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500명 이상이 적당하다, 왜냐면..."

[서평] 민주주의에서 정당이란 <정당의 발견>

등록 2015.08.28 10:27수정 2015.08.2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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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치인'이란 단어는 그리 유쾌한 어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정치혐오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국회의원의 세비를 삭감하더라도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게 옳은 걸까. '정치혐오'를 기반으로 '혐오의 대상'인 국회의원을 줄이거나 의원 정수를 고정하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얼핏 긍정적 상관관계에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실상은 정반대다. 오히려 국회의원을 늘려야 한다. 수십 명 정도가 아니라 아예 500명 정도로 대폭 늘리는 게 적당하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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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민주주의에서 정당이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정당의 발견> ⓒ 후마니타스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책이 나왔다. 평소 정당주의자를 자처하는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정당의 발견>이다. 그가 정치발전소에서 했던 '민주주의 정당론' 강의를 다듬어 엮었다. 한국적 맥락에서 바라본 '정당론' 대중 교과서 정도라 평할 수 있다.

책은 이론적 배경과 함께 한국 정치를 짚는다.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두 가지다. 바로 '국회의원을 늘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과 '현 야당에 대한 건설적 비판'을 가하는 부분이다. 확고한 정당주의로 무장한 그의 논리적인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국회의원을 늘려야 하는 이유

현대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초기 단계에서 의원 1명이 10만 명 이상을 대표하면 유사성과 근접성의 원리가 떨어진다고 평가됐다. 이 수치를 지금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500명 이상이어야 한다. 실제 OECD 평균도 인구 9만7000명 당 1명 수준이다.


정치를 '민주주의를 위해 한 사회가 감수해야 할 당연한 비용'으로 여긴다면, 국회의원을 늘림으로써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도모하는 게 나쁠 것 없다. 물론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특혜는 다른 맥락이다.

앞서 기술했지만, 책은 정당주의를 해법으로 내놓는다. 국회의원을 늘려 정당의 기능을 복원할 수 있다. 정당의 가장 큰 역할은 '선택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즉 '대안을 정의해 주는 것'에 있다. 수많은 공공정책을 시민 개개인이 분석하고 평가할 수는 없다. 누군가 대신해줘야 하는 데, 바로 그 역할을 '정당'이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정당이 정치의 주체가 되기보단, 의원 개개인들이 언론 앞에서 경쟁적으로 보도 자료를 쏟아 내는 일이 정치의 일상이 됐다. 시민 계층과 집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개인의 '스타성'만 부각된다.

"외모든 경력이든 언론이 좋아할 자원을 가진 사람이 우대받게 되었고, 급기야는 정치 경험이 없는 것을 후보의 좋은 자질로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게 뭔가." - <정당의 발견>에서

책은 불평등이 심화된 이유가 "복지와 경제 민주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덜 외쳐서가 아니"라 "가난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일에 헌신하는 정치 세력이 약해졌기 때문"이 라는 설명이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여당, 제1야당을 넘어 다양한 이념을 가진 정당들이 넘쳐나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화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같은 맥락이다. '복지, 경제 민주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기치로 한 정당이 힘을 얻어야 한다. 이들이 국회의원을 배출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들도 '당원 50만 명' 시대를 연다면 금상첨화다.

"집단적 차이와 열정, 그리고 그것에 기반을 둔 파당적 경쟁이 정치의 과정을 활력 있게 만들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그 가치에 맞게 기능하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일수록 갈등적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 <정당의 발견>에서

또한 국회의원이 갖는 특권과 기득권도 정수 확대를 통해 풀 수 있다. 의원 숫자가 줄어들수록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다. 현재 국회의원의 특권을 분산시키고 견제할 수 있도록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 타당하지 않은가.

'물갈이'만 외쳐대는 야당, 당 체질만 악화

잠시 일본을 보자. 아베의 '삽질'에도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지지율은 꼿꼿하다. 집단자위권을 가능하게 하는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성명이 쏟아지지만 아베 정권은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이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 지지율은 32%를 기록했다. 두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한 이후 최저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율은 28%를 기록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9%에 그쳤다. 집권 정부가 아무리 '삽질'을 해도 대안 세력이 없으니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다시 상기시키지만 착각마시라. 한국이 아닌 일본 얘기다.

야당은 '반대당의 역할'과 '향후 집권당이 될 대안 정부'로 기능해야 한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따끔한 비판을 날린다.

"이러다가 야당은 정치 엘리트들이 활용하다 버리는 선거용 정당으로만 남을 뿐, 하나로 통합된 조직이자 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 - <정당의 발견>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기간을 거치면서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 때나 느꼈던 일종의 무기력을 경험했다. 야당의 무능함 때문이다. 집권 여당이 아무리 실정을 거듭해도, 야당에 실망해 정치로부터 이탈하거나 "야당이나 잘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엄청난 희생을 통해 민주화를 이뤘지만 결국 '민주주의의 형식' 안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내용'이 반복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야당의 '대안성' 회복이 시급하다.

저자는 야당의 위기마다 터지는 "물갈이 주장"이 냉정하게 평가할 때, 당 밖 엘리트들의 정치 진입 욕구를 정당화해주는 일종의 '엘리트 순환론' 이상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공천 심사 위원들도 거의 대부분 당원이 아니었다. 거의 매년 '혁신'을 단행했지만 당 체질은 계속 악화됐다.

책은 야당 정치를 이렇게 요약했다.

"시끄럽고 격렬한 다툼은 계속되고 외양의 변화는 잦다. 그런데 그런 소란이 지나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낡은 구조가 건재함을 과시한다. 그 사이사이에 비극적으로 퇴장한 정치인들의 목록만 즐비하다. (...) 당내 구성원들 사이에 협력의 기반도 약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연결되어 있는 추종자들의 반응을 관리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정치가는 많다. 개인 소통은 좋아졌는지 몰라도 조직으로서 정당은 공허해지고 있다." - <정당의 발견>에서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강한 정당일까? 저자는 "새누리당은 청와대에 종속적인 위성정당"이라 답하며, 새누리당이 강해보이는 이유는 "국가가 가진 권력 자원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특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한국에서 강한 정당은 찾을 수 없단 얘기다.

책에 따르면, 제대로 된 야당이 없으면 시민 주권은 공허해진다. 저자는 뒤이어 "사람들이 민주당의 미래, 진보 정당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면서도 관심을 끊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제대로 된 '대안 정부'가 출현해야 한국 민주주의는 멈췄던 걸음을 이어 갈 수 있다. 저자가 야당에 대해 강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단락의 마지막에 "민주당 파이팅!"이라고 응원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게다.

"정당이 있고 없고는 그저 있을 것이 하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시민의 이익과 열정을 제대로 조직하고 표출하고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그 자체는 사회경제적 강자 집단을 견제하기는커녕 불평등과 불균형을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정당은 시민을 더 단단하게 조직해 주어야 하고, 더 실체적으로 대표해 주어야 하며, 이들의 이익과 열정을 공공 정책의 형태로 더 확고하게 제도화해 주어야 한다. 정당이 약하면 민주정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부속물이자, 사회 강자 집단들에 의해 조롱받는 모조품, 나아가서는 많이 배운 중산층 전문가 집단의 허영심을 채워 줄 놀이터에 불과할 수 있다." - <정당의 발견>에서
덧붙이는 글 <정당의 발견> (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 2015.08 / 1만7000원)

정당의 발견 - 민주주의에서 정당이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2015


#후마니타스 #정당의 발견 #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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