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와 비구니의 애틋한 사랑

목교 '천사의 다리'로 연결된 신안 안좌도와 박지도, 반월도

등록 2015.09.23 21:27수정 2015.09.2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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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와 반월도를 이어주는 나무다리. 길이가 915m에 이른다. 자동차는 다닐 수 없다. 끄트머리에 아스라히 보이는 목교가 두리마을-박지도를 잇는 다리다. ⓒ 이돈삼


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들판의 곡식과 과실이 토실토실 여물고 있다. 나들이하기에 맞춤인 가을이다. 모처럼 섬으로 간다. '1004의 섬'으로 알려진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에 딸린 박지도와 반월도다.

박지도와 반월도는 섬 속의 섬이다. 두 개의 섬이 나무다리로 연결돼 있다. 안좌도 본섬에서 박지도로, 박지도에서 반월도를 이어준다. 한 번의 여행으로 세 개의 섬을 돌아볼 수 있는 여정이다. 지난 8월 30일이었다.


박지도와 반월도는 미지의 섬이었다. 지난해 전남도가 '가고 싶은 섬' 가꾸기 대상지로 선정하면서 베일을 벗었다. 박지도는 마을이 박(바가지)의 형국이고, 반월도는 섬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이름 붙었다. 썰물 때면 갯벌로 둘러싸인다. 모래 해변은 없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신안 안좌도 두리마을과 박지도를 이어주는 다리. 길이 547m에 이른다. 양쪽으로 갯벌이 드넓다. ⓒ 이돈삼


박지도와 반월도를 이어주는 915m의 다리다. 섬과 섬을 이어준다. 섬 속의 섬 여행을 이끄는 다리다. ⓒ 이돈삼


안좌도의 관문인 읍동 선착장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20여 분 가니 두리마을이다. 박지도로 건너가는 다리가 놓여있다. 길이 547m에 이른다. 박지도에서 반월도를 이어주는 915m의 다리도 보인다. 증도의 짱뚱어다리와 흡사하다. 자동차는 다닐 수 없다. 사람과 자전거, 오토바이만 오갈 수 있다. 2008년 완공됐다.

이름이 '천사의 다리'다. 높은 데서 봤을 때 두 개의 다리가 브이(V)자를 하고 있다. 벽화마을에서 흔히 만나는 천사의 날개 모양이다.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군을 상징하는 목교다. 천사처럼 예쁜 마음가짐으로 건너야 한다.

천사의 다리 양 쪽으로는 드넓은 갯벌이다. 낙지, 게 등 갯벌생물이 뛰놀고 있다. 겨울엔 감태(가시파래)가 푸른 융단처럼 펼쳐진다. 바닷물의 나고 듦을 보면서 인생의 비움과 채움을 생각해본다.

박지도의 산책로 시작 지점. 해변 산책로와 숲길 산책로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 이돈삼


박지선착장에서 박지마을로 가는 숲길. 숲도, 숲길도 고즈넉하다. 예쁘다. ⓒ 이돈삼


두리마을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박지도는 해변과 숲길 산책로로 연결된다. 섬의 해변을 따라 가는 산책로가 있다. 2㎞가량 된다. 옛날 암자 터와 우실샘, 당숲을 돌아보는 숲길도 있다.


이 가운데 숲길을 따라 간다. 박지선창에서 마을까지 2㎞ 남짓 된다. 소나무와 후박나무, 식나무, 서어나무, 팽나무가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숲길도 겸손하다. 태고의 숲이고 숲길이다. 숲속 암자에 살았던 스님에 얽힌 이야기도 애틋하다.

옛날 이 암자에 젊은 비구가 살았다. 건너편 반월도에는 비구니가 살았다. 두 스님은 얼굴을 본 적 없었지만, 멀리서 아른거리는 자태만으로도 사모하게 됐다. 연정으로 가득 찬 비구는 망태에 돌을 담아서 반월도 갯벌에 붓기 시작했다. 반월도의 비구니는 광주리에 돌을 담아서 박지도 쪽으로 쏟아 부었다. 세월이 흘러 쏟아 부은 돌이 쌓여 노두가 만들어졌다. 그 사이 스님들은 중년이 됐다.

서로 사모하던 두 스님은 이 노두를 따라가서 처음 만났다.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손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바닷물이 밀려드는 줄도 몰랐다. 두 스님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밀물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미완의 러브스토리다. 이 노두를 스님이 쌓았다고 '중노두'라 불린다.

