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도 아닌데, 월급쟁이는 하지 말라니

[서평] 아비가 아들에게... 삶에서 건져 올린 통찰들 <한 번뿐인 삶 YOLO>

등록 2015.12.10 14:42수정 2015.12.1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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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다.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의 답을 찾으며 군에 간 아들과 나눈 편지 형식의 글이다. 행간마다 아비가 삶에서 건져 올린 날것의 통찰들이 반짝인다. ⓒ 지리산 닷컴


노안이 오기 시작했는지 요즘 책을 읽는 게 힘들다. 쉽게 잡지도 못하고 잡은 책을 끝까지 독파하지도 못한다. 한때는 밤 늦게까지 책을 읽는 일이 삶의 즐거움이던 시절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완독했다. 곳곳에 연필로 줄까지 그으며 읽었다. 권산이 지은 '한번뿐인 삶 YOLO'(아래 YOLO)라는 책이다. 나는 왜 그의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까.

서울을 떠나 구례로 내려간 웹디자이너


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다.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의 답을 찾으며 군에 간 아들과 나눈 편지 형식의 글이다. 더러 아들의 답장도 몇 편 눈에 띄지만 주로 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가족으로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엮어 나가는 이야기속에 부성애가 절절하다. 행간마다 아비가 삶에서 건져 올린 날 것의 통찰들이 반짝인다.

그는 미대를 졸업한 웹디자이너로 구례에서 살고 있다. 웹디자인과 시골생활이라. 이 생뚱맞은 조합은 뭘 의미하는 걸까? 맞다. 그는 별난 사람이다. 그는 행복하게 살기위해 서울을 떠나 구례로 왔다. 그게 벌써 10년이다. 그는 지금 시골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나는 그의 가족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들이 서울을 떠나기 전 연신내 시절부터 그의 블로그를 드나들었다. 그의 블로그는 구례 시절에도 이어졌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으며 나는 그의 생각에 매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에서 많은 공감을 느꼈다. 공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다. 시공을 초월해 관계를 만들어주는 강력한 유틸리티다. 

블로그를 읽다보면 올린 글의 단편들에 갈증이 나는 때가 있었다. 그 사람이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 책 YOLO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답이 된다. 블로그의 조각들이 풀 스토리로 이어진다. 블로그에서 조금씩 읽었던 맛보기들이 본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블로그에서도 가족 이야기는 많았다. 그의 표현을 빌면 '식구' 이야기다. 한솥밥을 먹는 무리. 책에서도 육친에 대한 정은 두드러진다. 아들과 아비의 이야기. 그래서 그의 글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사는 동안 잊혀진 감각들을 일깨운다.


'"사랑한다." 어느 순간 영후는 이 한마디를 내뱉고 작정한 듯 휙 뒤돌아서 달려 나갔다. 영후로부터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려서, 또는 자라서 별 영혼없이 의무로 내뱉는 표현이 아니라 마음 속 뼈 같은 단단하고 군더더기 없는 언어가 나를 향해 날아왔을 때 내 모든 감각은 일순간에 멈추었다. 몇 초 동안 호흡조차 멈추고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만 쫓았다.' (16P / 나는 다를 줄 알았다)

품 안의 자식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입대 이산가족 장면이다. 그의 글은 묘사가 디테일하다. 아이를 연병장에 내려놓고 돌아오는 아비의 마음을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적는다. 그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일거수 일투족이 행간마다 묻어난다. 신병 입소식에서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영후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연병장 건너편 머리짧은 젊은이들 무리에 섞여 사라지는 아들을 소리쳐 불렀던 그는 좋은 아버지다.

누구나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게 생물학적 아비들의 소망일 것이다. 평소 아이에게 그리 좋은 아버지이지 못했던 한 남자는 가슴을 찌르는 구절들에 아프게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그리고 반성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다정다감하고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거지?

'그날의 나들이가 생각난다. 정동 성공회당을 거쳐 시립미술관 정원을 거닐다가 정동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는 그때 새로운 가족을 구성한 첫 해였고 모두 조금씩 힘들었다. 그때 그 시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우리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서로 친해지거나 익숙해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32p / 해피밀 세트와 <쥬라기 공원>)

가족사가 드러난다. 가슴 속에 감춰두었던 통증의 조각들도 함께 묻어난다. 아비가 아이의 교육을 담당했던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이라서 일까. 아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다. 어미없는 새끼를 보는 눈에 아비로서 어떤 죄책감이 덧입혀 졌을 것이다.

'무심결에 책장을 넘기다가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들에 대해 한마디씩 해주셨던 선생님의 글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던 대목이 있다. 영후에 대한 표현이었는데... 뭐랄까, 어떤 진정성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 새끼라 그런지 다른 아이들에 대한 한마디보다 더 길게 마음을 담아 쓴 것 같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3P / 첫 담임선생님 아빠, 그리고 너)

'너 없이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온 아빠와 엄마 2호기는 어떠했을까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마다 울었을 것 같겠지만 사실 정반대였다. 아주 편하더라. 챙길 놈이 없잖아. 반찬걱정 할 일도 없고 더 이상 좋아하지도 않는 닭도리탕을 먹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할 의무조항도 없고 어디건 가고 싶으면 움직일 수 있고 세상에 그런 해방이 없더라. 그러니까 부모 없는 날 혼자 컴퓨터를 차지한 채 신발장 위에 치킨 한 마리 값 올려둔 초등학교 3학년 기분을 상상하면 된다.' (64p / 사춘기, 잔소리, 제프 벡)

월급쟁이는 가급적 하지 말라는 아버지

그는 까놓고 말한다. 그의 글 속에는 그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또렷하게 박혀있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본인이 거침없이 쏟아 내는 것들을 듣고 있자면 익숙치 않은 사람은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생각대로 살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삶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를 기만하지 않는다.

