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와 철학자와 도예가

[2015 청주국제비엔날레] 알랭 드 보통을 듣고, 도예가 박성욱에게 묻다

등록 2015.10.16 16:19수정 2015.10.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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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2015. 9. 16(수)~ 10. 25(일). 사진은 CD 프로젝트로 둘러싸인 옛 청주연초제조창. 청주공예비엔날레엔 공예의 A에서 Z까지 담겨있다. 공예의 과거와 미래, 이면과 표면, 아름다움과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까지 탐험해 보자. ⓒ 원동업


공예란 실용성의 도구이되, 아름다움을 품었다. 그렇다면 에르메스 핸드백과 애플의 핸드폰, 람보르기니 자동차는 현대의 공예품인가? 도자기와 나전칠기가 과거의 사치품임을 감안할 때, 현대의 공예품 목록은 두툼한 여성지인가?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HANDS + 확장과 공존; 잇고 또 더하다'를 찾았다. 거기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공예의 자격을 묻고 싶었다.

비엔날레의 A는 1) 공예의 제작과정(making process)을 들여다보는 것. 목판인쇄와 청동주조는 모두 결과와는 정반대의 틀을 만든 후, 마지막 과정에서 되돌린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참여의 욕구가 살아난다. 2) 인간은 도구(손 그리고 노동)를 통해 공예품이라는 도구를 낸다. 나무를 베는 도끼자루처럼 돌고 돈다. 3) 유산(Inheritance)에서 난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를 느낀다. 4) 확장(Expansion)은 경계를 지우고 넘는다. 비엔날레의 Z 5) 공존(Coexistence)편은 물성과 개념과 표현의 대화를 엿듣는다. 비엔날레는 여행이고, 탐험이다.


30여만 개의 번쩍이는 시디로 지은 외장은 멀리 웅장하고, 가까이 하늘하늘 춤춘다. 키즈비엔날레는 아이들이 주인공, 국제공예학술회의는 전문가들이 주도한다. 31개국 871개 작품을 모은 국제공예공모전과 중국을 주빈국으로 하는 특별 프로젝트까지, 세상의 모든 공예가 여기 모였다. 잔치는 풍요롭고 다채로워 흥성스럽다. 그러나 매일 밤, 잔치는 끝난다.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때 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들은 왜 공예를 만들고, 우리는 경험하는가?

알랭 드 보통 "아름다움을 팔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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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와 충만한 삶_아름다움과 행복에 관하여 한국의 공예는 철학과 사상이 실용과 함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실용을 넘어 아름다움을, 그것을 넘어 가치를 실현하는 공예를 시도했다. 15인의 한국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펜과는 다른 감각으로 소통했다. - 2015년 10월 10일, 청주대학교 다목적체육관. ⓒ 원동업


삶은 내게 기본적으로 난해했다. 도시살이는 복잡했다. 알랭 드 보통은 그때 위안을 주었다. 그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공감해 주었다. '불안'의 정체를 비춰주었다. 10월 10일, 비엔날레 특별감독인 그의 강연 <공예와 충만한 삶>을 들었다. '아름다움과 행복'은 언제고 절실했던 과제였으니까.

그는 '결핍-진공상태'를 말했다. 삶은 너무나 거칠고 황량하다고. 서울같은 도시를 보라고. 그래서 우린 행복을 찾는다고. 공예는 폭력, 빈곤, 무지 따위와는 거리가 멀고, 신뢰, 우아함, 친절함, 고상함, 지성 같은 자격을 선물한다고. 슬플 때 위로가 되며, 침잠했을 때는 힘을 준다고.

공예란 몸을 가져서 누구나 볼 수 있고, 이로써 소통이 시작된다고도 했다. 지금은 작은 것으로 시작하지만, 공항과 체육관 나아가 도시 자체를 '공예'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한국이 30년 전 자동차를 세계에 팔았을 때처럼, 이를 사줄 독일인 의사를 연구하라. 국가는 공예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고, 홍보회사와 공예가의 전략적 공조도 필요하다. 아름다움을 팔 수 있어야 한다."

보통은 도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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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청주국제비엔날레 2015. 09. 16~2015. 10. 25 옛 청주연초제조창 예술적 경험의 가장 이상한 특징 중 하나는 가끔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힘이다. 보는 즉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작품을 마주하며 아름다움에 격렬히 반응하는 이 특별한 순간에 우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 원동업


박성욱 - 쓰는 이의 영역 비우고, 쓰이는 과정에서 완성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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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전_유산(Inhritance) '전통;가치의 재발견' 박성욱의 작품 도벽과 분청백자 달항아리를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도벽은 3만여개의 도예조각으로 이루어졌다. 달은 벽과 바닥에 떴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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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塔)_7×7×15. 부제 공사일육. 박성욱 작 세월호 참사후 탑을 빚었다. 탑은 이전에도 조형적 오브제로 만들어졌으나, 이 탑은 이전의 탑과 다르다. 여기엔 기억과 기원이 있다. ⓒ 박성욱


보통의 강연이 있던 날, 비엔날레 관람후 지평을 찾았다. 박성욱은 이번 비엔날레의 '유산 섹션' 초청작가. 무왕리 산촌분지에 도예가 박성욱의 작업실 겸 거처가 있었다. 가는 길에 천둥 번개가 쳤고, 비 오는 밤길은 어두웠다.

