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 장식일 뿐인데... 왜 파슬리에 환장했을까

[먹고 생각하고 그냥 써라] 세월이 가도 '고급'인 탕수육 그리고 간장 '한 종지'

등록 2016.01.13 14:57수정 2016.01.1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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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상황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고급으로 인식되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어디서나 고기를 살 수 있는 상황에도 힘든 일이 끝나면 꼭 삼겹살을 먹지요. 몸이 허해지면 일단은 닭백숙을 떠올립니다.


탕수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탕수육이 고급 음식이라는 인식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중국집에서 회식을 하거나 술자리를 열면 탕수육을 주문하게 되지요. 양장피나 난자완스, 깐풍기, 유산슬 등 중국 요리들이 대중에 흔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중국 요리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탕수육입니다.

탕수육은 행사가 아니면 먹을 수가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입학식·졸업식 등이 대표적인 행사지요. 짜장면은 행사가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탕수육은 달랐습니다.

탕수육의 장식이었던 파슬리에 손 뻗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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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은 세월이 가도 '고급 중국요리'로 불립니다 ⓒ 임동현




제게 탕수육은 어린 시절 추억과 함께 대학 시절 추억도 가지고 있는 음식입니다. 날씨가 을씨년스러운 어느 날, 학생회실에서 탕수육을 배달시키고 소주 혹은 고량주를 마시며 먹고 놀았던 기억이 많지요. 탕수육 접시에 장식으로 담긴 파슬리가 '정력'에 좋다는 한 선배의 짓궂은 농담에 남자 여럿이 파슬리에 손을 뻗었던(물론 저도 포함이지요) 기억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넓적한 접시에 소스를 끼얹은 상태로 배달됐지만 요즘은 튀김과 소스를 따로 담아 배달됩니다. 그러다 보니 '부먹'(부어 먹기)과 '찍먹'(찍어 먹기)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는 풀리지 않는 난제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먹'과 '찍먹'은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 요즘엔 탕수육을 배달하면 군만두가 서비스로 나옵니다. 예전에 방문했던 명동의 한 중국집에서는 물만두가 서비스로 나오기도 했지요. 이처럼 시절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탕수육은 우리에겐 '고급'입니다. 기억들이 담겨있는 음식이니까요.

'간장 한 종지'만 줬다고 불평하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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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한 종지만 있으면 어때요? 같이 나누어 먹는 게 중요하죠 ⓒ 임동현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한 매체의 칼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탕수육을 시켰는데 간장을 2인당 한 종지만 준 것에 화가 난 '이름 있는' 논설위원의 칼럼이었습니다.

그는 간장을 주지 않은 것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결시키는 '놀라운' 은유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식당 종사자에게 '감사하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가라는, 남이 생각지 못한 의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요리조리 다른 중국집의 이름을 대며 해당 중국집의 위치와 이름을 가늠케 해주는 신공을 보여주기도 했죠.

하지만 간장이 한 종지면 어떻고, 두 종지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같이 나눠 먹는 즐거움이죠. 이 사람 저 사람이 간장을 찍어 먹는 모습이 얼핏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건 최근 사람들의 생각 아닐까요? 본래 우리는 네댓 사람이 간장 한 종지를 놓고 먹어도 결코 그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꺼리는 사람이 없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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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와 간장 ⓒ 임동현


되레 이런 모습은 '함께한다'는 생각을 더 굳게 했습니다. 부족해 보이지만 그래도 같이 맛있게 먹고 같이 즐거워하고 그렇게 친밀감이 쌓여갔죠. 적은 양의 간장 한 종지에도 이처럼 어울림이 담겨 있었습니다. 따로 한 종지를 챙기려는 '깍쟁이'는 나오지 않았지요.

그렇습니다. 간장이 한 종지면 어떤가요? 간장에 고춧가루를 치든 안 치든, 식초를 넣든 안 넣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같이 어울리고, 같이 먹고, 음식을 만들어주고 배달해주는 사람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면 더 맛있지 않을까요? 탕수육과 만두 그리고 간장 한 종지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이 맛을 만드니까요.
#탕수육 #간장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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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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