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됐는데도 싱글벙글, 미용실 아저씨의 행복 철학

등록 2016.01.13 17:50수정 2016.01.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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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11시 10분. 내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급하게 달려간 곳은 동네 미용실이었다.


"죄송한데, 지금 머리 자를 수 있을까요?"

되돌아갈 마음의 준비까지 마친 상태로 질문을 던졌다. 자정에 문을 닫는다곤 하지만, 영업 끝물에 찾아가 머리를 잘라달라는 건 민폐인 것 같았다. 들어오라는 흔쾌한 대답. 짜증 섞인 기색이 하나 없었다.

나도 알바를 하기 때문에 마감 즈음에 손님을 받는다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앞 손님의 커트가 끝날 때까지 찬찬히 미용실을 둘러보다가 시선이 텔레비전에 머물렀다. SBS <힐링캠프>를 보며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자리를 옮겨갔다.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텔레비전의 내용도 이야깃거리 중 하나였다. 수의학과를 가기 위해 재수·삼수를 한 여학생이 나와 "내가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느꼈다"라는 말을 했다. 동질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는 찰나.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는 고졸이야. 공부는 진짜 안 했어. 공부하기 싫어서 대학까지 안 갔어. 근데 이 일 잘하잖아. 나는 내 일이 정말 좋아."


한층 격앙된 목소리였다. 그의 말에서 힘이 느껴졌다.

"행복해.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있어서 행복해. 아까 그 사람도(빚도 갚고 아기도 생긴 부부 사연자) 빚 있을 때도 행복 했다잖아. 돈 많고 적은 게 중요한 시대가 아니야. 요즘엔 행복지수가 중요하지."

'행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들은 행복할까?' '그 기준은 뭘까?' '올바른 기준일까?' 무한경쟁의 궤도 속에서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며 나의 행복기준을 그들에 맞춘다. 정작 돌아봐야 할 나는 내버려둔 채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뒤돌아본다.

그래서, 우위에 있으면 행복할까. 또 다른 비교대상을 찾아 나설 것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정해둔 가치가 그 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이 아니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겉치레가 아닌 올바른 잣대로 진정한 행복을 찾으면 좋겠다.

자정이 다 되도록 저녁식사도 못 하셨다는 미용실 아저씨는 뒤늦게 온 손님도 웃으며 맞았다. 짧아진 머리로 가게를 나서며 아저씨의 행복 철학을 얻어간다. 고된 하루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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