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양양산불의 악몽을 떠올린 화재현장

의용소방대원들의 화재현장 출동과 화재진압

등록 2016.01.19 18:19수정 2016.01.19 18: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독한 겨울가뭄에 한파까지 몰려와 강이 말라간다. 양양군 실내체육관을 들렀다 집에 돌아오는 길,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작은 불씨라도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화마로 돌변할 수 있는 조건이다. 10여 년 전 양양산불로 낙산사가 전소될 때도 이런 날씨였다. 뻣뻣한 은박매트가 비닐처럼 나부낀다.


a

한파 속 강풍 양양군에 1월 18일 낮부터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며 강풍이 불었다. 어디에선가 바람에 날려온 은박매트가 비닐처럼 전기줄에 걸려 나부낀다. ⓒ 정덕수


대청봉 방향으로 해발 1400m 이상 되어야 눈이 조금 보일 정도로 이번 겨울은 가뭄이 극심하다. 11월로 접어들었을 때 보름 동안 엄청난 초겨울비가 내릴 때만 해도 가뭄이 아니라 수해가 발생할까 걱정스러웠다.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더니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저녁, 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오후 5시 50분 무렵 "서면 장승리 방향 일양레미콘 근처 민가 화재발생! 긴급출동바람"이란 메시지가 들어왔다.

서면 장승리 초입의 화재가 발생했다는 지점은 대청봉과 화채봉 방향으로 훤히 트인 위치로 양쪽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세찬 곳이다. 콜택시를 부른 뒤 소방대출동복을 챙겨 입고 헤드랜턴과 칼, 스마트폰을 준비해 집 앞으로 나가 도착한 택시를 탔다.

"장승리와 서선리 갈림길 근처에 불이 났다니 그곳으로 갑시다." 
"불이 크게 난 모양이죠?" 
"아직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바람 때문에 걱정입니다. 산으로 옮겨 붙지는 말아야 할일인데 말입니다." 
"그러면 정말 큰일이죠. 오늘 같은 날은 산에 옮겨 붙으면 끌 수도 없을 거 아녜요?"

서면 면사무소에서 양양광업소 방향으로 접어들자 매캐한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도로에 세워진 수많은 차량들이 보이고, 양양관내의 소방차들이 모두 출동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택시비부터 던지듯 지불하고 소방호스가 어지럽게 깔린 길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물을 뿜어대는 소방호스 주변엔 연결부에서 샌 물이 얼어 빙판을 이루었다.


a

화재현장 1월 18일 강풍이 부는 가운데 발생한 설악산에서 멀지 않은 화재현장에 출동한 양양소방서와 양양군의 각 읍면 의용소방대가 화재진압을 하고있다. ⓒ 정덕수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은 이럴 때 사용한다. 뒤로 약간의 둔덕이 있고, 전면에 도로를 낀 민가에서 불이 났는데 앞뒤로 소방차가 접근할 수 있는 도로가 있다. 그리고 엄청난 분량의 통나무들이 쌓인 곳에서 불길이 일고, 물을 뿌려 연기와 수증기가 뒤섞여 소란스러움을 증폭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강풍 속에서도 민가 일부만 태우고 큰 불은 잡았다.

만에 하나 조금만 늦었어도 산자락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면 '양양·낙산사 산불'로 명명된 2005년 4월 4일 발생해 4월 6일까지 양양군에서 발생했던 산불과 같은 사태로 번졌을 것이다. 당시 '양강지풍'이라 불리는 봄철 백두대간의 동쪽에 부는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진 불길로 낙산사가 소실되면서 중요한 문화재들이 불에 타는 쓰라린 경험을 양양군은 간직하고 있다.

a

화재진압 양양소방서의 소방관들과 양양군의 각 읍면 의용소방대원들이 출동해 1월 18일 저녁 발생한 민가의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 정덕수


헤드랜턴을 켜고 소방호스를 펴주며 불길이 잡힌 곳에 남은 불씨들을 샅샅이 수색하다 그때서야 "사진 촬영을 해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의용소방대별로 출동한 근거가 있어야 되는데 혼란스러운 탓에 현장에서 사진 촬영을 빠트릴 때가 많다.

장갑을 벗고 사진촬영을 하다 보니 이내 손이 저릴 정도로 시렸다.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고 굵은 통나무들을 옮기며 잔불 정리를 할 때서야 서면여성의용소방대원들이 커피를 준비해 나눠주기 시작했다.

a

화재현장 화목보일러에 사용할 화목들에 붙은 불길을 잡으며 축사에서 꺼낸 나무들이 쌓여있다. ⓒ 정덕수


축사로 사용하던 곳과 화목보일러실, 그리고 벽면을 따라 지붕까지 빼곡하게 채웠던 통나무들이 절반 이상 탈 정도로 불길은 대단했다. 주방과 마루, 두 개의 방을 그나마 수리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화재를 진압했다.

a

잔불정리 화재현장에서는 마지막 잔불까지 모두 확인해야 된다. ⓒ 정덕수


커피 한 잔을 마신고 남은 불씨가 있는지 헤드랜턴을 켜고 샅샅이 살피는데 보일러실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감식반이 발화지점을 찾던 곳이기는 하지만, 보일러실에도 바짝 마른 통나무들이 가득한데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니 다급하게 보일러 위의 재를 꺼내는 뚜껑을 열었으나 불은 보이지 않았다. 연기만 자욱하게 피는 속을 철근토막으로 파냈다. 연기는 더 심하게 피어올랐다.

a

잔불정리 화재현장을 샅샅이 살피며 잔불을 정리하는 도중 화목보일러에서 다시 일어난 불을 끄는 소방대원들. ⓒ 정덕수


통나무들을 몇 사람의 대원의 도움을 받아 치운 뒤 화목을 집어넣는 전면의 커다란 뚜껑을 열수 있었다. 보일러 속엔 이제 막 화목을 가득 넣은 것처럼 통나무들이 가득한데 불이 붙어 타고 있었다. 처음부터 불이 타고 있었는지, 아니면 주변의 통나무들이 불에 타다보니 그 열기로 불이 옮겨 붙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관창수를 불러 물을 뿌린 뒤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보일러 내부의 나무들을 꺼냈다.

엄청난 양의 물을 뿌렸어도 밖으로 끄집어낸 나무에선 곧장 불길을 살아났다. 방화장갑을 낀 소방대원과 교대를 한 다음에야 기침이 나왔다. 방화방수기능이 있는 장갑을 소방관들도 사비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의용소방대원들에게 지급될 일이란 없을 것 같다. 헤드랜턴도 등산을 다니니 갖추고 있고, 의용소방대원들이 지급받은 출동복은 불길을 차단하는 기능 자체가 없다.

a

화재진압을 마친 뒤의 의용소방대원들 산불이나 주택 등 어느 곳에서 발생하던 화재현장은 물론이고 산악사고 현장에서도 열심히 활동하는 의용소방대원들. ⓒ 정덕수


오후 7시 40분, 더 이상의 위험한 일은 없다는 확인 과정을 거치고 소방차들이 빠져나갈 때서야 집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양양산불 #설악산 #화재현장 #화재진압 #의용소방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