'아빠가 나이만 먹었지 철이 들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철이 들면 어떻게 되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 그 불안감을 에너지로, 늦었지만 말년을 위한 냉장고를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불안하기 위해서 철이 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무슨 그런 좆같은 말이 있단 말인가. 미래의 미래, 그러니까 나의 미래와 내 아들의 미래와 내 아들의 아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재를 저장하고 상속하란 말인가. 그래서 재산과 함께 불안도 상속하란 말인가. 아들아 미래는 불안하니 너 또한 뺑이쳐라? 우리 조상들은 정말 현명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이런 말을 남겼지. "걱정도 팔자다"' (158p / 하이에나는 냉장고가 없다)

YOLO는 남보다 몇 년 일찍 일손을 내려놓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공감 깊은 구절이 많다. 월급쟁이 하지 말라는 것. 결국 직장을 그만 두라는 것... 놀랄 일 아니다. 그는 평생을 직장없이 살았다.

그 사실 하나로도 금수저가 아닌 이 땅의 쉰 세살 남자가 겪었을 고단한 삶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젊을 적 월급쟁이 생활도 잠깐 있긴 했다. 그때 그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일은 회식이었다. 미련없이 직장을 나왔다. 그는 태생적 자유주의자였다.

'영후야. 가급이면 월급쟁이는 하지 마라. 그러면 어떻게 먹고살란 소린가? 묘책은 없다. 무책임한 소리는 아니다. 만인을 위한 묘책이 있다면 세상이 이따위로 굴러가겠냐? 나 역시 여전히 그 방법을 찾고 있다. 그 과정 중에 밥 먹고 살다보니 쉰이 넘었다. 약간 배고파도 버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다. 좀 비겁한 조언인지도 모르겠지만.... 빚 없으면 살아가는 일 자체에 온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불안정성은 존재가 중심을 유지하려는 긴장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158p / 봉급, 월급, 연봉, 어떻게 먹고살래?)

아버지가 없는 시대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가족이 해체된 시대다. 지난 몇 년 사이 이 땅에서 한두 사람이 사는 가구가 절반을 넘어섰다고 하니까. 그의 글에서 정정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YOLO는 아버지가 일상을 통해 녹여내는 아들을 위한 절절한 조언이다.

'잉여가 굶어죽는 사람들을 살리는 데 소용되지 않고 내가 더 잘 사는 놈이라는 걸 드러내는 데에 사용되는 세상 시스템이 아빠는 불쾌하다. 전체 인류가 백이라는 재화로 살아갈 수 있는데 5백이라는 재화를 소비하는 것은 인간 포유류를 제외한 생명들에 대한 명백한 폭력이다. 시장은 필요 이상의 소유와 소비를 부추긴다. 멈추면 붕괴하니 그럴 수밖에.' (255p / 쇼핑은 즐거우니까)

권산의 글은 유쾌하다. 이야기마다 유머가 스며있다. 특유의 입담으로 주제의 무거움을 가볍게 풀어낸다. 굴곡이 많는 가족사도 그의 입을 통하면 명랑소설처럼 펼쳐진다. '짝짓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라는 챕터를 발견하고 결혼을 두 번씩이나 해봤으니 뭔가 쓸 만한 결혼지침같은 것들이 들어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내 원 참.

'쉰을 넘게 살았지만 나는 정말 여자를 모르겠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러나 안다고 실천이 쉽겠냐....' (145p / 짝짓기에 대한 거의 모든 것)

군대는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남자들이 삶을 재편성하는 시기다. 학교를 마치고 세상에 나서기 전 치르는 워밍업 기간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이 가장 많은 때다. 입영하는 아들 손에 한권 들려 보내시라. 세상 보는 눈을 열어주는 좋은 인생 참고서가 될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들은 입영 통지서를 받아들 것이고 그 아비들은 그날이 다가올수록 저녁 담배연기를 멀리 날려 보낼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만,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조금 일찍 찾아냈을 뿐이다. 나는 어쩌면 이 편지들을 통해서 영후가 살면서 하나씩 발견했으면 하는 빛나는 것들의 지도를 그려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막 세상에 나서려는 아이에게 차근 차근. 할수 있는 한 솔직하게' (285p / 보물지도는 없다.)

사실 리뷰같은 거 쓰지 않으려 했다. 책을 펴서 몇 페이지 읽는 순간 감이 왔으니까. 이런 책이 팔리지 않는 사회라면 이미 틀린 것이다. 어차피 망할 거라면 길게 끌 것 없다. 정조 이후 조선이 망하지 않아서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쳐왔나.

아쉬운 점 한 가지. 아담하고 이쁜 제본이긴 한데 작은 판형에 작은 글씨는 '노안 개시자'에게 상당히 불편했다. 이런 실리적인 삶의 지침을 그런 장식적인 그릇에 담다니... 책 이쁘네 하고 집어들게 하는 게 독자의 눈을 배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가?

물론 책에 한번 빠지면 그런 불편 별로 느끼지 못한다. 중간 중간 불편을 느낀다 하더라도 내용이 압도하고 만다. 다 읽고 나서 이제 쓴다. 판형을 늘릴 수 없다면 페이지를 늘려서라도 글씨를 키우라. 상추쌈출판사는 참고하시라.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내 블로그 다누시마루 통신에도 실렸습니다

한 번뿐인 삶 Yolo - 아들에게 보내는 아드레날린 인생 백서

권산.권영후 지음, 권영후 그림,
상추쌈, 2015


#한 번뿐인 삶 YOLO #YOLO #권산 #한 번뿐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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