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지둥 넘어지고 깨지는 만화가 엄마

[시골에서 만화읽기] 히가시무라 아키코, <엄마는 텐파리스트>

등록 2016.01.04 18:17수정 2016.01.0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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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겉그림 ⓒ 시리얼

'골 때리는 이야기(엽기 코믹)'를 만화로 신나게 그리는 아줌마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은 이녁이 아이를 낳아 돌보는 이야기를 <엄마는 텐파리스트>라는 책으로 네 권 내놓았습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일감을 붙잡기에도 벅차지만 아기를 씩씩하게 낳은 이녁은 몸풀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만화를 그렸고, 아기한테 젖을 물리랴, 집안일을 하랴, 이러면서 다시 만화를 그리랴, 아기를 도움이(만화 보조 일꾼)한테 맡기고 만화를 붙잡느라, 다시 아기를 받아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이러는 동안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하느라, 언제나 허둥지둥 얼렁뚱땅 어설피 하루하루 지냈다고 해요.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를 보면 이 같은 이야기가 퍽 우스꽝스러우면서 재미있게 흐릅니다.

'모처럼 일을 쉬어 늦잠이라도 자고 싶은 뷰티풀 선데이 모닝도, 아이가 일어나면 그것으로 슬리핑은 엔딩이 됩니다.' (13쪽)


'"아니야! 고짱 칼이 더 세! 왜냐하면 이건 엄마가 사 줬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 칼이 훨씬 더 세!"' (15쪽)

어느 모로 보면 재미있으면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깃든 만화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다르게 바라보면 슬프면서 고단합니다. 늘 허둥지둥 지내는 삶이니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지면서 아프거나 힘들어요. 이처럼 허둥지둥 지내다 보니 바보스러운 짓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도 저질러요. 이럴 때마다 내가 왜 이러나 하고 돌아볼 텐데,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자란 뒤에 되새기면 뜻밖에도 참 재미있던 지난날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뒤가 맞는지 틀리는지 살필 겨를이 없이 흐르는 하루라고 할까요. 참말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에 흐르는 이야기를 살피면 앞뒤가 맞는지 틀리는지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여러모로 뒤죽박죽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같은 대목이 '텐파리스트(てんぱる + ist, 허둥대는 사람)' 같은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어머니(또는 아버지)'한테 살그마니 기운을 북돋워 주기도 하리라 봅니다. 이를테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나만 힘들지 않구나, 너도 힘들구나, 나만 그때 그렇게 바보스럽지 않았구나, 너도 그때 그렇게 바보스러웠구나' 하고 말이지요.

'덩달아 나도 세상의 엄마들이 3일에 한 번 꼴로 빠지는 '나는 정말 낙제 엄마일지도 몰라 모드'에 돌입할 것 같은 우울한 느낌.' (43쪽)

'대처 방법. '아이보다 더 크게 운다' 요즘 이 방법으로 많은 위가 상황을 모면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봐도 하나도 안 창피하다'는 분에게 강추하는 방법입니다.'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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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겉그림 ⓒ 시리얼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삶은 더 힘들거나 덜 힘들다고 말할 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삶일 뿐입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달라서 길을 걸을 적에도 그냥 걷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새로운 것을 쳐다보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일쑤이고, 자동차가 찻길을 달리거나 말거나 저 가고픈 대로 마구 달려요. 왜냐하면 아이는 새롭게 놀고 싶을 뿐 아니라 마음껏 달리고 싶으니까요.

맛있으면 맛있다고 웃고, 맛없으면 맛없다고 찡그립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하고 지내면서 밥 한 그릇을 더 맛있게 지을 뿐 아니라 즐겁게 짓자는 생각을 새삼스레 품고, 아이처럼 스스럼없으면서도 맑은 숨결로 생각을 나눌 때에 기쁜 삶이 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이가 곁에 있기에 함께 춤을 추며 놉니다. 아이가 곁에 있으니 함께 노래하다가 잠듭니다. 아이가 곁에 있는 터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출산한 지 4년, 이때 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아, 아이 낳길 잘했다.' (112쪽)

