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한상균, 하루라도 빨리 나오게 해주세요"

[인터뷰] 한상균 석방 콘서트를 앞두고 그의 어머니를 만나다

등록 2016.01.19 19:57수정 2016.01.1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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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석방 콘서트'가 오는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오후 7시 정동 프란치스코에서 열립니다. 석방 콘서트를 앞두고, 지난 11일에 한상균 위원장의 어머니 임선복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한상균 위원장의 어린 시절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는 '노동자 뉴스 제작단'의 유명희 감독이 했고, 정리는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활동가가 했습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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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3일 쌍용차 해고자복직 3000인 동조 단식 "함께 살자" 집회에서 발언하는 한상균 위원장 ⓒ 한상균 제공


"힘든 공장생활? 속은 모르니께 엄마 근심할 소리라고는 절대 힘들어도 안 혀…. 좋았다고 하지 궂었다고 한 자(한마디)를 안 할 애기야. 77파업(2009년 쌍용자동차 77일 파업) 때? 갔지. 가 갔고 촌에 사는 할매가 뭐 말할 줄 안다고 강당에 올라가서 인사말 하라 그래. 그래서 올라가서 생긴 대로 본 대로 들은 대로 죄 없이 서민을 위해서 고생을 하니까 죄라 생각하지 말고, 고생이라 생각하지 말고, 힘껏 노력하면 노력한 만치 성과가 있을 거라고 인사말하고 내려왔지."

2009년 옥쇄 파업이 한창일 때 노동자들은 한 노인을 만난다. 파업 지도부, 한상균 위원장의 어머니였다. 파업 고비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나날들. 그들은 마른 삭정이처럼 구부정한 노인의 말씀에 힘을 얻었을 것이다.

둘째 아들과 웃는 모습이 똑 닮은 한상균의 어머니 82세 임선복님. 어머니는 아들의 어린 시절 상장을 내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번의 구속, 100일 넘는 고공농성…. 거칠고 험한 세상에 부딪히는 아들을 기다리며 어머니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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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위원장의 어머니 임선복님. ⓒ 유명희


팔순 노인을 서울까지 모실 수 없어, 영상 인터뷰를 담기 위해 고향 나주까지 다녀왔다. 이야기는 한상균의 역사, 그리고 그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또한 노동자에게 야박하기 그지없는 한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말하는 한상균 위원장의 어린 시절

"어휴, 착하고 말도 못하게 좋은 아들이었지. 남한테 싫은 소리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랑께. 어디서 뭔 일을 한다거나 혹시라도 돈이 없으면 몰라도 있으면 낼 자리는 앞장서고. 그렇고 착한 애기가 순해가지고 남한테 듣기 싫은 소리 한자리(한마디)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


"(상균이가) '어머니, 대학을 갈려고 공부를 많이 했는디. 어머니,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래서 어쨌스꺼나. (대학) 갈려는 성의는 좋은데 우리 형편이 안 풀려서 못 보내겄는데 어째야 쓰꺼나. 그러니까 밤에 '그래라…. 나도 나 살길을 찾아가야지라' 그러더니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저 너메 논 한 단지가 있는데. 전신주도 안 세워져 갖고 전깃불도 없고 경운기 앞에 전기 하나 단 놈 없는데, 혼자서 논 한 단지를 다 모심 게 로타리를 하고(모심고 매고) 왔더라고요.

그러더니 아침에 딱 씻고 나가면서 '어머니, 내가 그놈 한 단지 모를 심게 해놨으니까. 나도 나 살길을 밟을랑께, 부산을 가야 쓰겄소' 하고 부산에 있는 큰 아들한티 갔지…. 그 길로 취직을 한 것이 소형차 회사 다녔어요. 그러고 그게 쌍용으로 합해졌지. 그래서 애기가 쌍용으로 간 거예요. 그때부터 이렇게 사건이 이렇게 차근차근 되았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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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위원장 어머니 당시 찍은 사진. 한상균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 ⓒ 유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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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위원장 어머니 당시 찍은 사진. 한상균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 ⓒ 유명희


