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못마땅해도 대통령이 국민을 IS에 비유하다니..."

[청와대 일기 31] 위선자·테러단체 '극언' 쏟아진 국무회의, 아득해진 '국민대통합'

등록 2015.11.24 20:32수정 2015.12.1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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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경태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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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대결'을 택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11.14 민중총궐기대회를 '불법 폭력 사태'로 규정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을 파리에서 테러를 저지른 IS에 비유하며 '복면금지법'을 재추진해야 한다고 말했고, "테러 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란 엄포도 뒤따랐습니다.

집회 참가자들만 겨냥하지 않았습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시장 구조개혁·경제활성화 관련 법, 한중FTA 비준동의안 등에 대한 조속한 처리를 주문하면서 "맨날 립서비스만 하고,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야당을 향해 '위선자'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관련 기사 : "복면시위 못하게 해야... IS도 그렇게 한다" )

특히 이는 지난 10일 국무회의 발언의 연장선상이기도 합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모든 것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국회에서 모든 법안을 정체 상태로 두는 것은 그동안 말로만 민생을 부르짖은 것"이라며 "진실한 사람만 선택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습니다.

당연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집회에 참가했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중태에 빠진 농민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농민회·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농민회총연맹은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을 들으며 박정희의 긴급조치와 전두환의 계엄선포를 듣는 듯했다"라면서 "오늘 대통령 발언은 독재의 산성을 더욱 높이겠다는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IS세력을 대하듯 소탕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공권력에 의해 죽음에 문턱에 이른 농민에게 어떠한 언급도 없음으로써 최소한의 인륜도 갖추지 못한 발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야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은혜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향해 한 말인가 싶을 정도로 적대적"이라며 "아무리 못마땅하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국민을 IS에 비유하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라고 평했습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 역시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분노한 일부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을 불법과 폭력이라 매도하기 전에 폭력진압에 대해 유감을 표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국민들을 피아로 구분하고 적대시하며 진압의 대상으로 여기는 폭력적인 행태가 계속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불 붙은 여권의 공안몰이, '노동개혁 걸림돌' 민주노총 겨냥했나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 같은 경고를 귀담아 들을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박 대통령이 최근 불붙고 있는 여권의 '공안몰이'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앞서 새누리당은 IS의 파리 테러로 조성된 '테러공포'를 이용해, 민중총궐기대회를 '테러행위'로 매도했습니다. 아울러, 야당에서 국가정보원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이나 인권침해 논란을 받고 폐기된 '복면금지법'도 재추진하려 하는 중입니다. (관련 기사 : '시위 동영상' 본 김무성 "반정부·반국가 색채 분명"

박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도 정확히 이와 일치합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김현웅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시위 및 테러 대응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테러 문제는 국제공조나 정보 교환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법적 미비로 참여할 수 없다"라면서 테러방지법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배후세력 엄벌' 방침도 간단치 않은 사안입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조계사에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자주 거론하면서 민주노총을 사실상 정조준 했습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민주노총 위원장이 시위 현장에 나타나서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폭력집회를 주도했다", "2차 불법집회를 준비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 등의 발언을 보면, 박 대통령은 민주노총을 집회의 배후세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련 당국의 대응방식을 봐도 이번 집회의 책임을 민주노총에게 묻겠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1일 민주노총 본부를 비롯한 8개 단체의 사무실 12곳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민주국가임에도 집회 주최만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입니다. 게다가 경찰은 민주노총에서 압수한 물품을 곧장 언론에 이례적으로 공개했습니다. 압수물품과 집회의 연관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 일을 경찰이 한 것입니다. 결국, '민주노총=폭력시위단체'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조처로 읽힙니다.

이미 박 대통령은 '같은 작업'을 해본 적 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통합진보당은 내란음모죄로 해산됐습니다. 모두 여권에서 지목하는 '좌파 진영'입니다. 특히 박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과제로 내걸고 있는 '노동개혁'의 최대 난관 역시 민주노총입니다.

결국 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이 말하는 '반정부·반국가 세력', '불법폭력 시위단체'는 민주노총을 지목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 남은 용공좌파 세력 아니겠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념과 계층 넘어 모두 함께 가는 국민대통합의 길 가겠다"

어쩌면, 박 대통령 입장에서 이 같은 '공안몰이'와 '편가르기'는 현 정국을 돌파하는 데 유리할지 모릅니다. 자신의 지지층은 결집시키면서 상대 진영을 자신이 주도하는 이분법적인 틀 안에 가둬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대회를 놓고 과격시위냐, 과잉진압이냐 논란이 벌어지면서 비판 여론이 거셌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가려졌습니다. "시위대가 이석기 옛 통합진보당 의원 석방을 요구했다"는 여권의 주장은 노동시장 구조개혁 폐기·쌀값 폭락 대책 등 실제 집회에서 요구됐던 내용들을 '정치적 요구'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을 약속한 대통령입니다. 2012년 8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밝힌 수락연설을 다시 되돌려볼 때입니다.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대통합의 길을 가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라면 그 누구와도 힘을 모으겠습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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