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다녀오니 나라가 더 망가졌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92]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등록 2015.11.14 16:57수정 2015.11.1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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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지난 7월 17일 구속됐던 박래군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아래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이 지난 2일 110일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심규홍)는 "현재까지 심리 경과에 비춰 볼 때 피고인이 더는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구속 수감 후 건강상태 악화를 호소하며 앞으로 성실히 재판을 받겠다는 의사를 반복해 보인 점을 고려했다"고 보석 이유를 설명했다.

110일 만에 석방된 박래군 상임 운영위원을 지난 9일 서울시 마포구 성산1동에 위치한 '인권재단 사람'에서 만나 석방 소감 등을 들어 보았다. 다음은 박 상임 운영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석방된 지 일주일, 아직 실감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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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 이영광


- 석방 된 지 1주일 됐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정신없이 지냈어요. 4개월 가까이 공백이 있었으니까 그동안 세월호 참사 관련 추진한 일들의 진행상황을 많이 들었고, 제가 몸담은 인권재단 사람에서 진행한 일도 들으면서 앞으로 제가 뭘 해야 할지 구상하는 중이에요."

- 110일 동안 구치소에 계셨잖아요. 구치소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나요?
"더 망가졌죠. 아시다시피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 개악 등 제가 들어간 후 좋은 일이 없었잖아요. 정부가 막가고 있는 거죠. 기본적인 선을 넘는 것 같아서 걱정이죠."

- 여기가 바닥일까요? 아니면 더 떨어질 곳이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한동안은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악 등을 밀어붙여서 더 힘들어지겠죠. 우린 버티며 이겨내야 하는데 이겨낼 힘이 있을지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정부는 계속 밀어붙일 텐데 이걸 저지할 힘이 있느냐에 달렸죠. 오는 14일에 예정된 민중총궐기에서 시민들의 분노를 모아내는 게 중요해요. 지금보다 더 엄혹해질 수도 있다고 보지만 어느 정도까지 갈지는 모르겠어요."


- 유신정권은 언제 끝날지 몰랐지만, 박근혜 정권은 끝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유신이 회귀한 듯한 정책들을 통해 정권을 재창출할 겁니다. 즉 이 정권이 끝나더라도 극우 정권을 유지해 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정권에서 끝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현재 이들은 더 멀리 내다보며 포석을 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정권과 싸움을 잘 해내야 민주주의를 살리고, 유신 회귀를 막아낼 수 있죠.

- 지난주 최경환 경제 부총리가 4년 중임제 개헌을 언급했던데, 이것도 정권 연장과 관련 있다고 보세요?
"개헌을 통해 유신 같은 권력을 창출하겠다는 것이죠. 정상적이면 대통령 중임제 같은 걸 제대로 논의해서 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러나 지금의 의도는 현재 대통령 단임제에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수정권이 지속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때문에 정부는 개헌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밀어붙이겠죠. 그래서 내년 총선이 중요합니다."

- 구치소에서 어떻게 지내셨어요?
"구치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몸이 엄청나게 망가진 상태여서 초기에는 운동으로 체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어요. 그 뒤부터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상도 하면서 책 쓸 준비도 했는데, 갑자기 나오게 돼서 책은 못 썼습니다."

- 어떻게 보면 재충전하는 휴가였네요.
"네. 독방에 갇혀 있어서 답답하긴 했는데, 저에겐 재충전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쉬지 못했어요.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로 유가족과 함께 노숙과 행진을 하며 무리해서 달려왔죠. 그런 걸 반추해 보면서 정리하는 기간이기도 했고, 힘을 다시 만드는 기회이기도 했죠."

- 구치소에서 편지를 쓰셨던데.
"제가 구속됐을 때 <한겨레21>에서 '편지 보내주면 다 싣겠다'고 해서 쓰게 된 거죠. 지금은 감옥 안에서 편지지를 사서 쓸 수 있어요. 그러나 손 글씨 보다 컴퓨터에 익숙해 있어서 처음 쓸 땐 한참 헤맸죠. 구치소도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게 해줘도 되는데, 아직도 거기는 1990년대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죠."

- 이번이 다섯 번째 구속으로 아는데 이전과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감옥 환경 자체는 많이 좋아졌죠. 예를 들어 1980년대는 안에서 펜과 편지지를 구입할 수 없었어요. 미결수 같은 경우는 매일 편지를 쓸 수 있는데 미리 준비해 가서 써야 하고, 기결수는 한 달에 한 번 써요.

신영복 선생님 같은 경우 편지를 쓸 때는 한 달에 한 번 봉합 엽서에 쓰기 위해 한 달 동안 생각하는 거 잖아요. 머릿속에서 글을 짓고 수정하는 등 갈고 닦아서 나오는 거니까 그 편지가 좋은 거예요. 지금은 그렇게 하는 건 아니고 편지지와 펜은 있으니까 마음대로 쓸 수는 있는데, 손 글씨로 쓰는 게 어색하죠.

구치소는 2000년대 이후 많이 바뀌었어요. 인권 운동의 결과로 2001년에 국가 인권위가 만들어졌잖아요. 그들이 방문 조사로 문제를 바로잡으니까 예전 감옥에서 벌어졌던 폭력은 상당히 사라졌어요. 또 겨울에 난방한단 거예요. 1980년대는 감옥 안 겨울은 굉장히 추워서 사람들이 서로 붙어 새우잠을 자던 시절이었는데, 요즘은 난방이 되니까 예전처럼 몹시 춥거나 하지 않죠."

