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식당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남다른 손맛

한 결혼이주여성 가족의 열정적인 삶... 공존과 희망을 보다

등록 2015.09.26 15:52수정 2015.09.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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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9일) 늦은 저녁, 아내와 나는 영광읍 선술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내가 멍게 한 접시를 시키자, 아내는 "술은 막걸리로 한 병 주세요?"라며 장단을 맞춥니다.


"여보, 다문화가족들 대단하지 않았어요? 난 감동하였는데!"
"관객들 호응이 좋더라고! 그들의 열정과 모국애가 깃든 춤사위는 보는 이의 가슴에 울림을 주고!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당신 보기에도 그랬어요! 모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섞인 잔치였죠! 행사를 주관한 지자체와 영광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실무자들의 수고가 빛났고요."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격려의 박수를 보낸 관객들의 수준도 높았어!"

아내가 막걸리 한 잔을 홀짝 비우고, 한 잔 더 달랍니다. '웬일이야!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 아내는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영광 불갑사 상사화축제기간(9월 18일부터 9월 20일까지)동안 펼쳐진 전국다문화가족 모국춤 페스티벌 장면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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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 모국춤대회에서 이민자여성들의 다양한 표정들 ⓒ 전갑남


아내는 불갑사상사화축제 '전국다문화가족모국춤페스티벌'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행사가 성황리에 끝나고, 참가자와 관객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공연을 펼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내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10여 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전국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의회 회장의 중책을 맡아 이곳 영광까지 찾아왔습니다. 다문화가족과 관련된 일에는 오지랖이 넓습니다. 영광까지는 워낙 먼 길이라 운전기사를 겸해 나도 동행하였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


간밤에 마신 막걸리 탓인가? 여느 때 같으면 진즉 일어날 시간인데, 아내가 늦잠을 잡니다. 아침 먹을 데를 찾으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잠에서 깬 아내가 부스스한 얼굴로 말합니다.

"여보, 아무리 좋은 곳을 구경해도 우리 집이 최고지?"
"그래서 집 떠나면 고생이라 하잖아! 어서 아침 먹고 집에 가자고!"

부랴부랴 숙소를 빠져나온 우리는 법성포로 향합니다. 기왕 영광까지 왔으니 법성포에서 굴비 맛이나 보려고요.

굴비 엮걸리. 영광 법성포에는 굴비가게가 즐비합니다. ⓒ 전갑남


법성포에 들어서자 칠산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비릿한 냄새를 나르는 듯싶습니다. 코끝으로 느끼는 갯냄새가 싫지 않습니다. 굴비의 명소답게 밀집한 가게마다 주렁주렁 굴비가 엮여 있습니다.

어디서 굴비 맛을 볼까? 아침 식사를 하는 곳을 찾는 게 만만찮습니다. 식당 문을 연 곳도 눈에 띄지 않고, 굴비 정식 가격이 아침식사로는 너무 비쌉니다.

답답한 아내가 어느 가게 앞에서 굴비를 엮고 있는 아저씨께 묻습니다.

"실례합니다. 아침 식사 맛있게 하는 집 있을까요? 굴비 맛도 좀 보고요?"
"쩌쪽으로 돌아가면 문 연 곳이 한 곳 있을 텐디! 이름난 집 못지않게 맛있을 텡게 가보쇼."

아저씨는 손짓을 섞어 가며 말씀합니다. 가까운 거리라 금세 찾을 수 있습니다. '토박이식당'이랍니다. 

다문화가족의 친절함과 맛난 음식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습니다. 아내는 한눈에 결혼이주여성임을 알아봅니다. '토박이식당에 웬 결혼이주여성이?'

좀 의아하지만, 아내는 환한 얼굴로 묻습니다.

"굴비 정식과 굴비 백반은 뭔 차이가 있을까요?"
"정식은요 굴비 매운탕 나오고, 백반은요 된장국이 나와요! 정식은 1만2000원인데 백반은 8000원입니다. 아침이니까 백반 드세요! 백반 맛있게 할게요!"
"우린 정식으로 해주세요. 오랜만에 굴비 매운탕 맛보고 싶네요."
"네, 맛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만자 여성의 친정어머니는 가게 일을 돕고, 시어머니는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전갑남


자신감에 찬 이주여성의 대답은 음식 맛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합니다. 친절함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잠깐 후, 외국인 여성과 닮은 나이 드신 분이 음식을 날라 옵니다. 우리는 이주여성의 친정어머니라 생각이 되어 "고맙습니다." 인사를 합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분은 아마 시어머니 같습니다.

