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거대한 폭력과 민중의 비폭력저항

비폭력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

등록 2015.12.05 15:18수정 2015.12.0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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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개인이나 단체가 저지르는 물리적 (직접적) 폭력과 국가의 법이나 사회제도 등이 자행하는 구조적 (간접적) 폭력이다.

정부나 지배세력은 그들의 권력이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거대한 구조적 폭력을 행사한다. 민중 또는 피지배층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한다. 독재정치 또는 '위로부터의 폭력'이 민중의 저항 또는 '아래로부터의 폭력'을 부르는 것이다.

지배세력의 구조적 폭력은 크고 체계적이지만 정적이고 지속적이라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심각한 폭력성을 내포해도 통치행위로 정당하다고 묵인되거나 사회구조에 내재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기 쉽다. 피지배층의 물리적 폭력은 작고 국지적이지만 동적이고 일시적이어서 쉽게 눈에 띈다. 약자의 저항수단이지만 불법행위로 간주되거나 비도덕적이라고 비난받기 쉽다.

폭압적 정부를 떠받치는 세력

거대한 구조적 폭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는 독재정권이라도 지지하거나 묵종하는 세력이 있기에 유지될 수 있다. 크게 네 부류다. 첫째, 권력이나 이권을 얻기 위해 정부에 직접 참여하거나 지배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다. 해바라기 정치인, 영혼 없는 관리, 권력과 결탁하는 기업인, 지식을 팔아먹는 '어용' 학자와 언론인 등이다.

둘째, 지배세력과의 인연이나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지하는 세력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혈연, 학연, 지연에 따라 이런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 예를 들어, 학살자로 비난받는 전두환조차 그의 모교 동창들에겐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그의 고향엔 기념공원이 들어서지 않았는가.

셋째, 정부의 부정이나 불의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해서 습관적으로 따르는 세력이다. 예로부터 왕이나 통치자를 묵종하거나 추종하는 게 전통이나 관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넷째, 지배세력의 독선과 횡포 같은 폭력을 인식하더라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못하는 세력이다. 용기와 소신이 부족해서 굴종하는 사람들이다.

폭력 시위의 배경

북유럽처럼 민주적이고 개방된 사회에서는 시위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여론 수렴이 잘 되기 때문이다. 시위가 일어나더라도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폭력시위로 이어지지 않는다.

북한처럼 독재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시위가 일어나기 어렵다. 시민사회가 잘 발달되지 않았고 정보가 통제된 가운데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위가 일어나더라도 폭력시위로 연결되기 힘들다. 정권의 처벌이 너무 혹독하기 때문이다.

남한처럼 별로 민주적이지도 않고 철저하게 폐쇄적이지도 않은 어중간한 사회에서는 시위가 잘 일어나고 폭력 시위로 연결되기 쉽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아 여론이 무시되어 대규모 시위가 많이 일어나고, 정권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이른바 '원천 봉쇄'하거나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때문에 폭력시위로 번지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평화적 시위나 비폭력저항조차 막기 위해 정권이 폭력시위를 유도하기도 한다. 폭력시위를 겉으로는 비난하면서 속으로는 반기는 것이다.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할 수 있는 명분을 얻기 위해서다.

무저항주의와 비폭력저항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악에 대한 무저항'을 주장했다. 여기서 '무저항'이란 말은 '무조건 저항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악에 대해 '악으로' 저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는 이를 발전시켜 '비폭력저항' 운동을 전개했다. 강력한 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되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악에 맞서 '비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무능이나 비겁이라고 비판하며, 불의와 부정에 비폭력저항을 못하겠으면 폭력을 써서라도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상대방의 육체를 찌르는 폭력적 저항보다 상대방의 양심을 찌르는 비폭력저항이 훌륭하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시민의 '불복종'과 '비협력'도 강조했다. 양심을 따르기 위해 현실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고, 바람직한 질서를 세우기 위해 현실의 권력에 협력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킹 목사는 흑인들이 인종분리 버스를 타지 않는 비폭력저항 운동을 이끌었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한 흑인여성이 백인남성에게 자리를 내주라는 요구를 거부한 죄로 경찰에 체포되고 벌금형을 받는 사건이 터지자, 이에 맞서 버스 타기를 거부하는 비폭력저항 운동을 전개해 궁극적으로 흑인을 차별하는 법이 폐지되도록 했던 것이다. 1955년 12월이었으니 꼭 60년 전 킹 목사를 역사적 민권운동가로 만든 사건이었다.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에 맞섰던 함석헌이 간디의 사상과 투쟁방법에 영향 받아 '비폭력혁명'을 주창했다. 폭력으로 악을 제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오기 때문에 우리가 나아갈 길은 '비폭력혁명'이란 '오직 한 길' 밖에 없다고 했다.

독재정권과 비폭력혁명

군대와 경찰을 이용하는 독재정권의 거대한 폭력을 민중의 조그만 폭력으로 물리치기는 어렵다. 돌이나 쇠막대 또는 화염병 등으로 '차벽'을 뚫고 물대포와 최루탄 또는 총칼을 이길 수 있겠는가. 물론 평화적으로 시위하겠다는데도 '차벽'으로 '원천봉쇄'하는 정권의 불법에 좌절과 분노를 억누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비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용기다.

폭력투쟁은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민중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권에 폭력진압의 빌미를 준다. 독재정권이 폭력투쟁을 선호하거나 유도하는 배경이다. 또한 폭력투쟁이 일시적으로 성공하더라도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폭력투쟁보다 비폭력저항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비폭력저항의 본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도덕성과 종교정신을 바탕으로 지배세력을 폭력으로 패배시키는 대신 정신력과 포용력으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상대의 육체에 고통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상대의 양심을 찌르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위를 막는 경찰에게 돌멩이나 화영병 대신 꽃이나 캔디를 건넴으로써 그들조차 사악한 정권을 등지고 민중의 편에 서도록 감동을 주는 것이랄까.

둘째, 정치사회적으로 권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떠받치거나 추종하지 않는다. 건축물의 벽이나 지붕을 파괴하지 않고 기둥만 제거하면 아무리 견고한 건축물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듯이, 통치체제나 지배세력에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민중이 지지하거나 추종하지 않으면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 다수의 민중이 가만있거나 굴종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으며 나아가 반대하고 저항하면 아무리 폭압적인 정권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1960년 이승만의 하야를 불러온 4월혁명, 1979년 박정희의 죽음과 유신체제의 붕괴로 이어진 부산과 마산의 시민항쟁, 1987년 전두환과 노태우의 후퇴를 이끌어낸 6월항쟁 모두 폭력투쟁이 아니라 비폭력저항이었다. 부정선거, 종북몰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독재와 횡포, 억지와 오만 등 거대하고 지속적인 구조적 폭력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11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함석헌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요약한 것으로, 이 요약문의 일부는 2015년 12월 3일 <한겨레>에 실렸습니다.
#비폭력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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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평화통일 문제,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한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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