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에는 왜 천주교 신자가 많을까?

[오래된 마을 옛담을 찾아 25] 신안 흑산도 사리마을 옛담(1)

등록 2015.12.15 16:25수정 2015.12.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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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9m바람, 파고 2.5m. 바로 전 배는 결항됐다. 파고 3.5m까지만 배가 뜬다니 2.5m는 보통 높은 파고가 아니다. 3.5m정도는 숙련된 섬사람들만 다닐 수 있고 섬사람들조차 이런 날에는 안 움직인단다. 흑산도에서 처음 만난 '얼굴 검은' 섬사나이가 나에게 대견하다며 위로 아닌 위로 말을 건넸다.

흑산도 가는 길


흑산도 심리(지푸미) 바다 흑산도는 검은 섬. 상록수림이 우거져 검게 보인다는 건데 그보다는 보는 사람 마음에 달렸는지 모른다 ⓒ 김정봉


도초도 여객터미널에 흑산도행 쾌속선을 타려는 사람들이 나와 아내 빼고 한두 사람밖에 없었다. 터미널매표소에서 일하는 인상 좋은 도초도 아주머니는 집에서 따왔다며 검정비닐에서 단감을 주섬주섬 꺼내 권한다. 그러면서 혹시 멀미약 먹었냐며 이런 날씨에 흑산도에 갔다 고생한 얘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배 떠나기 5분 전에 들은 얘기라 어찌할 수도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했다. 그냥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배 떠난 지 20분. 이때까지는 정신 차리고 배 리듬에 맞춰 내 몸도 움직여가며 겨우 겨우 참아냈으나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배는 출렁, 내 배는 울렁거렸다. 배는 위에서 떨어지고 옆으로 휘어졌다. 반대쪽 창문은 바다가 창을 덮어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다산(茶山)이 말한 대로 이빨이 산과 같은 고래가 배를 삼켰다 뱉었다 하는 듯하였다.

이제 다 왔으니 참으라는 '멀미약 먹은' 아주머니 말이 야속하게 들렸다. 섬에 가까울수록 파고는 잔잔해진다고 위로하는 승무원 말은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내 배는 내 몸이 아니었다. 뒤에 앉은 아주머니는 '오, 주여'라 외치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든 것을 개워버렸다. 이게 신의 뜻인지 모르겠다. 한두 차례 개워내니 속이 편해지고 참을 만 해졌으니 말이다.

검은 섬, 흑산도

바다도, 하늘도, 산도 온통 검게 보인다는 흑산도. 상록수림이 많아 그렇게 보였다는 건데, 그보다는 보는 이의 마음에 달려있지는 않은지. 샛노랗게 질린 내 몸으로 보는 흑산도는 여지없이 검은 섬이요,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이미자의 흑산도아가씨에게 흑산은 검은 섬이다.


나주 율정점에서 동생 다산과 헤어져, 살아서 밟지 못할 육지를 떠나는 정약전에게 흑산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자신의 가슴 마냥 '숯검댕이' 섬으로 보였을 게다. 흑산 대신 자산(玆山)이라 불러본들 흑산이 백산될까마는 집안사람들에게 흑산이라 말하기 싫어한 약전이다.

상라산 고개에서 본 흑산 바다 흑산은 깊다. 논밭은 고사하고 흔한 갯벌도 없다. 흑산 삶은 밭 대신 바다에 의존해 살아야하는 바다인생이다 ⓒ 김정봉


한 뙈기 논밭도 귀한 흑산도, 개펄은커녕 갯벌도 없다. 섬사람들에게 바다는 그냥 바다다. 논밭 대신 바다다. 먼 바다에 아들, 남편 내보내고 애태우는 섬사람들에게 흑산도는 검은 섬이다.

신의 마을, 흑산도 진리

진리마을 정경 흑산면 면소재지로 흑산의 중심지다. 시대를 달리하며 여러 종교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했다. 사진 오른쪽 흰 건물 뒤가 당산이다 ⓒ 김정봉


마음 졸이고 가슴 태우는 흑산 섬사람들에게 신앙은 삶이요, 일상이다. 토속신앙에서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까지 흑산도의 길목, 진리(鎭里)에 자연스레 뿌리내렸다. 진리 언덕에 흑산성당이 있고 진리 당산(堂山)에 진리당이 있으며 읍동마을 근처에 무심사터가 전한다. 교회도 한자리 차지하여 흑산성당 옆에 진리성결교회가 자리 잡았다.

흑산진리성결교회 흑산성당 옆에서 진리 앞바다를 바라다보며 서있다 ⓒ 김정봉


섬 마을에 교회는 유독 많다. 흑산도에 15개가 있고 흑산도 주변 섬까지 합하면 30개가 넘는다. 도초도에 11개, 비금도에는 23개나 있다. 마을마다 하나 이상 있는 셈. 당집이 사라진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집이 스러지면서 교회가 들어섰다.   

흑산성당 아래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하얀 예수상이 눈길을 잡는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예수상을 닮았다. 1958년에 설립된 흑산성당 건립 50주년을 기념하여 브라질 예수상을 본떠 만든 것이라 들었다. 흑산도를 오가는 길손에 따스한 손길을 보내고 있다.

