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몰라줘 서운해' 죽고 나서야 사랑받은 화가

[유럽 패키지 여행 ④ 중부유럽 4국] 13) 체스키 크룸로프 2

등록 2015.12.27 17:46수정 2015.12.27 17:46
1
원고료로 응원
시장 광장 주변 풍경

구시가지 시장 광장 ⓒ 이상기


구시가지는 시장 광장을 중심으로 옛날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남쪽과 북쪽으로 블타바강에 다리가 놓여있고, 동쪽으로 도로가 연결된다. 동쪽으로 가면 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우리는 검은 목조다리에서 시장 광장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식사는 체코 전통음식 스비치코바(Svíčková)로 예약되어 있다. 점심식사 후 구시가지를 오른쪽으로 완벽하게 한 바퀴 돌려고 한다.


시장 광장에는 시청과 관광안내소, 페스트 퇴치기념 석주가 있다. 시청은 1580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3층의 흰색 건물로, 건물 앞부분에 아케이드가 있다. 마리아 석주로 불리는 페스트 퇴치기념 석주는 1716년 3단으로 만들어졌다. 하단부에 보헤미아 성인들이 호위하고, 중단부를 둥근 기둥이 받치고 있다. 기둥 꼭대기 주두는 코린트 양식이다. 그리고 그 위에 성모 마리아가 도시를 굽어보고 있다. 마리아의 머리 뒤로는 12개의 별로 이루어진 후광이 있다.

크룸로프 성모 마리아 ⓒ 이상기


시장 광장에는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로코코 시대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이 즐비하다. 이들은 대개 주황색 지붕에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깔의 벽을 하고 있어 도시 전체를 밝게 해준다. 이제 우리는 호르니(Horní) 거리를 따라 성 비트 교회로 간다. 성 비트 교회는 15세기 초에 개축된 고딕식 건물이다. 주 제단 등 내부는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상(1390년 작품)이 있었으나, 현재는 비인 예술사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2009년에 만들어진 복제품을 볼 수 있다. 복제품을 보니 나무로 만든 조각품이다. 마리아의 얼굴 표정과 자세에서 고통과 고뇌를 읽을 수 있다. 소박하고 고졸한 맛이 나는 역사적인 작품이다.

전망이 좋은 외벽 지나 시립박물관으로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성채와 블타바강 ⓒ 이상기


성 비트 교회를 나온 우리는 호르니 거리 북쪽에 있는 외벽(Parkán) 공원으로 간다. 이곳은 언덕 위에 만들어진 일종의 방어벽으로, 강 건너 성채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성채 왼쪽의 극장과 망토 다리, 중간의 성 건물, 오른쪽의 탑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언덕 아래 구시가지 건물들의 주황색 지붕과 파란 하늘이 멋진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잔디도 깔려 있고, 나무도 있고, 의자도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은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시립박물관으로 간다. 시립박물관 건물은 원래 예수회 신학교 건물로 1650-52년에 지어졌다. 그러므로 바로크 양식이다. 그 후 극장, 성 요셉 교회 등이 지어져 복합건물이 되었다. 1773년부터 1777년 사이 예수회 교단 활동이 중단되면서 이들 건물은 학교로 사용되었다.

시립박물관 ⓒ 이상기


1945년까지 학교로 사용되다, 1946년 낡은 예수회 신학교 건물을 보수해 박물관과 문서보관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년 후인 1952년 박물관 최초의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1970-80년 대대적으로 수리를 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고대부터 19세기 말까지 체스키 크룸로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도시를 1/200로 축소해 놓은 모형이다. 예수회에서 운영한 바로크 양식의 약방도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그리고 체스키 크룸로프 인근 호르니 플라나(Horní Planá) 출신의 작가 슈티프터(Adalbert Stifter: 1805-1868)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는 비더마이어 시대 독일어로 글을 쓴 유명한 소설가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늦여름(Der Nachsommer)>이 있다.  

에곤 쉴레 아트센터에는 무엇이 있을까?

1912년의 에곤 쉴레 ⓒ 이상기


우리는 구시가지를 벗어나 카플리츠카(Kaplická) 거리까지 간 다음 돌아서 다시 시장광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밀랍인형 박물관을 지나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 아트센터로 간다. 이 미술관은 1992년 체코, 오스트리아, 미국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1993년부터 에곤 쉴레를 중심으로 한 20세기 관련 작가들의 전시회를 열고 있다.

에곤 쉴레 아트센터가 이곳에 생긴 것은, 쉴레의 어머니 마리(Marie)가 이곳 체스키 크룸로프 출신이기 때문이다. 쉴레가 태어난 곳은 오스트리아 빈이고, 1906년부터 빈 미술 아카데미를 다녔다. 그러나 학교의 보수적인 화법에 반발해 분리파 화가인 클림트(Gustav Klimt) 등과 교유했고, 1909년부터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확립해 나갔다. 그는 1912년부터 표현주의 화가로 활동했다.

