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수 없는 가루, 서서히 사람 죽이는 독

[류외향의 자연주의 음식과 삶의 이야기 ⑪] 떳떳한 부모가 되기 위한 자연주의

등록 2016.01.20 07:38수정 2016.01.20 07:38
11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집으로 돌아왔다. 시 외곽의 오래된 아파트라 2014년 매매가가 4000만 원이 조금 넘는 선이었다. 5년 서울살이로 모은 돈과 시(詩) 창작지원금으로 받은 돈으로 샀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내가 집을 소유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가니 그게 가능해졌고, 더구나 전혀 돈이 되지 않는 시를 써서 받은 돈을 보탰으므로 나는 그 집을 진정 사랑했다.


유기견 세 마리와 알콩달콩 살던 그 집을 떠나 마라도에 들어갔다가 햇수로 3년 만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식구가 둘이나 늘었다. 남편과 아이가 그 집으로 들어오자 비로소 두 사람은 내 삶의 중심이 됐다. 모든 것이 안정됐고, 평화로웠다.

나는 건축과에 갔어야 했다

DIY에 푹 빠졌었다. ⓒ pixabay


우리는 당분간 쉬기로 했다. 휴식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어디든 문만 열면 손님이 끊이지 않을 거라 자신했으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곳은 육지였으므로 단골 장사가 불가능한 작디작은 섬에서 겪은 설움을 단번에 날려 버릴 것이라 믿었다.

그렇다고 어렵게 모은 돈을 생활비로 다 써버릴 수는 없어서 남편은 석 달 동안 막일을 나가기도 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남편 밥을 차려주는 일상이 기껍고 행복했다. 살림을 살고 육아에 전념하면서 의외로 전업주부의 생활이 나와 잘 맞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냥 그렇게 쭉 살았어도 좋았을 것을, 우리는 짜장면에 발목이 잡혀 다른 삶의 방식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 짜장면집이 아니라 횟집을 차렸어도 우리의 삶은 지금과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다.

7개월가량 쉬면서 취미생활을 하나 찾아냈다. DIY(Do It Yourself) 붐이 일어날 무렵이었고, 나는 순식간에 심취했다. 또 오래된 가구를 재활용하는 리폼이 대세인 때라 쓰레기장에 버려진 가구를 물색하는 일 역시 취미가 됐다. 전동드릴도 없던 때였다. 공돌이 출신인 남편의 그 많은 공구는 철물용이어서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손톱(handsaw)으로 낑낑거리며 나무를 잘라서 손으로 드라이버를 돌리고, 망치로 못을 박으며 DIY를 시작했다. 보잘 것 없는 나무상자를 하나 만들어도 그 성취감은 대단했고, 그 일이 얼마나 나와 잘 맞는지 깨달았다. 역시 나는 건축과를 갔어야 했다. 집 짓는 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의 DIY 실력은 초고속 성장을 했으므로 상황만 허락한다면 집을 짓고도 남을 기세였다.

가게를 열 계획이었으므로, 내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가구에서 인테리어로 넘어갔다. 가게 자리를 알아보기도 전에 인테리어의 밑그림은 완성돼 있었다. 자기 집을 뜯어 고치지 않는 한 인테리어를 실현하기란 불가능한데, 짜장면집이 계속 망하는 바람에 나는 지금까지 세 번이나 그것을 실현해 봤다.

취미생활로 봤을 땐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망함의 고통은 잠시요, 새로운 인테리어 도전이 내겐 가장 행복한 시기였으니…. 역시 나는 건축과에 갔어야 했다. 요리에 젬병인 내가 짜장면집을 여러 번 여는 고난의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DIY와의 궁합이었던 것이다. 지금 가게는 망하진 않을 것 같지만, 여기도 세를 들어 사는 곳이므로 언젠가는 옮겨야 하는 운명이다. 다음 내 인테리어 공간은 남의 집이 아니라 내 집이기를 바라며, 벌써 어떤 건물을 지을까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궁리 중이다.

'먹거리 공부'를 시작하다

또한 쉬는 동안 먹거리 공부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마라도에 있을 때 MSG를 빼고 설탕을 바꾸는 초보적인 수준으로 자연주의에 첫발을 들였다. 그러면서 당시 정기구독 중이던 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하던, 후델식품건강연구소의 안병수 소장을 알게 됐다. 그 전에는 별 관심이 안 가던 먹거리 관련 글이 가장 큰 관심사가 된 것이었다. 소장의 글을 읽지 않았더라면, 우리 짜장면은 MSG를 넣지 않는다는 것 외엔 일반 짜장과 크게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한겨레신문사를 통해 안병수 소장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통화도 해보았고, 메일 주소를 받은 후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메일로 문의를 하곤 했다.