- 현대공예저널 편집장 글렌 아담슨은 공예의 제작과정을 살피라 했다. 경로를 해독하면 공예품을 새롭게 감상하는 법을 발견한다고. 그는 협업, 연속된 반전 과정을 짚었다. 당신 작품의 제작과정은?
"덤벙분청은 소성되지 않은 기물을 백토물에 담가 형태를 완성시킨다. 이때 기물은 중력을 견디기도 하고 담아내기도 하며 혹은 허물어지기도 한다. 덤벙분청 달 항아리는 지구와 달의 어디 즈음에서 아슬하게 형태를 유지하는 긴장감이 있다. 기물들은 불의 흐름에 따라 섬세하게 반응한다. 주저앉기도 하고 갈라지는 일은 허다하다. 그러나 미세한 실금도 허락할 수 없다. 전 과정에 감각을 열고 기다린다."

- 보통은 한국 공예의 대표주자로 도자기를 들었다. 외국에도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당신 작업은 분청과 백자, 합과 탑 같은 전통 '유산'을 가장 근접하게 지키고 있다. 그러나 비엔날레는 변화와 미래를 보여주는 행사 아닌가.
"고려청자의 선과 색, 조선백자의 단아 소박함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분청은 다소 생소한데, 활달하고 자유스럽다. 나는 분청과 백자를 결합하고, 달항아리를 평면으로 내려 해체-재조직하는 도벽작업도 한다. 전통은 '자산'이다. 이를 토대로 작업하는 것은 작가로서 행복한 일이다. 분청의 자연스러움, 백색의 단순함은, 내 작업 정체성에도 잘 부합한다."

- 보통의 강연에서 한 질문자가 '스탕달 신드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술작품에서 느끼는 환희와 격정의 순간을 이야기한 것이다. 실용과 아름다움을 넘어 확장된 것.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생명이 서서히 가라앉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죽음들을 견딜 수 없었고, 탑들을 빚었다. 이전에도 조형적 오브제로서 탑 작업을 해왔었지만, 이 탑은 이전 탑과는 다르다. 부제 공사일육. 탑은 기억, 기원으로 거기 존재한다.

- '공존'은 비엔날레의 중요 주제였다. 최종 지향처럼 제시되기도 했고. 당신에게 공존은 어떤 의미인가?
"말하는 이가 있는데 듣는 이가 없다면? 만드는 이는 있는데 쓰는 이가 없다면? 공허함을 채우는 것이 공존이다. 사람은 함께 살고 의지하는 존재이다. 나는 보다 철저하고, 전인적 인간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역할에서의 최선일 것이다."

-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자연, 우아함, 강인함, 동행 등의 주제어를 담은 특별전이 열렸다. 그 주제어 안에 '불완전함'도 들어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게 인간다움의 한 증표이고, 이를 극복해 감을 환기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로 보였다.
"도자작업은 불완전함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흙을 수비하고 빚고 말리고 굽고 하는 과정속에서 만드는 이 영역 밖의 일이 늘 따른다. 쓰임이 있는 공예로서 쓰는 이의 영역 또한 비워 두어야 한다. 각 과정 속에서 최선을 다 하지만, 쓰여지는 과정 속에서 공예는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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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덤벙분청은 백색 화장토 물에 기물을 덤벙 담가 완성해 낸다. 도예가 박성욱의 삶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그의 곁에 늘 흙과 가마, 매와 부엉이와 꿩, 지천인 논과 밭, 자연처럼 자라는 아이와 삽살개 당희가 있을 뿐. 경기도 지평, 작업실 옆에 딸린 사랑방에서 박성욱(왼쪽)과 이금영. ⓒ 원동업


박성욱과 그의 처 이금영은 두 아이 유빈과 순빈을 이곳서 낳았다. 첫아이 고1 유빈은 얼마전 도예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중2 순빈은 근처에서 떠온 흙을 천에 걸른 뒤, 흙떡을 만들었다. 흙의 점성에 관한 연구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다.

이금영은 양평서 매월 한번 열리는 리버마켓에 참가한다. 그녀가 고른 생활자기들과 손수 그려 구운 작품들을 펼친다. 다른 식구도 있다. 삽살개 당희. 독도 경찰견이었다가 잡아서는 안 될 짐승을 잡아 쫓겨난 할머니개의 후손. 당희는 할머니 나이가 되었고, 얼마전 세 마리 새끼를 낳았다. 삶은 잇고 또 더해진다.

철학자는 공예의 쓰임 너머를 말했다. 아름다움을 창조한 공예품은 가치까지 창조할 수 있다. 지평에서 보면 그건 역순으로 적용된다. 삶이 작품을 빚는다. 가치란 그때 거기 스며든다. 공예의 가장 근사한 부분은, 그 역순을 우리가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알랭 드 보통 #박성욱 #도예 #분청덤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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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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