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기쁨'을 살포시 사진으로 담다

[사진노래 삶노래] 진흙탕 놀이는 신나

등록 2015.12.12 16:45수정 2015.12.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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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태어나는 자리는 언제나 삶하고 사랑이 태어나는 자리라고 느낍니다. 사진이 태어나는 자리는? 사진도 삶하고 사랑이 태어나는 자리에서 태어날 테지요. ⓒ 최종규





그림노래

그림마다 노래가 깃듭니다. 그림은 그림인데 어떻게 노래가 깃들까요? 그림을 그리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웃으면 그림에 웃음이 깃들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낯을 찌푸리면 찌푸린 기운이 깃들고, 그림을 그리면서 짜증을 부리면 짜증이 깃들지요. 밥을 지으면서 '아이고, 지겨워!'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지겨운' 기운이 밥에 깃들기 마련입니다. 수수한 밥차림이어도 '아아, 기뻐라!' 하는 마음이라면 수수한 밥 한 그릇이 대단히 맛납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이 스스로 노래하며 그리는 그림은 '그림노래'입니다. 어른들이 스스로 노래하며 찍는 사진이라면? 네, '사진노래'이지요.

아이는 제 아버지 고무신을 발에 꿰고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러 꽃 앞에 앉습니다. 스스로 꽃이 되어 꽃을 그림으로 그리고, 나는 이런 그림순이 꽃순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 최종규


호박꽃하고 한마음

그림을 그릴 적에는 내가 그림으로 담으려고 하는 '것'을 '것'으로만 바로보아서는 그림으로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마주하는 '넋'이나 '숨결'로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어야지 싶어요. 돌멩이를 그리든 새를 그리든 나무를 그리든 모두 같아요. 아름다운 넋이자 숨결인 이웃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호박꽃을 그리는 아이는 호박꽃을 곱게 바라보면서 즐겁게 마주하지요. 이런 그림순이를 사진을 찍는 내 마음은 그림순이를 '사랑스러운 아이'요 '아름다운 손길'이라고 여깁니다. 그냥 찍는 사진이 아니라, 마음으로 노래하며 웃는 사진입니다.

종이가 모자라다면서 책상에까지 그림을 그리되, 책상에는 종이하고 빛깔이 다른 나무를 그려 넣습니다. 이러고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이 터져서 사진을 찍습니다. ⓒ 최종규


종이가 모자란 그림


그림은 종이에도 그립니다. 그림은 종이에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림이 맨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그림은 따로 종이가 아닌 모든 곳에 그렸습니다. 하늘에 대고 그림을 그렸고, 냇물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흙바닥이나 모랫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렸어요. 사람이 지구별에서 살아온 발자국을 거슬러 올라가면 '종이를 빚어서 쓴 햇수'는 몹시 짧습니다. 아스라한 옛날에는 바위나 동굴에도 그림을 그렸지요. 오늘날까지 남은 오래된 그림은 적지만, 사람들 가슴속에 아로새긴 그림은 무척 많아요. 사진은 필름이나 디지털파일로 찍는다지만, 먼저 가슴속에 찍어야 사진이 태어납니다. 그림순이가 '종이가 모자라'다며 책상에까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먼저 가슴속에, 이런 뒤에 사진기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아이들 손끝에서 피어난 사랑으로 새롭게 나온 인형 옷. 아이는 이 인형 옷을 바느질로 꿰려고 꽤 오랫동안 마루에서 꼼짝을 않으면서 온마음을 쏟았습니다. ⓒ 최종규


아톰 인형 옷 지었어

천을 작게 잘라서 아톰 인형 몸에 맞추어 찬찬히 한 땀씩 기웁니다. 놀이순이는 인형한테 옷을 입히고 싶어서 바느질을 하고, 옷을 새로 얻은 인형은 놀이순이 손에서 한결 예쁩니다. 놀고 싶으니 놀고, 재미있게 놀고 싶으니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우리 어른도 즐겁게 일하고 싶으면 즐겁게 일할 수 있고, 노래하며 일하고 싶다면 참말 노래하며 일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사진 한 장을 찍는 마음은 바로 이 같은 즐거움이 흐르는 따사로운 숨결일 때에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를 엮을 만하리라 봅니다. 손놀림이나 손재주가 아닌, 따사로운 손길로 짓는 새로운 이야기인 사진 한 장입니다.

두 아이가 퍽 어릴 적에는 대문놀이를 지켜보기만 하다가, 이제는 두 아이 모두 몸무게가 많이 불어서 제발 대문놀이는 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그래도 두 아이는 슬금슬금 대문놀이를 즐깁니다. 재미있으니 즐기겠지요. ⓒ 최종규


놀이그네가 되는 대문

우리 집이 갓 지은 새집이라면 두 아이가 대문놀이를 할 적에 그냥 재미있게 바라볼 만할까요? 우리 집이 오래된 집이기에 두 아이가 대문틀을 밟고서 그네놀이를 할 적에 "얘들아, 이 대문이 힘들어 하는데?" 하면서 말릴 수밖에 없을까요? 두 아이가 대문틀을 그네로 삼아서 노느라 대문틀이 살짝 주저앉습니다. 무너지지는 않고 살그마니 주저앉기만 했는데, 이 놀이를 말리기도 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집이나 마을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나뭇가지에 줄을 매달아 그네를 이을 수 있어야겠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대문그네보다는 나무그네가 훨씬 재미나면서 온갖 이야기도 새록새록 길어올릴 테니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찍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늘 한 마디로 이야기합니다. 기쁨. 오로지 기쁨을 찍는데, 기쁨을 사랑으로 찍기도 하고, 기쁨을 눈물로 찍기도 하며, 기쁨을 노래로 찍기도 합니다. ⓒ 최종규