안 소장의 유명한 저서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아래 <과자>) 1, 2권은 화학첨가물의 유해성을 논하는 다른 많은 외국 서적에 대한 총체적인 안내서 역할을 했다. 마라도를 떠나면 소설책도 잔뜩 읽고, 시도 다시 써 보리라 작정했던 것이 화학첨가물 공부와 DIY에 심취하면서 물 건너 가 버렸는데, 지금까지도 그렇다.

내 책꽂이의 풍경은 2008년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뉜다. 문학책은 2008년 이전에 멈춰 있고, 2008년 이후의 책은 화학첨가물을 고발하는 책과 GMO(유전자조작생물체) 책과 식량 및 종자독점에 관한 책들이다. 그나마 나를 여전히 기억해주는 동료 시인들이 우편으로 보내주는 시집이 내가 시인이라는 것을 간간이 상기시켜 줄 뿐이며, 그 시집들은 가게 창가에 자리하고 있다.

내 식품첨가물계의 바이블이 된 안병수 소장의 책들 ⓒ 류외향


<과자>는 내가 30년 가까이 먹어오면서 아무런 관심도, 의심도 갖지 않았던 식품첨가물의 실체를 폭로하는 국내 최초의 책일 것이다. 그 책은 MSG를 비롯한 각종 화학첨가물이 어떤 과학적 메커니즘으로 사람의 몸을 해치는지 어렵지 않게 설명해준다. 차라리 아이를 굶기라거나, 차라리 담배가 덜 해롭다고 할 정도로 화학첨가물은 나쁘다.

현대인들의 각종 병이 급증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이유를 흔히 환경이 나빠져서라고 하는데, '환경'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 대신 먹거리 때문이라는, 적확한 표현을 써야 한다. 나머지 환경은 '플러스 알파적' 요인인 것이다.

일본 회사 아지노모토가 개발한 MSG는 1908년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아지노모토'라는 이름으로 팔렸고, 해방 이후 수입이 중단되자 임대홍이라는 사람이 조미료 기술을 배워와 1956년부터 팔기 시작했다. 아지노모토는 '맛의 근원'이라는 뜻이고, 그것을 한자로 표기해 한글로 읽으면 '미원'이 된다. 우리 민족의 식생활이 화학첨가물에 포획당하기 시작한 지 어언 100년이 넘은 것이다.

'어머니 손맛'의 비밀

인공 조미료 원료로 쓰이는 화학 물질인 글루탐산소다. ⓒ wikicommons


평생 시골에서만 살다 돌아가신 우리 할매는 병약한 체질로 태어나 음식을 매우 가렸다. 그러나 시골 정지(부엌)에는 그 MSG가 든 조미료통이 늘 있었고, 조미료 톡톡 처넣는 것이 모든 조리의 마무리였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향의 맛, 어머니의 손맛은 사실 MSG 맛일 가능성이 크며,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 역시 그렇다.

그것이 나쁠 수도 있다는 얘기는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고, 온 국민의 식탁을 점령한 그것을 의심할 수도 없었다. 할매는 구순을 넘기셨지만, 결국 담낭암으로 고생하다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다. 암의 원인은 병원도 모른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가족이 환자의 평생 식생활을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 할매의 암이 MSG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화학첨가물이 무서운 것은 이처럼 오랜 세월 병증이 없는 채로 섭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독에는 급성독과 만성독이 있는데, 급성독을 만성독으로 바꾸는 마술을 부리는 것이 바로 허용치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아질산나트륨의 치사량은 티스푼 1/3 정도다. 그러나 허용치 내에서는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세균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색을 예쁘게 만든다는 이유로 햄과 소시지, 단무지, 젓갈 등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허용치 내에서 먹으면 평생 먹어도 무해한 것이 아니라, 평생 먹는 동안 몸속에 독을 쌓는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10년 뒤, 20년 뒤 큰 병이 왔을 때 아무리 뛰어난 명의도 원인을 알 수 없으며, 모든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한다. 밑도 끝도 없는 병명인 신경성, 스트레스성, 과로사 등의 근본 원인 역시 이러한 화학첨가물로 봐야 한다. 수십 년 몸속에 독이 쌓이고 면역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을 때 급격하게 드러나는 병증인 것이다.