박지도의 비구와 반월도의 비구니가 쌓았다는 노두.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 박지도와 반월도를 이어준다. ⓒ 이돈삼


박지마을 풍경. 마을주민 정순심 씨가 집을 나서 마을 경로당으로 향하고 있다. ⓒ 이돈삼


중노두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박지마을에서 박지선창으로 가는 길의 왼편 바닷가에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중노두를 통해 두 섬을 오갈 수 있다는 게 박지마을 정순심(82) 어르신의 얘기다.

전남도와 신안군은 두 스님의 사랑 이야기를 토대로 박지도와 반월도를 '사랑의 섬'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안전대책을 마련한 뒤에 관광객들이 중노두를 직접 걸어보게 한다는 것이다. 박지도 스님이 살았던 암자 터에서 가까운 데에 있는 우실샘은 복원해 사랑샘으로 만들 방침이다. 연인들의 사랑 언약 장소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원안의 논'도 독특하다. 바닷물을 막는 제방과 논둑 사이에 고랑을 파서 물을 채웠다. 논에 바닷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원안을 완충지대 삼아 섬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다. 20여 년 전에 둑이 무너져 지금은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하지만 구들장논이나 다랑이논처럼 우리의 농업유산으로 가치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박지도의 숲길에서 만난 박지제당의 터. 큰 나무 아래에 돌이 그대로 쌓여 있다. ⓒ 이돈삼


반월마을 당숲. 400년 넘은 팽나무와 느릅나무, 후박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은 숲이다. ⓒ 이돈삼


박지도에서 또 다른 나무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반월도도 전형적인 섬이다. 바닷물이 빠져 드러난 갯벌이 섬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에 당숲이 잘 보존돼 있다. 옛날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당제를 지냈던 곳이다.

400년 넘은 팽나무와 느릅나무, 후박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는 숲이다. 2013년 생명의숲과 산림청, 유한킴벌리에서 주는 제14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았다.

박지도와 반월도의 흠이라면 아직 편의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지도는 21가구, 반월도는 57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이름 난 관광지도 아니었다. 편의시설이 갖춰질 여건이 되지 않았다.

박지마을 풍경. 오래된 집 마당에 빨간 고추가 가을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다. ⓒ 이돈삼


폐교된 반월분교. 앞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숙박공간과 음식점으로 활용될 곳이다. ⓒ 이돈삼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이 본격화되면 편의시설이 먼저 갖춰질 것이다. 폐교된 옛 반월분교를 리모델링해 숙박공간과 음식점으로 활용한다. 박지도의 빈집을 고쳐서 게스트하우스로 쓸 예정이다.

박지도와 반월도는 하루 일정으로 돌아보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안좌도 본섬의 편의시설을 이용하면 이틀 코스로 돌아봐도 좋다. 인공의 때가 타지 않은 호젓한 섬을 그리는 여행객들이 한눈에 반할만한 곳이다.

안좌도에 수화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생가도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제251호)다. 그가 태어나고 청년기에 작품활동을 했던 곳이다. 김환기는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 실현했다. 새와 달, 항아리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70년에 그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가 대표작이다.

옛 돌담길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방월리도 멋스럽다. 안좌도에서 신안1교와 중앙대교를 건너 암태도로 가면 소작쟁의 기념탑이 있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일제강점기 항일 농민운동의 효시가 됐다.

수화 김환기 화백의 생가. 김 화백이 태어나고 청년기에 작품활동을 했던 곳이다.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에 있다. ⓒ 이돈삼


안좌도 읍동선착장 풍경. 수화 김환기 화백의 그림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안좌도 읍동항으로 가는 배가 날마다 6회(06:30, 07:00, 10:10, 13:00, 13:30, 15:00) 운항한다. 목포 북항에선 농협페리호가 2회(10:50, 15:50) 운항한다. 1시간 남짓 걸린다. 읍동항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두리마을로 가면 된다. 택시요금은 1만 원 정도. 자동차를 갖고 들어가려면 압해도 송공항으로 가야 한다. 암태도나 팔금도에서 내려 안좌도로 건너가면 된다. 송공항에서는 05:50부터 배가 20회 운항한다.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사의다리 #박지도 #반월도 #반월당숲 #중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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