아들 면회 가서 손도 못 잡아본 어머니

"(5.18때 광주에서) 저 짝에서 군인들이 길을 막고 이짝에서 막고 시골 좁은 길인데, 떡 방앗간이 하나 있더랍디다. 양쪽에서 몰아서 우리 애기를 가운데 놔두고, 잡을라니께 얼렁 떡 방앗간으로 들어가서 큰 다라이를 떠들어가지고, 콱 그놈 속에 들어가서 엎드려 있으니까… 막 와서 두두두두 막 찾더래…. 그때 죽을 뻔했어. 우리 애기가. 근데 떡 방앗간에 들어가서 다라이(대야) 속에 엎어져 있었기 때문에 애기가 살았어. 그런 고통을 당했어요."

"그때는 광주 가 있는 식구 자식들은 다 죽었는가 했지. 뭐, 전화를 할 수 있었어? 차가 있어서 오기를 했겄소? 그러니께 다 죽은 줄 알았지…. 그런 아들이 끝내 고생하니께 너무 가슴이 아파 갖고. 아이고, 돈만 있었으면 인문계 보내갖고 공무원 시험이라도 쳐가지고 공무원이라도 되얐을 거인데.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우등상을 받았는데 공무원 시험 합격 못 했겠어요? 그때 시상에…. 인문계를 안 보낸 게 내 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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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6일 3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날 한상균 위원장의 모습 ⓒ 한상균 제공


"뉴스에 아들? 날 새기 하지 뉴스마다 보느라고… 티비에서 좋게만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러니까…. 면회 가서 그랬어. '니가 도둑질을 했냐, 사람을 때려죽였나. 서민 돕다가 이렇게 끌려왔으니, 죄가 있으면 죄가 있는 대로 받고 오는 수밖에.'"

"나는 그동안 너도 오는 밥 남기지 말고 엄마를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다 먹고 나도 먹기 싫어도… 건강한 모습으로 너를 보려고 밥을 안 남기고 다 먹는다. 그러니 너도 나온 밥이라도 남기지 말고 건강하게 먹고 잘 있다 온나. 그런데 저거 아들 속 가슴 아프게 눈물이 나 찍찍하고 가슴 아픈 소리 하면 쓰겄어?

그래가지고 우리 아들 장한 일 했다 파이팅이다. (감옥에는) 요런 살창이 있어서 사람 손은 잡을 수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보니까 워매 딱 유리창으로 해가지고, 손 쾡이는 얼굴밖에 못 보더구먼. '손이라도 맞대보자' 하고 손을 유리에다 대고 그랬다니께."

"마음이 말도 못해... 가슴이 틀어 올라오기 시작하면 어디 갈라면 물 작은 거 한 병 가져가야 돼(가슴을 가리키며). 여기서 일어나기 시작하면 콕콕콕콕콕 숨이 빨딱 넘어가게 아파. 그런데 이상하게 물 한 컵만 딱 먹으면 눈 삭듯이 사르르 내려가. 물만 먹으면 내려가. 어디 갈 때 물 한 병은 꼭 있어야 돼. 화병이 생겼다께요. 우리 아들이 그러지 않고 편안한 직장을 얻었다면 병이 낫을런가. 병을 얻어버렸어, 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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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쌍차희생사 시민 분향소에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한상균 위원장의 사진 ⓒ 한상균 제공


"송전탑 올라갔을 때? 가지 않았어. 티비에서만 보고 가진 않았어. 지 가슴은 얼마나 아플까 싶어서 참았지 못 가고…. 그때도 워매 워매 추위도 추위련만, 전파가 사람께 연결되면 못쓴다고 하는데… 그러고 있으니 부모가 살겠어요? 못살아요. 못살아."