식품첨가물은 무려 600가지가 넘으며, 그 중 화학물질은 400가지가 넘는다. 마트 식품 코너에 가서 아무거나 집어 들고 뒷면 성분 표시를 보라. 가공식품이라면 뭐든 상관없다. 적게는 십여 가지, 많게는 30여 가지의 식품첨가물이 들어가 있다. 개개의 성분이 독성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몸속에 들어가 서로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임상실험이 불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천연 재료도 잘못 섞어 먹으면 독이 되는데, 수십 가지 화학물질들이니 오죽하겠는가. 첨가물은 어려운 과학이 아니다. 상식만으로도 얼마든지 유추가 가능하다. 인터넷 검색만 할 줄 알아도 정보는 널려 있다. 단, 언제나 합리적 의심을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직장암으로 사망한 제과업체 사장님

안병수 소장은 국내 유명 과자회사의 제품개발부와 구매부에서 16년 동안 일을 해오던 중견 간부였다. 그러다 왜 돌연 직장을 그만두고 건강연구소를 차렸을까? <과자>는 그 이야기로 시작한다. 일본의 '야마시타 제과'는 윈도우베이커리용 제품을 개발·생산하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도중 갑자기 문을 닫는다. 행방이 묘연해진 야마시타 사장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소장은 그가 직장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충격에 휩싸인 소장은 회사 문을 닫기 전에 그에게서 받은 책 한 권을 뒤늦게 읽게 되었고, 그 속에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식원성증후군>이라는 책으로, 청소년들의 폭력성이 식생활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다. 각종 첨가물 범벅인 가공식품이 아이들의 성격과 정서까지 변질시키니, 가공식품이 질병을 유발하는 것은 당연한 메커니즘이라고 짐작하고도 남았다.

소장 역시 언젠가부터 피곤과 무기력에 시달렸음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야마시타의 죽음과 그가 건네준 책을 통해 자신 역시 똑같은 이유로 앓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소장뿐만 아니라 과자회사의 직원들은 수없이 많은 과자를 먹어봐야 하는 일이 곧 직업이어서 젊은 나이에 사망하거나 암, 심장질환, 당뇨병 등의 생활습관병에 걸리는 등 건강 문제가 실로 심각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무도 그 원인을 과자로 지목하지 못했다. 야마시타 사장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소장은 직장을 그만두고 가공식품과 관련한 공부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현재 국내 반(反)식품첨가물계에선 최고의 전문가가 됐다.

두어 달 전, 서귀포 한살림생활협동조합에서 안병수 소장 초청 강연이 있었다. 소장을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우리는 오래된 인연처럼 반갑게 대화를 나눴고, "제가 스승으로 모시고 있어요"라는 고백을 할 때는 떨리기까지 했다.

인연을 맺은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안병수 소장 ⓒ 류외향


나름대로 세상살이 알 만큼 안다고 자부하며 살아가던 내게 그 나이 먹도록 그러한 이야기를 해준 책은 난생 처음이었다. 충격이었다. 내가 그 동안 지식이라고 공부한 것이 사실은 헛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들었다.

마라도와 결혼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면, <과자>는 그 전환점에 서 있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환희로 맞게 해준 크나큰 지평이었다. 소장에게 야마시타 사장이 새 삶을 살게 해준 은인이라면 안병수 소장은 내게 스승이다. 첨가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비록 번역책이지만 여러 권 있다. 그러나 소장의 책은 지식을 넘어 울림이 있었다.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부분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돈을 벌어 자식을 키우는 일에 있어서 '떳떳함'이란 어디까지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도둑질만 떳떳하지 못한 돈벌이인가? 어떤 경우에도 남을 해치고 괴롭히는 일은 더러운 돈이다. 소장의 깨달음은 결국 자신이 만든 과자가 아이들의 건강을 해친다면, 그런 일로 벌어들인 돈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과연 떳떳한 일인가에 대한 물음에 가 닿았다.

나는 그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어떤가? 내가 타인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더 확장하자면 누군가를 죽음에도 이르게 할 수 있는 음식을 팔아서 번 돈으로 아이를 공부시키고 옷을 사 입히며 엄마 아빠는 널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비로소 우리 부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완전하게 깨닫게 됐다. 떳떳한 부모로 살아가는 길이 세상을 바꾸는 길임을 말이다. 자연주의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점점 더 명백해졌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경제매거진 <이코노믹리뷰> 온라인판 1월 20일자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이야기는 2010년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으며, 현재 '마라도에서온자장면집'은 마라도가 아니라 서귀포시 화순에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라도에서온자장면집 #자연주의짜장면 #착한식당 #마라도짜장면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