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거리를 누비는 치마저고리들

재일동포 시인 '오홍심 문학의 밤', 그 뒷 이야기

등록 2015.10.26 10:29수정 2015.10.2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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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심 재일본 시지 <종소리> 대표가 울먹이며 고국의 문우들에게 인사 말을 하고 있다. ⓒ 김이하

서양속담에 "말이 살아있는 한 그 국민은 죽지 않는다"고 한다. 또 프랑스의 작가 알퐁스 도데는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가령 어떤 국민이 노예의 신분이 되더라도 자기 나라의 국어를 건실하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자기가 갇힌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곧 말은 겨레와 나라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임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종전 70년이 지난 지금도 도쿄 한복판에서 우리말로 된 시집을 계간으로 펴내면서 우리말과 글을 오로지 지켜가는 시지 <종소리>회원들이 있다.


시지 <종소리> 대표 오홍심 선생의 귀국 환영 모임인 '오홍심 문학의 밤'이 지난 주말(10월 16일) 서울 낙원동 한식집 '낭만'에서 열렸다. 이 문학의 밤은 그날 즉흥적으로 이뤄졌지만, 우리 8천만 겨레의 정체성을 밝히는 대단히 진지하고, 의미 있었던 행사였다.

오홍심(吳紅心) 선생은 제주도 서귀포시 하효동에서 서당 훈장이었던 아버지 오두흡(吳斗洽) 선생의 따님으로, 1941년 일본 효고현(兵庫縣)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선대학교 통신학부 사대반을 졸업한 뒤, 센보꾸조선초급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은 이래 40여 년 교원으로 지냈다. 현재는 일본 도쿄에서 재일동포 시지 <종소리>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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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균 시인이 오홍심의 '백두의 아침하늘'을 낭송하고 있다 ⓒ 김이하


우리말의 파수꾼

우리가 지난 세기 35년 동안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거쳤지만 우리 한글학자들이나 민족사학자들이 우리말과 역사를 오로지 지켜왔기에 광복 후 우리는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어느 제국인들 식민지 백성들을 가혹하게 통치하지 않았으련만,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조선 통치는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그 어느 제국보다 가혹하고 악랄했다. 일제는 조선을 강제로 병탄한 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도발하고는 그것을 핑계삼아 조선을 전시 체제로 개편하여 사회, 경제를 완전히 통제하였다.


그뿐 아니라 우리 민족말살정책으로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성씨를 바꾸게 하는 창씨개명을 실시하였다. 그런 일본 본토에서 우리말과 글, 그리고 우리의 성씨를 굳건히 지키고, 한복을 입으면서 전후 70년이 지나도록 한결같이 살아온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시밭길이었다. 이는 계간 <종소리> 시집 창간을 주도한 정화수 시인의 '치마저고리'에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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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심 시지 <종소리> 대표와 고국의 김창규(왼쪽) 시인이 통일비원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 김이하


청자, 백자인가

치마저고리
- 정화수

청자, 백자인가 일본거리에
색깔도 연한 치마저고리들
비둘기처럼 나란히 속삭이며 다니네

서리 같은 칼날들이 노리건만
의젓한 그 모습
조선의 딸들이 틀림없구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이제는
바꾸어 입으라고 말리는데도
갈기갈기 찢길지언정
민족의 넋 벗을 수는 없다는 게지

우리 학교 다니면서 움트고 자란
그 넋을 지녀온 귀염둥이들
날개처럼 입고 다닌 교복이 아니냐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게지
백옥 같은 치마저고리
먹물을 덮어쓰고
통바지에 몸이 매여 끌려온 수난

다치지도 말아다오
잊지도 말아다오
오늘의 괴한이 누구의 후예인가를
무엇 때문에 칼부림하는가를

살벌을 늠름히 헤치고 다니는
조선의 딸들아 기특도 하구나
나는 걸음 멈춰
뜨거운 눈길을 한참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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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심 '문학의 밤' 종료 후 기념촬영 ⓒ 김이하


서울에서 <종소리>가 울리다

나는 재일 종소리 회원들을 2005년 7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에서 만난 후 그분들이 보내준 계간 시지 <종소리>의 주옥 같은 시들을 매번 두어 편씩 지난 10년 간 오마이뉴스에 계속 소개해 왔다.

나는 평생 우리말을 배우고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그분들의 굳건하고 미쁘신 삶에 깊은 감동과 존경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재일 동포였다면 그분들처럼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즈음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그 논란이 매우 뜨겁다. 나는 왜 우리말과 올바른 우리 역사가 소중한지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 사학자이신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1859~1925) 선생의 말씀으로 대치하고자 한다.

"한 민족이 나라는 망할지라도, 백성들이 나라의 말과 역사를 지킨다면 언젠가는 독립할 수 있다."

이날 밤 열린 오홍심 문학의 밤은 김창규 시인의 하모니카 연주 '오빠생각'으로 시작했다.

'낭만' 실내 벽에는 홍일선 농사꾼 시인이 비료부대에다가 오홍심 시인의 작품 '백두산의 아침하늘' '세월' '이 몸 가야지' 등을 손수 붓으로 써서 붙이고 그날 참석한 문우들이 이 시들을 돌아가며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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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문우들이 오홍심 시지 <종소리> 대표에게 김수영 생가터를 안내하고 있다. ⓒ 김이하


백두산의 아침하늘
- 오홍심

지는 달 솟는 해가
선남선녀 맞선 보듯이 마주보는
백두상상봉에서

우리는 만났다
해와 달이 만나듯
남북의 마음이 함께 만나
어깨 겯고 통일을 부르짖는다

오늘은 백두에서
내일은 한라에서
우리 마음 다시 만나
통일 해돋이 맞이하자

그날을 그려보며
내 마음의 붓대로
천지의 푸른 물 듬뿍 찍어
저 달과 해를 이어

한라산 백록담까지
통일의 한일자 그어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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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진원지 탑골공원 앞에서 고국의 문우들과 조국통일을 논의하다 ⓒ 김이하


해외동포의 한결같은 소원

오홍심 시인의 시 낭송에 이어 조태일의 '국토서시'와 그밖에 고국의 문우들과 통일을 기원하는 여러 노래로 서울의 밤이 스멀스멀 깊어갔다.

깊은 밤, 오홍심 시인은 마무리 말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나의 시가 낭송된 이 시간은 꿈만 같다. 재일동포를 비롯한 7백만 해외동포의 한결같은 소원은 아마도 남북통일일 것이다.

정화수 선배님의 '종소리가 끊어지면 우리의 명줄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종소리 창간에 즈음한 비장한 말씀을 늘 되새기면서 앞으로도 계속 시지 <종소리> 발간을 이어가겠다는 눈물어린 말씀에 고국의 문우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참석한 문우는 다음과 같다.

김선(시인), 김응교(시인·숙명대교수), 김이하(시인), 김좌현(아동문학가), 김창규(시인), 김흥우(동해민예총회장), 박도(소설가), 박희호(시인), 윤일균(시인), 이승철(시인·한국문학평화포럼사무총장), 이연우(시인), 장순향(민예총부회장·한양대교수), 정용국(시인), 홍일선(시인).
#오홍심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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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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