에곤 쉴레 전시관 ⓒ 이상기


그가 체스키 크룸로프를 찾은 것은 1910년이다. 빈의 보수적인 성향에 반발해 어머니의 고향인 체스키 크룸로프로 여행했고, 이듬 해 5월 연인인 노이칠(Wally Neuzil)과 함께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그의 생활방식,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누드화가 주민들의 반발을 사 오래 살지는 못했다. 그는 8월 체스키 크룸로프를 떠나 빈 근교로 이사를 했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여러 번 체스키 크룸로프를 찾아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는 누드화 외에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을 묘사한 그림을 여러 점 남겼다. 그는 평생 빈 분리파, 뮌헨을 중심으로 한 표현주의자들과 어울리며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베를린에서 발간되는 주간잡지 <행동(Die Aktion)>은 1916년 쉴레 특집을 냈다. 클림트가 죽은 1918년에는 그의 주관으로 빈 분리파 제49회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때 그는 19점의 회화와 29점의 스케치를 내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에곤 쉴레가 그린 체스키 크룸로프 ⓒ 이상기


그러나 1918년 가을 빈에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고, 그의 아내인 에디트(Edith)가 10월 28일 독감에 걸려 죽었다. 이때 그녀는 임신 6개월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에곤 쉴레 자신도 독감에 전염되어 4일 후인 31일 죽었다. 쉴레의 작품은 사후에 높은 평가를 받아, 빈의 레오폴트 박물관, 벨베데레 미술관 등이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이곳 에곤 쉴레 아트센터에도 회화와 스케치가 수십 점 있다.

에곤 쉴레, 그는 살아서 체스키 크룸로프로부터 배척받았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의 고향을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서운함을 표시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 그곳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은 이곳에 남아 있는 아트센터를 통해 증명된다. 그리고 그가 살면서 그림을 그렸던 아틀리에도 남아 있다.

진갈색 목조 다리를 건너 현실세계로

물의 도시 체스키 크룸로프 ⓒ 이상기


에곤 쉴레 아트센터를 나온 우리는 시장 광장에서 다시 일행과 합류한다. 광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이제 서북쪽 판스카(Panská) 거리로 들어선다. 여전히 3층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건물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 작은 구시가지에도 운하 형태로 물길을 만들어 건물 사이로 물이 흐르는 곳이 있다. 물과 문화유산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주 작은 목조 다리를 건너 블타바강에 가까워오자 성채의 북쪽 벽과 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블타바강에서 카약과 카누,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블타바강에서 이처럼 카누와 래프팅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91년이다. 그러므로 래프팅의 역사가 25년이나 되었다. 래프팅은 체스키 크룸로프 상류인 뷔시 브로드(Vyšší brod)에서 하류인 보르쇼프(Boršov)까지 이어진다.

블타바강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 이상기


뷔시 브로드에서 체스키 크룸로프까지 배를 타면 7-9시간,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보르쇼프까지는 7-9시간이 걸린다. 가장 짧은 카누 타기는 30분 짜리로, 체스키 크룸로프 역사지구를 돌아보는 것이다. 카누는 보통 배 1척에 두 명이 타는 것이 기본이다. 래프팅은 2명에서 최대 6명까지 타고 할 수 있다. 가격은 최하 160코루나에서 최대 460코루나다. 하루가 아니라 2-3일 래프팅할 경우 최대 800코루나까지 올라갈 수 있다.

우리는 카누를 타고 블타바강을 노 저어 가는 래프터들을 보며 목조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는 진갈색으로 되어 있고, 폭이 좁은 편이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다리는 이처럼 자연친화적이다. 다리를 건너며 나는 다시 구시가지를 되돌아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시다. 인구가 13,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이후 관광객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블타바강과 구시가지: 동화 나라 ⓒ 이상기


체스키 크룸로프 관광을 마치고 망토 다리 아래로 빠져나오면서 나는 생각한다. 잠시 동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라고. 겨우 3시간 동화 속 세계를 배회하고 나왔지만, 나와 보니 3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체코의 대도시 프라하, 중규모 도시 올로모우츠, 소도시 체스키 크룸로프를 보면서 나는 체코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서부 보헤미아의 플젠(Plzeň)과 칼로비 바리(Karlovy Vary)를 여행해야겠다. 맥주와 온천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구시가지 #시장 광장 #시립박물관 #에곤 쉴레 아트센터 #래프팅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2. 2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3. 3 세계 정상 모인 평화회의, 그 시각 윤 대통령은 귀국길
  4. 4 돈 때문에 대치동 학원 강사 된 그녀, 뜻밖의 선택
  5. 5 신장식 "신성한 검찰 가족... 검찰이 김 여사 인권 침해하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