아내가 음식상을 차리는 분과 얘기를 합니다.

"따님과 같이 한국에 오셨어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아주머니는 눈웃음만 지으시고 말씀이 없습니다. 한국말이 능숙한 따님과는 아주 판이합니다.

전라도 인심이 듬뿍 실린 음식이 가지가지 나옵니다. 굴비구이에다 고추장 굴비 장아찌가 맛깔스럽습니다. 꽃게 무침도 군침이 돌고, 젓갈도 맛있습니다. 예전 고향에서 먹었던 짭조름한 음식 맛, 그대로입니다.

굴비정식의 상차림.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합니다. ⓒ 전갑남


아내는 비운 음식을 다시 주문합니다. 음식을 가져온 이주여성에게 묻습니다.

"베트남에서 왔어요? 이름이 뭐예요?"
"네. 리엠입니다."
"저분은 친정어머니이신가 봐요?"
"맞아요. 우리 부모님 한국에 오신 지 2년 됐어요, 아직 한국말 잘 못 해요."
"아버님도 오셨군요. 리엠은 몇 년 되었어요?"
"저요? 신랑 따라 한국에 온 지 올해로 5년 되었어요. 손님은 어떻게 베트남 발음이 정확하셔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요. 베트남에 여러 번 다녀온 적도 있고요."
"아! 그러세요. 반가워요!"


당당함이 있는 이민자 여성,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 전갑남


언니 동생 같은 친분이 있는 사람처럼 아내와 리엠씨는 다정하게 보입니다. 낯설고 물선 영광에 시집와 시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배웠답니다. 아이 둘을 낳아 지금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어 무엇보다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또, 친정부모님이 이곳에 오셔서 함께 일하게 된 것도 기쁨이고요. 사돈인 시부모님의 배려에 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답니다. 부모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큰 기반을 닦으실 것 같다고 말할 때는 웃음꽃이 핍니다.

아침 식사를 하러 대가족이 들어옵니다. 리엠씨 가족들입니다.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남편, 아이들 모두가 한 상에 둘러 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아이 녀석이 뛰놀다 이리 오라는 내 손짓에 척 안깁니다. 낯을 가리지 않는 붙임성은 엄마를 많이 닮아 보입니다.

음식이 참 정갈하고 맛이 있습니다. 고향 땅에서 먹는 맛이라 더한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굴비구이 맛이 참 좋습니다. 특히 고추장 굴비가 입에 딱 맞습니다. 예전 고향에서 먹어본 맛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 요리인 굴비매운탕. 고사리를 넣어 담백하면서 구수합니다. ⓒ 전갑남


주요리인 조기매운탕이 나옵니다. 고사리를 넣어 구수한 맛이 더합니다. 매콤한 맛이 식욕을 돋웁니다. 공깃밥을 하나 더 시켜 먹습니다. 아침이 든든합니다.

다문화가족... '공존만이 희망이다'

아내가 일어나자, 리엠씨는 친언니와 헤어지는 것처럼 아쉬움을 표합니다. 아내가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당당하게 정착한 리엠씨는 정말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리엠씨가 명함을 꺼내 아내에게 건네주는 데, 아내 표정이 더 환해집니다.

"여기 사장님이 리엠씨군요. 아니 한국 이름도 있으시네!"
"네, 남편은 굴비가게하고, 전 이곳 식당 사장이에요."
"정말 장하십니다. 아이들도 잘 키웁시다! 엄마처럼 요."
"좋은 말씀 감사해요! 저도 영광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공부했어요."

리엠씨는 아내와 헤어짐을 아쉬워합니다. ⓒ 전갑남


우리는 식당 바로 옆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굴비 두 상자를 샀습니다.

듬직한 남편과 즐겁게 땀 흘리며 일하는 이주여성의 당당함이 맛난 식사 이상의 기쁨으로 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 집 아닌 곳에서 겨우 이틀 밤만 지내고도 '집 떠나면 고생'이라 여깁니다. 이국땅에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이민자 여성들의 낯섦은 오죽하겠습니까?

리엠씨 가족처럼 다문화가족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밝은 미래이기도 할 것입니다.

영광 불갑사에서 펼쳐진 '전국다문화가족모국춤경연대회' 심사평이 다시 떠오릅니다.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전통춤을 알리기 위한 열정은 '공존만이 희망이다!'라는 새로운 가치와 어우름의 시작입니다. 이제 우리 다문화가족들이 한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튼튼한 뿌리를 내리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겠습니다."
#다문화가족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공존과 희망 #영광 법성포 #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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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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