만화를 그리는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은 만화를 그리는 삶이 아니었으면 <엄마는 텐파리스트>에 나오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겪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만화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허둥지둥하면서 이리 부딪히거나 저리 깨지는 일도 없었거나 드물었을는지 몰라요. 그러나, 만화가로 살지 않았어도 이 만화책에 나오듯이 허둥지둥했을 수 있고(틀림없이 그럴 만합니다), 만화가 아닌 여느 살림꾼으로 집에서 아이만 돌보았어도 이 만화책에 나오듯이 날마다 잠 못 이루는 삶으로 아이하고 온 하루를 보냈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기에 '아이 어머니'나 '아이 아버지'가 어떤 삶인가를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배웁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동안 '아이'란 어떤 넋이고 숨결이고 목숨이고 빛이고 사랑이고 꿈인가 하는 대목을 새롭게 복닥이면서 배웁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기 때문에 '오늘은 어버이로 사는 나'도 예전에는 이 아이처럼 무럭무럭 자라서 오늘 같은 어른이 되었다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허둥거리는 어머니라도 틀림없이 어머니입니다. 주마다 마감에 쫓기면서 만화를 그리느라 '(스스로 밝히는) 0점짜리 엄마'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어머니예요.

'"히가시무라 씨는 육아에 지쳤을 때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나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요! 잠도 못 자, 외출도 못 해, 애가 자는 동안엔 작업이며 집안일을 해야 하고.' "아이를 할머니한테 맡기고 한잔 하러 가요." "그렇군요." '아아,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아이를 할머니한테 맡길 수 없는 환경의 엄마들에게 너무 죄송하잖아. 게다가 까딱 잘못하면 인터넷에서 '할머니한테 애를 맡기고 술이나 먹으러 가다니 아주 구제불능 엄마의 전형이네 …… 아니, 술 마시러 갈 시간 있으면 고짱이랑 놀아 주기나 해라, 인간아!'라며 들고 일어나겠지?''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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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겉그림 ⓒ 시리얼

<엄마는 텐파리스트> 2권 끝자락에 뒷이야기가 하나 붙습니다. 이 뒷이야기에는 잡지사에서 취재를 와서 '아이를 키우며 만화를 그리는 어머니'한테 몇 가지를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취재기자는 만화가 아줌마한테 '육아 스트레스 풀기'를 묻습니다. 만화가 아줌마는 '스트레스 풀기'를 해 본 적이 없거나 해 볼 수 없다고 느끼면서도 취재기자한테 뭔가 대꾸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육아 스트레스 풀기'를 하려고 할머니한테 아기를 맡기도 술 한잔을 하러 나들이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화가 아줌마는 날마다 마감에 쫓기는 삶이기에 '술 한잔 하러 나들이'를 하지 못합니다. 취재기자가 물어보니 어쩔 수 없이 하는 말이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누구나 '육아 스트레스 풀기'는 거의 엄두를 못 냅니다. '육아 스트레스'라는 말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하루가 흐르기도 합니다. 이를 제대로 헤아리는 아버지가 드물기도 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하루가 아무리 고되더라도 이 아이가 짓는 웃음으로 모든 고단함이 녹아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만화가 아줌마가 아닌 내 삶을 돌아보아도 '허둥지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설프고 저렇게 어수룩합니다. 언제나 다시 배우고 늘 새로 배웁니다. 처음부터 다시 하기 일쑤이고, 늘 첫걸음을 새로 떼는 하루입니다. 마치 싸움을 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바보스러운 내 모습하고 싸우면서 상냥하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가 나를 달래면서 아이를 마주하고, 내가 나부터 사랑하면서 아이를 돌보자고 생각합니다.

만화가 아줌마는 나하고 또래이고, 이 아줌마네 아이는 우리 아이하고 또래입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아이를 만나서 서로 다른 삶을 짓는 셈인데, 서로 씩씩하게 기운을 내면서 아이랑 '어버이인 내 모습' 모두를 사랑할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엄마는 텐파리스트 2 (초보엄마 육아일기)>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 최윤정 옮김 / 시리얼 펴냄 / 2012.5.25. / 8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 함께 올립니다.

엄마는 텐파리스트 2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2012


엄마는 텐파리스트 1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2011


#엄마는 텐파리스트 #히가시무라 아키코 #만화책 #아이키우기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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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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