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 겨울에는 이렇게 노는 거야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53] 꽁꽁 얼은 한강 위의 삼남매

등록 2016.01.28 08:25수정 2016.01.2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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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좀 봐바 산들이의 만행 ⓒ 양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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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좀 봐바 까꿍이의 만행 ⓒ 정가람


정말이지 너무도 추운 겨울입니다. 서울의 기온이 모스크바보다 낮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싶더니, 제주도에서는 많은 이들이 폭설과 한파로 오랫동안 발이 묶이질 않나,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파트에서 20년 넘은 주택으로 이사 온 덕에 추위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데요. 외풍을 막기 위해 틈마다 붙인 비닐과 테이프들 때문에 집안은 어느새 알록달록합니다. 그럼에도 역시 추운 건 매한가지구요. 오늘은 결국 수도관이 터져 아침 내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답니다.

그러나 이런 외풍 잡기보다 힘든 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집에서 심심하다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입니다. 방학을 맞아 집에 있지만 너무 추워서 딱히 나갈 곳도 없는 아이들. 물론 집에서 책이나 TV를 보고 장남감을 가지고 놀아도 되겠지만 그 나이에 집에만 붙어 있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눈썰매나 워터파크도 놀러가지만 그것은 아주 가끔 있는 연중 행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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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한강 위 여기가 강이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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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위를 걷는 산들이 얼음두께 확인 중 ⓒ 정가람


그런데 며칠 전, 다행히 이런 아이들의 무료함을 달래줄 곳을 발견했습니다. 집으로부터 발품을 얼마 팔지 않아도 되고, 전부 무료이며,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곳.

바로 한강이었습니다. 꽁꽁 얼어버린 한강. 강가에 도착한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썰매를 탔고, 미끄러운 얼음으로 기상천외한 놀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놀이가 진정한 학습이란 것을 부모에게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덮힌 한강은 설원으로 변해버렸고, 아이들은 며칠 전 안전을 확인한 곳까지 자신들만의 놀이터로 만들었습니다. 눈싸움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 역시나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장난감은 자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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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눈이야 빙판 위에서 ⓒ 양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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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나란히 겨울에는 눈밭에서 ⓒ 양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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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캔버스 눈밭은 캔버스다 ⓒ 양정언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특별하게 키우겠노라고 항상 새롭고 반짝이는 것을 찾아가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투박한 우리들의 일상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봄에는 봄의 놀이를, 여름에는 여름의 놀이를, 가을에는 가을의 놀이를, 겨울에는 겨울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쑥쑥 커갑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절기를 인지했던 방법이고, 또 앞으로 아이들이 과거 선인들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홀로 걷는 산들이의 발자국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서산대사의 그 유명한 시조 한 수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 갈 때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러이 발걸음을 내딛지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


눈놀이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아이들이 와서 귓속에다 대고 소곤댑니다. 이번 겨울에 오늘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역시나 아이들에게 겨울은 눈과 얼음인가 봅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듯이.부디 아이들의 오늘이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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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신난 아이들 아이들은 겨울을 무엇으로 연상할까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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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 한강 위 ⓒ 정가람


#육아일기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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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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