노는 기쁨

아이들한테서 노는 기쁨을 빼앗는다면,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서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기쁨을 빼앗는다면, 아이는 아이다운 숨결로 크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서 먹거나 자는 기쁨을 빼앗는다면, 또 아이들한테서 사랑받는 기쁨을 빼앗는다면, 아이는 아이다운 몸짓으로 꿈을 키우려는 마음을 잃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놀도록 해야 할까요? 그냥 놀도록 하면 됩니다. 아이가 어떻게 웃거나 노래하거나 춤추도록 해야 할까요? 그냥 스스로 신나게 웃고 노래하며 춤추도록 하면 됩니다. 무엇을 더 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곁에서 따사로이 보살피고 넉넉하게 돌보며 '어버이로서 기쁜 마음'이면 됩니다. 노는 기쁨을 누리는 아이는 모두 '해를 닮은 웃음'을 지으니, 아이를 사진으로 찍자면 마음껏 뛰놀도록 풀어 놓으면 됩니다.

책방마실을 하러 가도 장난감을 챙겨서 장난감으로 노는 아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스스로 바라보아야 할 것과 곳이 무엇인가를 넌지시 가르쳐 준다고도 느낍니다. 그저 이쁘기에 그저 이쁜 결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 최종규


책방마실을 하지만

책방마실을 하더라도 책놀이를 하지 않고 '장난감 비행기 놀이'를 하는 우리 집 작은아이입니다. 시골집에서 갖고 놀던 '조각맞추기 장난감'을 한손에 들고 먼먼 나들이를 나오는 작은아이입니다. 시외버스에서도, 전철에서도, 또 책방에서도 이 장난감 비행기를 손에서 떼지 않고 내내 갖고 노는 작은아이입니다. 너도 참 대단하네 하고 노래하며 바라봅니다. 그러나, 이 아이 모습은 바로 내 어릴 적 모습입니다. 나도 이 아이만 하던 때에는 '책'이 아니라 '장난감'만 붙들고 하루 내내 놀았어요. 아이를 바라보면서 내 어릴 적에 어떤 모습으로 웃고 뛰놀았는가 하는 대목을 낱낱이 새롭게 깨닫습니다.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 발이 달싹거립니다. 재미난 이야기가 흐르면 아이들은 몸은 그대로 둔 채 발가락이나 발바닥을 달싹거리면서 그런 즐거움을 드러내요. 아하 그렇구나 하고 느끼면서 이때에도 사진기를 슬그머니 듭니다. ⓒ 최종규


책을 읽는 발

아이들은 온몸으로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손만 깔작이면서 책을 넘기지 않아요.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귀를 활짝 열면서 온마음을 기쁘게 펴고는 모든 이야기를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때에 온몸이 함께 움직이면서 책하고 마주하지요. 놀이를 할 적에도 이와 같고, 심부름을 하거나 일을 거들 적에도 이러한 몸짓이에요. 웃을 적에도 얼굴로만 찬찬히 움직이지 않아요. 온몸을 써서 웃고, 온몸을 써서 춤추며, 온몸을 써서 노래합니다. 책을 함께 읽는 작은아이 발바닥은 누나 목소리에 따라 마룻바닥을 콩콩 울립니다. 즐거운 이야기에 즐겁게 발을 구르고, 발굴리기는 온 집안에 넘실넘실 흐릅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이 들길은 우리 차지입니다. 자전거로도 달리고 두 다리로도 걸으면서 마음껏 하늘바람을 마십니다. 이러는 동안 웃음이 터지고 사진도 새롭게 피어납니다. ⓒ 최종규


놀면서 걷는 논둑길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이제 이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나들이를 다닐 적에 힘이 부쩍 듭니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서 함께 발판을 구르니 자전거가 한결 달 달리도록 도와주지만, 그래도 두 아이 몸무게는 묵직합니다. 자전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으레 헉헉거리면서 논둑길에서 서기 마련이요, 두 아이더러 "우리 좀 걸을까?" 하고 묻습니다. 두 아이는 자전거에서도 즐겁고, 논둑길을 달리거나 걸을 적에도 즐겁습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다가 뒤돌아보며 "아버지 얼른 와요!" 하고 부릅니다. 땀을 옴팡 쏟으며 아이들 꽁무니를 좇다가 이렇게 부르는 소리에 기운을 차리면서 사진 한 장을 고마이 얻습니다.

모든 몸짓은 놀이로 살아나고, 이 놀이를 기쁘게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을 새삼스레 기쁘게 찍을 수 있습니다. ⓒ 최종규


진흙탕 놀이 신나

진흙탕 놀이가 신나는 놀이돌이는 진흙탕에 긴신을 척 박은 뒤 "나, 이제 못 나와! 발이 안 움직여!" 하면서 두 손을 번쩍 치켜듭니다. 그러게, 너 이제 못 나오겠네, 못 나오면 집에 못 가겠네, 집에 못 가면 맛난 밥 못 먹겠네, 맛난 밥 못 먹으면 배고프겠네, 하고 노래를 하니, "아냐! 나올 수 있어!" 하면서 어그적어그적 진흙탕에서 빠져나옵니다. 이 놀이돌이뿐 아니라 아버지인 나도, 어머니인 곁님도, 누나인 큰아이도 모두 이렇게 진흙탕 놀이를 누리면서 다섯 살 이 나이를 지나왔지요. 아버지인 나랑 어머니인 곁님은 이런 놀이를 사진으로 찍어 준 사람이 없었으나, 누나인 큰아이하고 다섯 살 작은아이는 사진으로 곱게 찍힙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 함께 올립니다.
#사진노래 #삶노래 #사진이야기 #사진 #시골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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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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