흑산성당 예수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도산 정상에 있는 예수상 닮았다. 양팔 벌려 먼 바다 오가는 뱃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 김정봉


흑산에는 천주교인이 많다. 성당만 해도 흑산성당을 비롯하여 공소만 6개나 된다. 2013년 기준, 신자비율은 23.9%. 4587명 주민 가운데 신자수가 1097명이다. 2005년에는 훨씬 높았다. 주민 3204명, 신도수 1165명으로 36.4%였다.

2005년 대비 신도비율이 13%p 떨어진 이유는 2006년에 흑산면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운임지원책이 실시되어 전입인구가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실질 신자비율은 30%를 웃돈다(연도별 주민, 신도수는 천주교광주대교구 자료 참조).

흑산성당 흑산천주교본당으로 1958년에 건립되었다 ⓒ 김정봉


사리공소 정약전이 유배된 사리마을에 1957년에 지어진 공소(公所)다. 공소라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다 ⓒ 김정봉


천주교인이 많은 데는 정약전의 영향이 컸다. 비록 유배당시에는 배교자였지만 정약전의 유배로 천주교 터전이 마련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토양 위에 1951년 천주교가 흑산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가톨릭구제회(C.R.S)의 도움으로 집집마다 옥수수와 밀가루, 우유가 배급되고 60년대 들어서 중학교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이 실시되었다. 신앙은 곧 섬사람들의 일상이요, 삶이었다. 신앙과 일상, 삶이 하나로 연결되는 독특한 신앙문화가 형성되면서 천주교가 흑산에 깊고 폭 넓게 뿌리내리게 되었다.  
 
섬사람들 마음에서 멀어져가고 있지만 토속신앙은 흑산 역사와 함께했다. 마을 언덕배미 당산(堂山)에는 당신(堂神)을 모신 당집, 진리당(鎭里堂)과 용신당(龍神堂)이 있다. 흑산도 15개, 흑산면 22개 당집의 본당 격이다. 솔숲, 노송아래에 있는 것이 상당(上堂), 진리당이고 솔숲 안쪽,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것이 하당(下堂), 용신당이다.

진리당산, 진리당 당신(堂神)을 모신 진리마을 상당(上堂) 당집이다. 상당의 주신으로 당각시를 모신다 ⓒ 김정봉


용신당 진리당에서 150m떨어져 있다. 진리당의 하당(下堂)으로 총각화장이 좌정되어있다. ⓒ 김정봉


어둑한 저녁 무렵, 당각시와 총각화장(火匠, 배에서 밥 짓는 사람), 두 개의 당산신화가 더해져 용신당 가는 숲길은 음산하다. 먼 바다에 나간 남편이 풍랑 통에 죽자 산꼭대기 노송에 목맸다는 당각시 원혼과 옹기 팔러 진리에 왔다가 당각시의 사랑을 받은 나머지 떠나지 못하고 노송에 올라 솔피리만 애달피 불다 떨어져 죽었다는 총각화장의 원혼이 떠도는 듯하다.

총각원혼의 솔피리 소리가 구슬피 들리는 듯하고 용신당 아랫녘 숲속에서 자생하는 초령목(招靈木)은 영을 부르는 듯 부르르 떨어 스산하다. 노약자나 여성들은 일몰 후, 일출 전까지 혼자서 당산 숲을 다니지 말라는 주의문구는 나에게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정월 초 마을사람들이 당각시와 총각화장, 두 원혼의 신체(神體)를 진리당과 용신당에 모셔놓고 혼을 달래며 당제를 지낸다니 괜찮을 거야. 속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흑산의 중심, 진리에 당집과 성당, 교회가 있는데 절이 빠진다면 서운한 일이다. 흑산도에서 제일 오래된 진리 읍동마을 남쪽, 상라산 올라가는 길목에 무심사터가 있다. 오래된 팽나무 한그루와 삼층석탑, 석등만 전하나 최근 발굴작업으로 사세(寺勢)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4동의 건물지가 확인되고 건물 규모 또한 상당하여 예사롭지 않았던 모양.

무심사터 흑산 최고의 마을, 읍동마을 근처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로 삼층석탑과 석등만 남아있다. ⓒ 김정봉


흑산도는 통일신라에서 고려까지 한·중·일을 잇는 국제교역 기항지였다. 단순히 긴 뱃길에 한번 쉬어가는 징검다리 섬이 아니었다. 무심사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뱃사람들의 무사귀환과 안전 운항을 빌고 먼 바다에 나가는 두려움을 떨치는 안식처였다.

진리 앞바다를 보고 서있는 당집과 절, 성당, 교회는 먼 바다를 오가는 뱃사람들에게 소중한 존재들이다. 섬사람들에게 믿음은 종교를 넘어 그들의 삶이요, 일상이다. 크든 작든 시대를 달리하며 검게 탄 흑산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다독여 왔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흑산도 #흑산성당 #진리당 #무심사터 #사리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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