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6시간 근무... 용역업체 파견직의 비애

[나는 고졸사원이다 ⑭] 딜레마

등록 2015.09.22 14:03수정 2016.05.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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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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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T PCB 표면에 칩(Chip) 부품을 실장 하는 기술이다. ⓒ pixabay


용역회사를 통해 취직한 회사는 SMT(Surface Mounter Technology)장비를 이용해 핸드폰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SMT는 열아홉, 고등학교 실습생으로 처음 취업했던 회사에서 하던 '자삽'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다른 점은 자삽은 일반 전자부품들을 다루는 기술인 반면 SMT는 아주 작은 '칩(Chip)' 부품을 PCB(Printed Circuit Board) 표면에 실장하는 기술이다.

당시 우리 회사는 구미시 공단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기숙사는 구미시가 아닌 '칠곡군 석적면' 소재의 한 아파트였는데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끔 택시를 이용하게 되면 '시외요금'을 적용받는 곳이라 교통이 불편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통근버스를 이용해야 돈을 아낄수 있었다.

SMT 장비를 운용해서 수입을 올리는 회사는 장비의 '유휴'시간 없이 풀 가동이 될수록 수익이 많이 난다. 그래서 생산직 사원들은 교대근무를 해서 장비를 24시간 쉴새 없이 운용한다. 중소기업중에 SMT 장비를 운용하는 회사는 대부분 12시간 2교대 근무를 한다. 예전에 내가 실습사원으로 일했던 자삽회사와 똑같다. 하지만 이 회사는 중소기업인데도 더 많은 인원을 뽑아 3교대 근무를 실시하고 있었다.

3교대 근무는 하루 24시간을 3개 조가 8시간씩 나누어 근무하는 것이다. 교대근무의 방식은 회사마다 차이가 있으나 내가 일했던 회사는 야간 근무 1주일, 오후 근무 1주일, 오전 근무를 1주일씩 번갈아 가면서 근무를 하는 형태였다. 이렇게 교대근무를 하다 보면 주말에 근무 교대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주말에도 장비를 쉬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리한 근무를 해야 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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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표 3교대 근무표. 오전근무에서 야간근무로 바뀌는 주의 주말에는 하루에 오전근무와 야간근무 총 2번의 근무를 해야 했다. ⓒ 강상오


야간조 근무를 하는 주가 되면 일요일 밤에 첫 출근을 한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에 일주일 근무를 마친다(당시엔 주6일제가 시행되던 때였다). 하지만 주말 시간도 장비를 쉬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토요일 밤에 '특근'을 하게 된다.

그래도 일요일 아침에 퇴근을 하면, 다음 주가 오후 근무라 푹 쉬고 월요일 오후 3시에 출근을 하기 때문에 별로 부담은 없었다. 반면 오전 근무에서 야간 근무로 바뀌는 주에 일이 바빠 주말에 '특근'을 하게 되면 일요일 오전 근무를 하고 오후 3시에 퇴근을 한 뒤. 다음 주 야간 근무 출근을 또 그 날 23시에 해야 하므로 엄청나게 체력 소모가 됐다.

당시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SMT 장비를 운용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도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대기업의 교대근무 시스템은 우리 회사와 조금 달랐다. 바빠서 특근을 하더라도 주말 마지막 야간근무는 장비를 쉬게 했다. 우리 회사처럼 하루에 근무를 2번 들어가게 직원들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숙사 생활이 편칠 않아 자꾸 밖으로 나돌았다

우리 회사는 그 동창이 다니는 대기업의 협력사였다. 그 친구와 나는 같은 회사의 제품을 만드는 똑같은 직무를 맡아서 하면서도 환경이나 급여가 엄청난 차이가 났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휴일을 보장 받으면서도 훨씬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친구가 마냥 부러웠다.

잘나가는 핸드폰 회사에서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양의 제품을 만들려면 쉬지 않고 누군가가 일을 해야 한다. 그게 자사에서든 협력사에서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협력사에서 만들면 훨씬 더 돈이 적게 든다. 그런 논리를 당시엔 알 수 없었다. 그 친구가 더 많이 쉴수록 나는 더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다는 사실을...

2교대 근무보다 하루에 4시간을 더 적게 일하는데도 실습사원으로 12시간씩 2교대 할 때보다 몸이 더 고되게 느껴졌다. 자삽 장비를 운용할 때보다 SMT 장비를 운용하는 게 더 많은 손이 가는 것도 그렇지만 3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생활패턴이 불규칙해서 그런 것 같았다. 특히 교대근무가 바뀌는 주말, 하루에 2번의 근무를 하고 퇴근한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몸은 천근만근인데도 낮이라 그런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기숙사는 방이 3개가 있는 24평형 아파트였다. 여기에 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서로 조가 다른 직원끼리 사는 호실은 누군가 출근하면 누군가가 퇴근을 해서 기숙사로 오기 때문에 방을 넓게 쓸 수 있었다. 그러나 하필 내가 배정받은 호실의 사람들은 조가 다 같았다. 기숙사를 같은 시간대에 함께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더 비좁게 느껴졌다.

나는 우리 호실에서도 큰 방에 배정을 받았다. 이 방에서는 총 4명이 함께 잠을 자야 했다. 아늑한 구석 자리였으면 좋겠는데 말단 신입에게 그런 자리를 내줄리는 없었다. 정 가운데에서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새우잠을 청하곤 했다.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에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다들 친한 데다 내 집처럼 편안하게 있기도 하는데, 당시 숫기 없는 나에겐 그들과 가까워지는게 너무 힘들었다. 특히 세탁기도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이용하곤 했는데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아서 양말과 수건 등 최소한의 것들만, 씻을 때 화장실에서 손빨래를 했다.

출근 시간 1시간 10분 전에 아파트 앞으로 통근 버스가 지나간다. 기숙사에 사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함께 타고 출근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함께 가자고 말한 형이 갑자기 자리가 없다며 얼른 뛰어 내려가서 통근 버스를 타라고 하는 바람에 헐레벌떡 뛰어가 겨우 떠나는 버스를 잡아타고 출근한 적도 있다.

퇴근하고 나면 피곤한 상태인데도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편칠 않아 자꾸 밖으로 나돌았다. 퇴근할 때 통근버스를 타면 마지막 코스가 우리 기숙사 아파트 앞이었는데, 통근 버스 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모두 데려다주고 자신의 집 근처에 차를 세우러 가는 곳이 있었다. 그곳이 내 친구가 근무하는 회사가 있는 동네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기숙사에 내리지 않고 그 동네까지 자주 통근 버스를 타고 가서 친구를 만나곤 했다.

하루는 기숙사에서 선배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우리 호실에는 회사 관리자급 노총각 사원이 한 명 있었는데 그분이 내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대기업도 아니고 이런 중소기업에... 정규직도 아니고 용역업체 파견으로 취직해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6개월 뒤에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여기서 너는 병역 특례 받지도 못할 텐데..."

그분 말이 맞았다. 당장 돈이 떨어지고 오갈때가 없어져서 앞뒤 재보지 않고 무작정 취직한 회사가 바로 여기다. 이렇게 살아서는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한 채 군대를 가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수중엔 돈이 없었고 머물 곳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거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타지에 혼자 나가 있는 아들이 걱정되어 자꾸 전화하시는 어머니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라는 말씀 밖에는 드릴 수가 없었다.
#3교대 #교대근무 #SMT #SMD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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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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