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의 엄마표 학습, 이렇습니다

[70점 엄마 ⑨]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쌍둥이 남매의 엄마표 일주일

등록 2015.11.11 14:32수정 2015.11.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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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총량의 법칙'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자기가 평생 문제(지랄)를 일으킬 총량은 정해져 있다'라는 법칙인데 그 지랄이 언제 터지느냐가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 방황하는 것보다 차라리 어릴 때 얼른 방황하고 철이 드는 것이 났다고 하네요? 어릴 때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 방황하게 되면 그때 생기는 문제는 어릴 때 아이가 만든 사고의 뒤처리보다 훨씬 더 큰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이죠.


쌍둥이 남매는 2016년이면 초등학생이 됩니다. 쌍둥이 남매가 7세가 되면서부터 저는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일명 '엄마표 7세 프로젝트'를 통해 하루 한글 1장, 수학 1장의 학습지를 하는 것이었죠.

내용의 습득보다는 매일 학습한다는 습관을 들이기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10개월간 20여 권의 학습지를 끝내면서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하루하루가 모여 이렇게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한편 요즈음에는 공부가 전부가 아닌데 왜 이렇게 아이들의 일상을 재촉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사실 오늘 하루가 어제 같은 일상이었다면 저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예측불가라는 말이 저한테도 딱 들어맞더군요. 지난 여름 갑작스럽게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 중이신 친정엄마가 생각의 중심에 놓여있습니다. 부부의 바쁜 일상에 따라 부족한 시간과 애정을 외할머니로부터 채워오던 아이들이 조금씩 문제 상황(?)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한밤중에 자다가 깨서 무섭다고 보채는 아들, 사소한 외출에도 쉬가 마려울까 봐 걱정하는 딸 그리고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토하고, 수시로 배가 아프다며 전과 달리 잔병치레를 합니다. 초등학교 입학은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혹시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난 거죠. 친정엄마에게 육아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어진 상황이 저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도움 없이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 다른 워킹맘에 비하면야 저의 상황은 훨씬 좋은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친정엄마가 일상의 전부를 소모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걸 제가 직접 챙기게 되자 삐걱거리는 일상을 경험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간 친정엄마가 만들어놓으셨던 동네 엄마들과의 놀이터 네트워크에서 단절됨은 물론 평일 유치원의 부모 참여도 어려워졌고, 급작스럽게 발생한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일하는 중에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수업이 캔슬되는 바람에 아이의 픽업 스케줄이 틀어져 전화를 받으면 멘붕에 빠집니다. 아이를 픽업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 제가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계속 전화를 돌리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길 바라며 초조해하고 짜증을 내는 수밖에 없어요. 결국 거동이 힘든 친정엄마를 동원해 아이를 픽업하는 것이 전부죠.


출근이 이르고 퇴근이 늦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로 태어나 매 순간을 재촉당하며 지내는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학습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래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7세 이전에는 강제하지 않던 공부를 매일 시키기 위해 규칙을 강요하다 보니 아이들과 충돌하는 일이 많이 생기는데요. 엄마표로 학습을 하는 것에 있어 아이들과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 정리를 해봤습니다.

월요일(빨리빨리 재촉하기) 아침 7시.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합니다. 겨울로 접어드는 요즘 밖은 아직 깜깜하니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남편은 6시 반에 출근했고, 저도 7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이른 시각 아이들을 깨우고 출근합니다. 엄마 얼굴을 보지 못하면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우는 아이의 전화를 받게 되거든요.

화요일(빠른 결과를 위한 끊임없는 경쟁) 오후 9시.
잠자리 독서를 위해 책을 고를 때 누가 먼저 골랐느냐며 순위를 정합니다. 책을 읽은 뒤 잠을 잘 때도 "눈 감아, 차렷! 움직이지 말고 얼른 자!"라고 윽박지릅니다. 밥을 먹을 때나 양치질을 할 때에도 빨리 한 녀석을 칭찬을 함으로써 태어나기 전 뱃속에서부터 경쟁 상태였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합니다.

