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이 노니는 궁전 안 정원, 조각상의 애틋한 눈빛

[유럽 패키지 여행 ③ 독일, 오스트리아] 16) 쇤브룬 궁전 2

등록 2015.10.15 10:54수정 2015.10.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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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에 의한 헬레나 납치 ⓒ 이상기


쇤브룬 궁전 내부 관람을 마친 우리에게는 45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에 정원을 살펴보아야 한다. 쇤브룬 궁전의 정원은 너무 크고 넓어 자세히 보려면 하루는 걸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궁전 남쪽의 화단 정원(Groβes Parterre), 넵튠 분수(Neptunbrunnen), 쇤브룬 언덕, 글로리에테를 보려고 한다. 이들을 보기 위해서는 궁전 오른쪽에 있는 부속정원(Kammergarten)을 돌아 궁전 남쪽으로 가야 한다.

가는 길에 다섯 개의 대리석 조각상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화단 정원 양쪽으로 세워진 32개 조각상 중 일부였다. 그중 28번째 '파리스에 의한 헬레나 납치'가 가장 인상적이다. 이 납치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헬레나 납치 조각상은 유럽의 박물관과 정원에서 수도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곳의 헬레나는 파리스에 저항하지 않고, 그윽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궁전 남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정원

넵튠 분수와 글로리에테 ⓒ 이상기


이 작품을 보고 우리는 잠시 쇤브룬 궁전의 계단을 통해 테라스로 올라간다. 화단 정원과 넵튠 분수 그리고 글로리에테 언덕을 조망하기 위해서다. 이곳 테라스에서 보니 글로리에테가 멋있어 보인다. 나는 테라스를 내려와 화단 정원으로 들어선다. 화단 정원은 가운데와 양쪽으로 길이 있고, 가운데 동서로 세 개의 길을 내, 모두 8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화단 가장자리에 꽃을 심고, 그 안쪽은 꽃으로 선과 원을 만들었다. 이들 꽃의 색깔이 다양해서 멀리서 보면 마치 수를 놓은 것 같다.

이들 정원의 끝 오른쪽으로 미로 정원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 그곳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미로 정원은 주목을 심은 다음 조경을 통해 길을 낸 정원으로, 사람들이 길 찾기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곳에는 또한 돌과 물 그리고 놀이시설을 만들어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들 중 일부는 1999년 새롭게 도입된 시설인데, 그것은 기의 흐름과 조화를 강조하는 동양 풍수 사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한다. 요즘 서양에서는 동양의 양택 풍수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넵튠 분수 상단의 조각상 ⓒ 이상기


화단 정원의 끝, 쇤브룬 언덕의 발치에 넵튠 분수가 있다. 넵튠은 포세이돈으로 바다의 신이다. 이곳에 바다를 지배하는 신이 있는 것은, 그가 대륙을 지배하는 황제와 비견되기 때문이다. 넵튠 옆에는 풍요의 요정 님프(Nymphe)와 바다의 요정 테티스(Thetis)가 있다. 여기서 테티스는 제 아들 아킬레스가 바다를 무사히 건너 트로이를 정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넵튠에게 청원한다.

분수 위쪽 암석 위에 넵튠과 여인들이 있다면, 암석 주변에는 반인반어(半人半魚)의 트리톤(Triton)이 네 마리 바다 말(海馬)을 끌고 있다. 이들은 넵튠이 타고 있는 조개 마차를 끄는 것이다. 분수 주변에는 물고기, 조개, 고동, 해초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분수가 만들어진 것은 1780년이다. 분수의 건설은 헤첸도르프(Hetzendorf von Hohenberg)가 맡았고, 조각은 바이어(Wilhelm Beyer)가 맡았다.


넵튠 분수에서 바라 본 쇤브룬 궁전 ⓒ 이상기


화단 정원 앞에서 분수를 보고 언덕길을 올라가면 분수 뒤로 가게 된다. 이곳에서는 이들 조각을 받치고 있는 암석 구멍을 통해 쇤브룬 궁전을 바라볼 수 있다. 분수의 수조가 보이고, 그 앞으로 화단 정원이 펼쳐진다. 정원 좌우로는 직각으로 잘라낸 주목이 벽처럼 조경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대리석 조각상이 양쪽으로 16개씩 32개가 배치되어 있다.

정원 너머에는 조금 전 내부를 관람했던 쇤브룬 궁전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정원, 조각상, 궁전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린다. 그러나 나무가 심겨 있어 글로리에테를 볼 수 없다. 글로리에테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분수 뒤로 난 길을 따라 양옆으로 간 다음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나는 오른쪽 길로 글로리에테까지 올라간 다음 왼쪽 길로 내려올 것이다.

