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거부한 이들'의 특별한 파티

[청소년 1318] 투명가방끈 파티 '혼자가 아니야'

등록 2015.11.13 19:54수정 2015.11.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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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유일한 본분으로 일컬어지는 공부.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질책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다양한 여러 곳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리고 청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청소년인 필자가 이들을 직접 인터뷰합니다. 또, 청소년들이 모이고, 주최했던 행사나 모임을 취재합니다. 청소년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동네 1318]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11월 12일 대학거부선언을 했던 청소년 단체 '투명가방끈'의 파티인 '혼자가 아니야'에 다녀왔습니다.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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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진행된 '우리동네 나무그늘' ⓒ 박장식


대학 진학률이 70%인 시대다. 심화된 교육을 받고자 하는 이들의 '선택지'에서 '필수적인 과정'으로 변화된 대학교육은, 그럼에도 30%의 '고졸'을 낳고 있다. 이들의 '고졸사유'는 제각각이다. 대학에 갈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갈 성적이 되지 않아서, 그리고 자발적인 '대학 거부'다.

그렇다면 이들 중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하 투명가방끈)은 매번 수능 때마다 기자회견을 가져 대학교 입시를 위해 달려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대척점에 서서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이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은 많은 이들의 비판을 한몸에 받았다. "고졸로 나와서는 갈 데가 없다"라는 반응부터 "너희들은 이래서 안 된다"라는 격양된 반응까지.

하지만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대학을 나온 사람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 진학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받는' 교육에 대해 고민하던 이들,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지난 12일에 있었다. 그곳에 찾아가 봤다.

내가 거부하고 싶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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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야' 파티가 나무그늘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 박장식


11월 12일 저녁 7시.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대안문화공간카페인 '우리동네 나무그늘'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투명가방끈이 주최한 파티인 '혼자가 아니야'에 참여하기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날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은 7시 30분부터 제공되는 카레로 저녁을 먹고, 8시가 갓 넘은 시각부터 각자의 주제에 따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참여한 40여 명의 사람이 손을 들고 발표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테이블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5~6명 단위의 모둠에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1년 입시거부선언을 한 투명가방끈 활동가 김서린씨가 자리에 도착해 사회를 맡게 되었고, 이윽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주제는 '내가 거부하고 싶은 것'을 주제로 각자의 의견을 종이에 적는 것이었다. 처음에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자 김서린씨가 핸드폰을 꺼내 2분의 시간을 재어보자며 타이머를 켰다. 2분의 시간 동안 좋아하는 색깔의 종이를 고르고, 자신이 가장 거부하고 싶은 한 가지를 찾느라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수행평가, 출퇴근 지하철 등 사람들의 재치있는 답변들이 나온 가운데 참여자 중 한 명인 김영환 씨가 '폭력(Force)'를 의견으로 냈다. 김영환 씨는 "거부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폭력은 '거부'를 거부할 수 없게끔 하기 때문이다"라며 이유를 제시했고, 사람들의 박수를 이끌어내게 되었다.

마인드맵을 통한 자유로운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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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부하고 싶은 것은? 김영환 씨가 자신이 쓴 내용을 들어보이고 있다. ⓒ 박장식


그다음에는 제시된 주제를 골라 마인드맵을 그리게 되었다. 주제는 오늘 제공된 식사, '카레의 맛'이었다. 김서린 씨가 마인드맵 위에 카레 맛 카드를 붙였다. "맛있었다" "약간 느끼했다" "채식카레가 맘에 들었다" 등의 다양한 반응이 나타났다.

누군가 먼저 별 5개를 그린 것을 시작으로 별점을 매기었는데, 5점 만점, 10점 만점, 100점 만점 등 다양한 관점에 맞춰 별점을 매기는 것을 봤다. 획일화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반응과 느낌에 따라 제각기 다른 수의 별을 매기는 것을 보고 광화문에서의 대입거부 선언문이 떠올랐다.

이윽고 다른 주제인 대학으로 넘어갔다. 한 참여자는 대안학교의 한 종류인 대안대학교 이야기를 꺼내면서, "대안대학교에 다녀본 적이 있다. 그런데 대안대학교에 대해 점점 실망하게 되더라. '우리는 대안학교다!'라는 의식 때문인지 일반 대학보다 더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았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대학 안과 대학 밖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대학을 중퇴한 김서린 씨는 대학 특유의, 학번을 위시하는 선후배 간의 경직된 관계와 과잠바 등의 대학교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서울 시내의 유명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는 김아무개씨는 서울대 출신의 학교 선배가 강연을 와서 했던 이야기인, "서울대를 다니면 다닌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학과에는 아무도 집중하지 않는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 대학 진학률 이야기도 나왔다. 대학을 꼭 가고 싶은 사람만 가는 독일의 특성으로 인해 인구의 약 30%만 대학에 진학했고, 낮은 진학률로 인해 독일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언제부터 대학을 필수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대학교 졸업자가 굳이 필요 없는 일에도 기업들이 대졸을 뽑게 된 상황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주제에선 모든 사람들이 고민을 잠시 했다. 한 참가자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하니, '냥집사'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화제가 반려동물로 옮겨가게 됐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삶의 벗을 얻고, 희망을 갖게된다"는 말에 모두가 동의하고, 곧이어 김서린 씨가 최근 논란이 되는 '동물권 확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시간은 어느덧 행사의 종료 시간인 9시 30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인드맵은 빽빽하게 꽉 찼다. 각 모둠에서 한 명씩 나와서 발표를 했다. 1모둠에서부터 6모둠까지 발표를 하는데, 여러 사람의 생각을 정리한 것을 말하다가도, 가끔은 발표자 자신의 생각을 직접 어필하는 모습에 웃음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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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마인드맵. 대학 한 가지로 맵의 절반 이상을 채운 것이 눈에 띈다. ⓒ 박장식


마지막 순서는 작별이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람들과 만나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든 사람들이 서로 악수를 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공유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김창완밴드가 지난 연초에 낸 신곡 중 하나인 '중2'의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갈 테야 가고 싶은 대로 할 테야 하고 싶은 대로 / 멀고 험해도 원하는 세상에 원하는 그곳에 갈 거야"

이들의 선택은 멀고 험한, 하지만 원하는 이상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벗어나 나의 길을 찾음을 당당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같은 나이의 또래인 내가 보기에는 존경스러웠다. 그들이 지난 12일의 결심과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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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당일 기자회견에 참여했던 한채림씨가 세 번째 모둠의 대표로 나와 마인드맵의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 ⓒ 박장식


#투명가방끈 #수능거부 #입시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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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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