았다. ⓒ 노시경


나는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 위에 서서 강렬한 태양을 몸으로 느꼈다. 토시를 낀 팔뚝 안으로 태양의 열기가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작열하는 해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조금 있으면 게르로 돌아가게 해 줄 차가 사막 외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됐다. 만약 내가 깊고 깊은 사막의 한 가운데에 갇혀 있다면 그 공포가 얼마나 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다시 낙타 주인의 게르로 돌아가는 귀로에 올랐다. 사막으로 처음 나서는 길에서는 낙타 주인이 내가 탄 낙타의 고삐에 연결된 줄을 잡아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낙타 타기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낙타 주인이 낙타의 고삐 줄을 우리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순간, 편안히 낙타를 타면서 사막을 유람하던 우리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직접 낙타 한 마리를 통제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나의 낙타는 내가 고삐를 움직이는 방향으로 얌전히 움직였다. 아마도 낙타 주인이 앞장서서 낙타를 타고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낙타는 안심하고 낙타 주인의 뒤를 따라 걸었을 것이다. 앞장선 낙타 주인의 낙타가 속도를 내서 뛰어가면 내가 탄 낙타도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 갔다. 내가 탄 낙타는 나이가 제일 많아서인지 계속 '헉헉' 하는 소리를 내며 뛰어갔다. 순하디 순한 나의 낙타를 뒤에서 보면서 괜히 측은한 생각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게르에 거의 도착할 즈음, 나의 오른쪽 다리에 무언가 묵직한 촉감이 와서 붙은 후에 나의 다리를 계속 문지르기 시작했다.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던 아내가 탄 낙타가 머리에 달라붙은 모기들을 털어내기 위해 자기 얼굴을 내 오른쪽 다리에 비벼댄 것이다. 낙타가 내 몸에 얼굴을 비비는 느낌은 처음 느껴보는 징그러움이다. 그러면서도 동물과 교감을 느끼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낙타가 나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몸을 통해 느껴졌다. 나는 착한 낙타가 모기에게 물리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라는 뜻에서 나의 오른쪽 다리를 낙타에게 맡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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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시는 낙타들. 낙타 주인은 한여름 더위 속에서 낙타들에게 시원한 물을 공급해 준다. ⓒ 노시경


낙타 주인의 게르로 돌아온 후 낙타들은 우물가에서 차분하게 목을 축였다. 그런데 우물가의 낙타 한 마리가 물도 마시지 않고 슬프게 울고 있었다. 직접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슴을 울리는 슬픈 울음이다. 낙타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 낙타는 어제 새끼 한 마리를 잃어버린 어미 낙타라고 한다. 어미낙타가 낙타 주인에게 새끼를 찾아달라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어미 낙타의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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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낙타. 집으로 돌아온 새끼 낙타가 어미 옆에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 노시경


우리가 게르에서 쉬는 동안 낙타 주인의 큰 아들이 들어와서 기쁜 소식을 전한다. 다행히 집 나갔던 낙타 새끼를 찾았다고 했다. 나는 게르 밖으로 나가서 새끼 낙타를 둘러보았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어미 옆에 붙어서 떠날 줄을 모른다. 새끼를 찾던 어미낙타는 울부짖음을 그치고 새끼를 바라보고 있었고 새끼 낙타는 어미 낙타의 품에 편안하게 안겨 있었다.

어미 낙타의 울음은 그쳤지만 폐부를 찌르는 슬픈 울음소리는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 울음은 새끼를 잃은 어미의 슬픔이 담긴 울음이었다. 나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슬프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직접 접해본 낙타는 신비롭고 정감 어린 동물이었다. 나에게 몽골의 초원과 사막은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는 새로운 세계였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몽골 #사막 #낙타 #엘승타사르하이 #몽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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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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