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 수업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등록 2015.12.16 20:54수정 2015.12.1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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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육과 관련해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은, 보건 수업은 무조건 재미있고,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교육이 포괄하는 법적, 학문적 범위는 건강한 신체 발달, 질병의 예방과 관리, 성교육, 응급처치 및 심폐소생술, 정신건강 증진, 흡연 및 음주 예방, 건강권과 사회·문화 등 다채롭지만, 어느 순간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급적 지적인 내용은 어려우니, 거기에 방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문과 권고는 한동안 어떤 신화처럼 뇌리에 박혀 무슨 강박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보건 수업에서는 지적 추구나 지적 즐거움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과 보건 수업을 하면서 소위 교육 전문가들의 지적이 얼마나 현장과 괴리된 것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인근 학교에서 개설한 방과 후 보건 수업에 한 학기 동안 참여했기에, 과정을 마친 후 학생들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보건 수업을 평가하도록 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흡연권과 혐연권에 대한 찬반 토론이 재미있었다고 응답했다. 관련 신문 기사를 읽고,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해서 토론하여야 했기에 아이들 입장에서는 귀찮은 수업이었으리라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담배를 둘러싼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점을 검토해보면서, 어떤 문제를 대할 때 일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아이들의 속내는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보건 수업의 일차원적인 재미, 그 너머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전근 온 지 1년, 아이들의 교원 평가는 어떨까, 특히 보건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진심을 듣고 싶어 하던 차에 교원평가가 마무리되었으니 열람하라는 교무부의 메시지를 받았다. 두려움을 안고 열어보니, 보건 수업 주제와 관련된 연구 자료나 조사 결과를 소개해준 게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가 눈에 띄었다. 보건 수업에서도 지적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아이들의 피드백인 셈. 

몇 해 전부터 성매매 예방 수업을 역사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시도를 해보고 있다. 단순히 성매매는 안 된다는 도덕적 훈계조의 교육으로는 아이들의 집중도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 후 차선책으로 선택한 방법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그린 짧은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를 시청한 후, 일제 강점기부터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근현대사를 통해 성매매가 어떻게 구조화되고 토착되었는지 사회·역사적 측면에서 검토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아진 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흥미도가 가장 높은 성교육에서도 가급적 이론과 사례를 많이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즐거워하면서도 어느 때보다 진지해진다. 기질 특성이나 남녀의 성 심리, 사랑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과학적 분석 자료, 학자에 따른 사랑의 종류나 단계, 대중문화를 통한 성적 왜곡 등을 소개하는데, 수업에 대한 몰입도가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하다. 아이들의 이해력에 대해서도 새삼 감탄하게 된다.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많은 지식을 주입'하려는 데 있다는 지적은 어쩌면 100% 옳은 분석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지식'을 재미없어 하는 것이 아니고, '단편적인 지식을 나열하는 것'에 흥미도가 떨어진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대로 보건 교과서는 무조건 쉬워야하고, 흥미로워야 한다는 접근은 보건교육 발전을 위한 바른 해법이 아닐 테다. 오히려 선진국의 보건교육과정처럼 인문·사회학적 바탕 위에서 분석하고, 종합하며, 고찰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수업 시간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데 무게 중심을 두고 싶다.  

보건 수업에서의 지적 추구는 재미없다는 편견,  아이들이 보기 좋게 무너뜨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건교육 #보건수업 #보건실 #학교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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