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의 희망, 혁신학교

[주장] 혁신학교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등록 2015.12.03 11:42수정 2015.12.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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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인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에서 '공정무역'을 주제로 모둠활동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어느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제 학교는 지식 습득의 장으로서도 계몽의 공간으로서도 신분 상승의 도구로서도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곳으로서의 의미도 상실하였다." 학교란 무엇인가? 위의 네 가지 중 어떤 한 가지라도 잘하고 있는가? 21세기의 학교는 더 이상 지식습득이나 계몽의 공간이나 신분상승의 도구가 아니다. 남아있는 것은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공간이다. 혁신학교가 이 일을 하고 있다.

혁신학교의 의미

'성장의 공간'이며 '삶의 공간'인 곳이 혁신학교이다. 학생이 성장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혁신학교의 지향점이다.

교육은 관계 맺기이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사이, 교사와 동료 교사 사이에 '성장을 위해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만남'이라는 의미에서의 '교육적 만남'이 없어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적 만남은 회피되고 대신에 그 자리를 자기단속의 문화가 차지하고 있다.

교사가 학생과, 학생이 교사와, 교사가 동료교사와 가급적이면 부딪치지 않고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며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깨는 곳이 혁신학교이다. 교사와 학생 간, 교사와 교사 간 관계가 회복되는 곳이 혁신학교이다.

모든 교육의 출발은 교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어느 혁신학교 교장의 말은 의미가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생활하는 시간이 수업시간이죠. 국어시간, 미술시간, 수학시간, 체육시간에 '열정과 공헌력을 갖춘 미래시민 육성'이라는 교육목표에 맞추어 수업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요즘 교실은 붕괴되어 있다. 이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는 학업을 포기하거나 반항하는 학생들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들에 대한 해법만 찾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범생이'들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금의 교실 상황은 다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학생대로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그들대로 교실에서 입을 다물고 귀를 닫고 있다. 혁신학교는 어떠한가? 혁신학교의 변화가 교실로부터의 변화로 이어질 때 진정한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개의 행사나 협약으로 혁신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느슨한 조직의 문제점, '혁신학교'로 극복해야

학교의 조직적인 면을 살펴보자. 학교는 단단한 조직인가? 느슨한 조직인가? '느슨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면서 은유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어 매일 만나는 사람과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사람은 단단한 & 느슨한으로 비교된다. 문제를 해결할 때 한 가지 방법과 여러 가지 방법도 단단한 & 느슨한으로 비교된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는 분명 '느슨한' 조직이다.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표이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갈래이다. 교사들끼리도 얼핏 보면 단단한 것 같지만 교육의 본질로 들어가서는 서로의 가르침이나 학습에 관하여 대화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느슨한 조직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르치는 일이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일에 가깝다면 느슨한 조직이 오히려 교육활동의 성격에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 느슨한 조직의 경우 구성원 간에 혁신이 전파되기도 쉽지 않고, 어떤 조직 구성원에게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이 그냥 국지적인 문제로 남아 있으면서 유지되기 쉽다.

예컨대 옆 반 교사가 좋은 교육방법을 익혔다고 해서 그것이 이웃 반 교사들에게 전파되지 않으며, 어떤 교사가 교육자로서의 품성이 바르지 않고 전문성 역시 부족한 경우에도 그 문제는 그냥 그 교실만의 문제로 계속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혁신학교 교사들은 뭉쳐서 공부하고 함께 수업을 디자인하고 함께 가르친다. 어느 반에 함묵증을 가진 아이가 있으면 모든 교사가 그 아이를 알고 있으며,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지도하려고 노력한다. 문제 있는 교실은 일부러 수업을 열고 왜 문제인지를 함께 고민하여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한다.

교직의 탈전문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는 교사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수업준비를 방해하며 단순한 문제풀이식 수업을 강요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EBS 교재와의 연계정책은 교사의 탈전문화를 재촉하는 나쁜 정책이다. EBS 문제집을 달달 풀거나 아예 수업시간에 EBS 방송을 틀어주기도 한다. 그 속에 교사의 전문성은 없다.

또한 넘쳐나는 교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도 교사의 탈전문화를 부추긴다. 교사들이 수업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많이 의존할수록 교사로서의 그의 생명은 단축된다. 이른바 '클릭질' 교사이다. 이런 점에서 혁신학교의 최고 방점을 수업개선에 두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 교사들은 '잘 가르쳤을 때 오는 심리적 만족감'에 울고 웃는다. 전문직으로서 교사의 성장 발판이 바로 혁신학교인 것이다.

교사가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해묵은 주제를 하나 이야기해 보자. 교사는 개혁의 주체인가 대상인가? 개혁의 주체인 교사들은 학교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다. 기존의 관행을 깨는 '틀깸' 티처로 살아간다. 수업 연구회를 통하여 공부하는 교사가 되고자 노력한다. 교사운동을 통해 새로운 교육을 추구한다.

그러나 개혁의 대상인 교사들은 어떠할까? 행정업무에 파묻혀 산다. 기존의 관행을 답습하는 '틀속' 티처로 살아간다. 하루하루 때움수업으로 연명한다. 자신의 취미생활엔 적극적인 웰빙교사일 뿐이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 교사가 깨어나 하루하루 혁신으로 나아갈 때 그는 개혁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혁신학교에서의 교장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좋은 학교에는 좋은 교장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만큼 교장의 강하면서도 민주적인 리더십은 혁신학교의 성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가지는 오해는 교장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면이 없지 않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합심하여 이룩한 혁신학교가 마치 교장의 탁월한 리더십으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포장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장의 민주적인 리더십은 혁신학교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혁신학교 #학교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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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의 저자 김재훈입니다. 선생님 노릇하기 녹록하지 않은 요즘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메세지를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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