산을 따라 올라가면서 보는 글로리에테

글로리에테 ⓒ 이상기


올라가는 길은 똑바로 나 있지 않고 지그재그로 나 있다. 그것은 경사가 심해 조금이나마 편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언덕을 2/3쯤 올라가니 연못이 보이고 그 앞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글로리에테가 웅장한 모습으로 비친다. 주랑이 있는 신전 양식이다. 그 사이 하늘은 파래져 글로리에테에서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 연못에는 오리가 몇 마리 놀고 있다.

글로리에테(Gloriette)는 정자, 사원, 성을 결합한 개념으로, 전망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에 오르면 쇤브룬 궁전은 물론이고, 빈 시내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리에테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 개선문처럼 생긴 중심건물이 있고, 양쪽으로 회랑 형태의 건물이 이어진다. 중심건물에는 유리가 설치되어 있고 양쪽으로 벽이 있어 내부와 외부가 차단된다.

글로리에테의 명문과 조각 ⓒ 이상기


이곳에서 왕실 가족은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궁전과 빈 시내를 조망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1994~1995년 내부 증·개축을 거쳐 현재는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 바깥 위쪽 벽에는 '요셉 2세 황제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1775년 건설했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그 중 1775라는 숫자 표기가 특이하다. 천과 오백을 라틴어 숫자와 다르게 표기했기 때문이다.

이 명문(銘文) 위 지붕에는 합스부르크가를 상징하는 독수리가 지구본 위에 앉아 있다. 독수리는 입으로 월계관을 물고 있고, 양발은 왕홀과 칼을 잡고 있다. 독수리 양쪽에는 갑옷과 투구 그리고 방패로 무장한 장수가 호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과 번영을 상징하는 조각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제국의 그러한 영광과 번영도 20세기 들어 막을 내렸고, 지금은 중부 유럽의 작은 나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내려오면서 다시 보는 정원과 궁전 그리고 광장

쇤브룬 언덕에서 바라 본 궁전 ⓒ 이상기


이제 언덕을 내려올 시간이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 내려올 때 보인다는 고은 시인의 말처럼, 내려오면서 나는 쇤브룬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높은 언덕에서는 정원과 궁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궁전 너머 빈 시내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빈의 지붕은 전체적으로 붉은 색조다. 또 높은 건물이 없어 일정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궁전 앞 화단 정원의 꽃들도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화단 정원 좌우로 펼쳐진 정원들도 울창하게 나무로 덮여 있다. 그래서 쇤브룬 궁전은 녹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저택처럼 보인다. 저 멀리 동남쪽으로는 빈 구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건물들을 식별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오후에 그곳 원형도로(Ringstrasse)를 따라 시내 관광을 할 것이다.

내려오면서 바라 본 글로리에테 ⓒ 이상기


나는 내려오면서 아쉬움에 여러 번 뒤를 돌아본다. 그곳에는 여전히 글로리에테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바람이 불어 연못에 반영되는 글로리에테의 모습이 흐릿하지만, 역시 멋있는 건물이다. 이제 나는 다시 분수를 지나 화단 정원으로 내려온다. 이번에는 동쪽에 있는 조각상들을 보면서 궁전 쪽으로 간다. 이곳에는 카르타고 장군인 한니발,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파리스, 태양신 아폴로가 있다.

이들을 보고 궁전 앞 광장으로 나오니 9시 30분이다. 1시간 30분 동안 쇤브룬 궁전과 정원 그리고 글로리에테 언덕까지 중요한 것은 본 셈이다. 광장에는 여유 있는 관광객들을 위한 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여유를 부릴 입장이 못 된다. 나는 일행들이 나올 때까지 광장에 있는 분수를 살펴본다. 화단 정원 끝에서 본 넵튠 분수를 축소해 놓은 것 같다. 그러나 넵튠의 상징인 삼지창을 들고 있지는 않다.

벨베데레 궁전 ⓒ 이상기


이제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으로 떠난다. 그곳에 10시까지는 도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벨베데레 궁전은 궁전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지만, 그곳에 있는 미술품으로 더 유명하다. 특히 1900년 전후 세기 전환기 오스트리아 대표 화가들의 그림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분리파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몽환적인 그림,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와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강렬한 그림이 벌써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화단 정원 #넵튠 분수 #쇤브룬 언덕 #글로리에테 #오스트리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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