"쌍용차 복직 소식? 워매 잘했다, 우리 아들 얼마나 좋아할까. 자기가 들어가서 좋은 게 아니고 옆에 사람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얼매 많이 죽고 다쳐가지고… 병원 치료도 못 받아서 많이 죽었다면서요. 너무 짠해. 그렁께 우리 아들이 들어가서 오진게 아니라 워따 잘했다고 '워매 잘했다, 워매 잘했다'고 그랬더니. 며느리가 어머니 그러기는 했어도 한꺼번에 다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올해 새로 뽑는 사람 몇 명 뽑으면 몇 명 들어가고 차근차근 들어가는 거래요. 그러더라구. 그래서 워매 우리 작은 아들 얼마나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가, 얼마나 좋아라 할거나… 지가 된 놈보다 천배 만배 좋아라 하겄다, 했제."

"우리 아들 하루라도 더 앞당겨 나오게 해주세요"

"아니여. 우리 아들은 자기는 안 들어가도 남은 사람 앞에 보내고 하나도 없을 때 오라고 하면 갈라고 할지 모르는데, 하나라도 앞에 남기고 갈 사람 아니여. 내가 아들 성품을 딱 알아부러. 내가 들어갈 놈이라도 '나는 뒤에 들어갈랑께…. 니가 들어가라' 그럴 사람이라고. 성품이 그래."

"질(제일)로 나는 뭐가 걱정이냐면 그 단식해가지고 몸 축나가지고 어떻게 있는지 그게 젤로 걱정이여. 주사라도 좋은 거 맞혀 가지고 들어가면 쓰겄는디, 그런 것을 못한다고 하니까 내가 안쓰러워 죽겄어."

"자랑스럽기는 말도 못하게 자랑스럽지. 내가 못 갈쳐 가지고 고생한 것이 제일 한이고. 아들한테 죄송하게 되얐지. 편지 오면 잘 읽어 보제. 저 참에 거시기할 때는 편지를 보듬고 잤당께여. 내 팔순 때 찍은 사진에, …여 있네 놀러가 찍었어…. 어쨌든지 내가 밥을 남길라도 안 남기고 다 먹는당께로, 우리 아들 건강한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와서."

"아이고, 우리 아들을 위해서 고상하신 양반들 감사하고 또 감사헌디 허시던 중에 더 힘 좀 쓰셔가지고 하루라도 더 앞당겨서 나오게 해주시오. 사람을 죽였을까, 도둑질을 했을까, 서민을 위해서 살자는 노릇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죄라고 하니까 죄값은 받아야 해도… 여러분이 생각해서 죄 좀 감해주시면 쓰겄소. 아이고, 이 추위에 좋은 일에 추위나 안 닥쳤으면 살겄네 . 저번 날에 눈이 오니까 문을 다 열어놓고 보면서 나는 따순 데로 들어가는데 우리 아들은 어째야쓰까…."

'한상균 석방 콘서트'가 열립니다

한상균 석방 콘서트를 준비하며 모은 조각보 성명에 영실님은 "함께 살고자 한 것이 죄라면, 죄 없는 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붙여주었다. 신승포님은 "옳은 것이 틀린 것을 이기는 사회를 위해서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최승우님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이 죄입니까?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는 게 죄입니까? 이 나라의 정의는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했다.

한마디의 조각을 더 붙이고 싶었다. 한상균의 어머니 임선복님의 말… "서민을 위해서 고생을 하니까 죄라 생각하지 말고, 고생이라 생각하지 말고…." 뜨겁게 올라오는 그리움을 작은 물병 하나로 다스리며,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그이의 말을 보태야겠다. 한상균을 기다리는,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말이다.

"우리는 한상균이 무죄라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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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석방 콘서트 포스터 ⓒ 한상균을기다리는사람들


한상균 석방 콘서트
일시 : 2016년 1월 21일(목) 오후 7시
장소 :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지하 대성당
소셜펀치 www.socialfunch.org/hsgfree

한상균을 기다리는 사람들[김덕진, 이은정(천주교인권위), 고동민(쌍용차지부), 박진, 아샤(다산인권센터), 배서영(4.16연대), 유명희(노동자뉴스제작단), 박병우, 곽이경(민주노총), 지정환(공연기획자)]

#한상균 #한상균 석방 #한상균 석방 문화제 #한상균 석방 콘서트 #한상균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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