- 구속된 지 110일 만에 석방되었는데 석방은 언제 알게 되었어요?
"보석 신청은 추석 전에 했는데 기대는 안 했어요. 왜냐면 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에서 체포된 사람들도 보석 신청을 했으나 기각됐거든요. 저만 특별히 보석 석방을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상 포기 상태였고, 1심 재판 끝날 때 집행유예로 나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두 번째 공판이 10월 28일이었습니다. 공판 끝나고 나서는 12월 중순까지 계획을 짜고 있었죠. 제가 보석으로 풀려난 날이 지난주 월요일(2일)인데 그날 오후 3시에 면회 온 후배에게 '보석은 기대할 게 없으니까 50일 정도 더 있어야 겠다'고 얘기했어요. 4시 40분에 저녁을 주는데, 저녁을 먹고 좀 있으니 못 보던 교도관이 절 찾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보석이란 말도 안 하고 좋은 일로 왔대요. 그러면서 보석 결정 동의서를 보여줬어요.

몇 가지 규칙이 있거든요. 거기에 싸인 하고 나온 게 7시 반이에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나온 거죠. 보석 결정은 대부분 그래요. 나왔더니 저희 처와 세월호 유가족, 활동가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반갑게 만나고 광화문 농성장에 와서 분향을 했죠."

- 기분은 어땠어요?
"좋지만 얼떨떨했어요. 갇힌 사람들은 나갈 때도 긴가민가해요. 또 석방되고도 나와 있는 게 맞나 생각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몸으로 느끼죠. 예를 들어 밤에 잠을 자는데 눈을 뜨면 불이 꺼져 있어요. 그러면 깜짝 놀라요. 왜냐면 구치소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거든요. 근데 불이 꺼진 방에서 자다 보면 뭐가 잘못된 것 같잖아요. 그래서 멈칫해요. 낙엽을 밟는다거나 문을 열고 나가는 등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도 석방됐다 걸 느껴요. 구속은 이런 일상을 차단하는 일이거든요."

"정부 착각마라, 날 가둔다고 끝날 싸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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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승줄 묶인 인권운동가 박래군 지난 4, 5월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이 포승줄에 묶인 채 지난 7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 세월호 1주기 시위 때문에 구속됐는데,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동안 유가족과 시민이 계속 싸워서 세월호 특별법까지 만들었지만, 1주기는 힘든 시간이 다시 떠오르는 날이잖아요. 저희는 참사 1주기를 국민적인 추모 분위기 속에 맞고 싶었어요.

그런데 3월 27일 입법 예고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개판으로 나왔어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사무처 직원 수를 줄이고 공무원 파견 비율을 높이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특별법도 한계가 많은데, 그조차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을 만든 것입니다. 때문에 유가족과 시민들이 시행령 폐기를 요구했어요. 동시에 정부가 저울질하며 결정을 미루던 세월호 인양도 확정 발표하라고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정부가 유가족들에게 엄청나게 배·보상을 해주는 것처럼 발표했습니다. 유가족들이 계속 요구했던 건 진상규명을 위해 시행령을 폐기하라는 거였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하라는 건데, 그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돈 받고 떨어지라며 모욕감을 준 거예요.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삭발하고 도보 행진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치달았고, 시민도 분노했잖아요. 그런 분위기에서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며 집회시위를 원천봉쇄했습니다. 시민들이 경찰 차벽을 뚫고 가다 보니 차량이 파손됐고, 경찰도 다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시위를 주최한 제가 책임지라는 거예요. 모든 걸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저라고 판단해 제가 구속됐던 거죠."

- 표면적 구속 사유는 폭력시위 주동자입니다. 그러나 속내는 다를 것 같은데 진짜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정부나 공안기관 입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활동을 약화시켜야 하는데 저나 다른 분들은 그게 아니라 계속 싸울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역할을 하는 곳이 416연대입니다. 다 따로 존재하던 단체와 개인을 416연대로 모으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준비했고 6월 28일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들이 하나로 뭉치니까 그냥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겠죠. 그런 과정 속에서 유가족과 시민단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던 저를 잘라낸 거죠. 그러나 제가 구속됐다고 약화되진 않습니다."

- 아마도 정부는 박 위원장이 최고 윗선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부가 착각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시민사회 조직이 예전과 달라졌어요. 예전엔 조직 안에 대표가 있고 그 아래 집행부가 있는 수직적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결정하면 아래로 전달되었어요. 지금은 네트워크 조직이에요. 제가 뭘 결정해서 하라고 할 수도 없지만, 회원들이 무조건 따르지도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나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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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지난 5월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히자 파도타기를하며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6개월이 되어갑니다. 특별조사위원회 활동도 시작했지만 국민들은 점점 잊는 것 같은데.
"특조위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죠. 특별법을 어쩔 수 없이 만들었지만, 정부는 특조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기를 바랄 겁니다. 하지만 특조위는 이런 조건을 탓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이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참사 진실을 하나라도 제대로 밝혀내야죠.

'특조위를 해보니 정말 문제가 많았다'라는 것을 드러내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다른 정부가 들어섰을 때 다시 진상규명을 하는 근거가 되는 거죠. 그런 것을 만들어 주는 게 특조위의 역할이란 생각이 들어요. 악조건에도 할 수 있는 걸 다 했으면 합니다. 강고한 벽을 깨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루는 게 특조위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민간 차원의 조사위도 있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되어가나요?
"그것도 한계는 많죠. 일단 특조위와 협력관계 속에서 그들의 일을 지원하는 게 목표입니다. 내부 정리를 하고 있어서 구체적인 성과는 드러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도록 자료도 만들어 내고 공론화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으로 생각해요."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금으로선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고, 나와 보니 상황이 되게 안 좋아서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석방된 지 이제 일주일 밖에 안됐거든요. 상황을 듣는 중이고, 앞으로 1~2주 정도 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제 역할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 편집ㅣ손지은 기자

#박래군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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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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