수요일(행동 과정이나 동기가 아닌 결과 칭찬)
퇴근해서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은 저에게 아이들이 뛰어와 저마다의 작품을 보여줍니다. 저녁시간 동안 TV 보는 것도 마다하고 블록 놀이와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과정보다는 만들어놓은 결과물의 완성도를 보며 "잘했어! 최고"라며 엄지를 척 들어주고 말았네요. 즐겁게 놀이를 했지만 결과만 칭찬한 엄마에 의해 아이들의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오듯 다운됐습니다.

목요일(회사에서 뺨 맞고 집에서 눈 흘기기)
오늘 따라 회사에서 일이 꼬여 마음이 힘들었네요. 집은 평소와 같이 어질러져있을 뿐인데, 아이들에게 버럭 짜증을 냅니다.

"엄마가 너희들 어지러놓은 것 치우는 사람이야? 놀고 나서 왜 청소를 안 해?"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하지만 화난 엄마에게 이의 제기를 하지도 못 합니다.

금요일(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엄마의 기준을 적용하기)
한글 1장, 수학 1장의 획일적인 학습 규칙은 아이들의 발달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읽고 쓰기가 익숙한 딸과 수리 감각이 뛰어난 아들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동일한 학습 진도와 분량을 소화해 내야 합니다. 아직 어려서 전반적으로 발달이 빠른 딸에겐 늘 칭찬이 부족하고, 계단식 성장을 보이고 있는 아들은 한 계단 위에서 왜 점프하지 못하느냐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토요일(답을 정해두고 아이의 자유를 제한하기)
밥을 먹을 때 정해진 가짓수 이상의 반찬을 먹어야 합니다. 외출복을 고를 때 아이의 기분과 무관하게 엄마의 선택을 강요합니다. 심지어 간식을 사 먹을 때조차 아이가 온전히 원하는 것이 아닌 엄마가 정해둔 선택지 안에서 고르게 합니다.

일요일(학습을 과정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하기)
주말이면 공부는 일종의 협박 거리가 됩니다. 정해진 분량을 소화해내지 못하면 TV를 보거나 외출할 수 없습니다. 주말에도 예외 없이 모든 일은 빨리빨리 하라며 재촉당하죠.

일주일의 일과를 중심으로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숨 가쁜 한 주가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가며 겪는 가장 큰 변화는 이전에는 보육 중심의 생활이었다면 이제는 교육-학습 중심의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일 텐데요. 어제의 아이와 오늘의 아이가 달라진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뿐인데 엄마와 사회는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한글, 수학, 영어공부 그리고 음악, 미술, 체육 등의 학습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서 아이는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하죠. 그런데 빨리빨리를 외치는 부모에 의해 올바른 홀로서기를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사춘기에 혹은 20대 이후 진짜 부모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할 때 심각한 방황을 겪게 됩니다. 소위 '지랄'이라고 말하는 시기를 뒤늦게 겪는 거죠.

요즈음 부모 세대로부터 올바로 독립하지 못하는 자녀들에 대한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어릴 때는 부모님 혹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생활하고 학습을 해도 크게 반항하지 않죠. 하지만 성장하고 나서 어릴 때 겪어보지 않은 방황을 겪는 것, 그래서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이 꼭 아이만의 잘못일까요?

혹은 사춘기를 겪느라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인 걸까요? 어찌어찌 무사히 대학까지 부모가 의도한 대로 진학했다고 해도 철이 덜든 아이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부모의 사례나 대학교 입학 후 부모와 절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더군요.

아이들의 본성을 고려하지 않고 빨리빨리를 외치며 육아를 하는 맞벌이 부부의 정신없는 일상은 앞으로 아이들을 어떤 모습으로 성장시킬까요?

주위의 지인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더라, 생각보다 아이들은 잘 적응한다고들 합니다만, 제가 놓인 상황에서는 충분히 걱정되는 1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든 저에게 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 워킹맘을 퇴직으로 끌어당기는 블랙홀이 되는 건 아닐런지요.
덧붙이는 글 네이버 개인블로그(blog.naver.com/nyyii)에 11.10에 게시하였습니다
#70점 엄마 #쌍둥이육아 #워킹맘 #까칠한워킹맘 #지랄총량의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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