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전병욱 목사 판결 유감

[주장] 한국교회의 자정능력 상실 보여줘

등록 2016.02.03 10:49수정 2016.02.0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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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일보에 게재된 판결문 ⓒ 신창조


성추행 사건으로 교계에서는 물론 사회에서도 큰 논란이 되었던 전병욱 목사에 대한 판결이 지난 2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지인 <기독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사법적 판결이 아닌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아래 '평양노회')가 실시한 자체 재판 결과이다. 판결문은 아래와 같다.

"제 100회 총회에서 결의하여 평양노회에 맡겨주신 전병욱 목사의 '여성도 성추행 건'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여 그 결과를 보고합니다.

2010년 수면 위에 떠올랐던 이 사건은 지난 6년여 기간 동안 한국교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부흥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을 하였습니다. 금번 임시노회를 통해서 세워진 평양노회 재판국에서는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하여 정당한 판결을 하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전목사의 '여성도 추행건'의 진상은 그간 언론에 의해 부풀려져 알려진 것과는 상당부분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확인된 일부 사실에 대해 합당한 징계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전목사는 이 사건에 대하여 윤리적, 도덕적인 책임을 지고 17여 년 동안 청년목회를 통해 부흥시킨 2만여 명의 성도와 253억 원의 현금을 남겨놓은 채 2010년 12월경 삼일교회를 떠나 사임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1)사임 후 2년 내 개척금지 약속이나, (2)수도권 개척 금지 약속, (3)1억 원의 성 중독 치료비 지급에 대한 건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최근에 현재 삼일교회 시무장로로 사역하는 박OO 장로가 양심고백을 하였고, 전목사와 장로들을 포함한 교회 관계자들 사이에는 그런 약속을 한 어떤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전목사 사임 후 장로들 사이에서는 그런 논의가 있었으나 당사자인 전목사와는 약속한 바가 없었다는 것이 양측 대질 심문 결과 밝혀졌습니다.

전목사는 2010년 12월 모든 책임을 지고 전격 사임함으로 자신의 과오를 책임지려 했고 그 후 현재까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도전과 고난을 받으며 절망의 골짜기를 통과했습니다. 주님도 간음 중 현장에서 잡혔던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시며 용서해 주셨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비록 과거 불미스러운 일로 한국 기독교계에 씻지 못할 누를 끼치고 무장해제를 했지만 어떠한 잘못도 무한히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힘입어 재기의 은혜를 통해 다시 한 번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철저히 낮아지고 과거의 잘못을 통회하며 회개하는 전목사에게 너그러운 손길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저희 평양노회 재판국원들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고뇌하며 어려운 판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이제 이 문제로 더 이상 한국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우리 교단 총회에 상처를 주고 고귀한 영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이어 공직정지 2년, 기간 중 강도권 2개월 정지, 사과문 개제라는 징계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목사직과 현재 시무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직은 보전되는 것이다.

포털사이트의 인기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릴 정도로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던 사건이었던 만큼 판결 또한 SNS상에서 빠르게 퍼져나가며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자정능력 잃은 교회... 정의는 실종됐다

판결문의 문장들을 통해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자.

① "이 사건은 지난 6년여 기간 동안 한국교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부흥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을 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본 사건은 교계 밖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킬 만큼 무거운 사안이었다. 그런데 위 문장은 평양노회가 본 사건을 교회부흥의 걸림돌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양노회는 이번 사건이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는 것이 불편했고,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다는 뉘앙스가 읽힌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평양노회가 본 사건을 신중하고 성의 있게 처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처음부터 힘들었던 것이다.

② "부흥시킨 2만여 명의 성도와 253억 원의 현금을 남겨놓은 채"

교회의 성도와 "현금"으로 표현된 수많은 헌금은 목사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성도들이 교회의 일을 위해 모은 돈인 만큼 교회공동의 재산이고, 목사는 그것을 사사로이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판결문에서는 전목사가 성도와 교회재산을 남겨두고 교회를 떠난 것이 큰 희생인 듯 표현하며 그 행위를 충분한 반성의 행동으로 보고 있다. 특히나 문장에 쓰인 "현금"이라는 단어는 한국교회의 속물적 근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③ "비록 과거 불미스러운 일로 한국 기독교계에 씻지 못할 누를 끼치고 무장해제를 했지만 어떠한 잘못도 무한히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힘입어 재기의 은혜를 통해 다시 한 번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뉴스를 통해 한국교회가 얼마나 많은 정죄를 해왔는지 전 국민이 아는 상황에서 위 문장은 굉장히 이질적으로 비추어진다. 외부인에게는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으면서 내부인만을 철저하게 챙기는 이중적인 모습은 지금 한국교회가 대내외적으로 비난받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또한 피해 당사자가 아닌 평양노회가 용서를 권하는 것은 권한을 넘는 일이다. 이는 또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피해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④ "바라기는 이제 이 문제로 더 이상 한국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우리 교단 총회에 상처를 주고 고귀한 영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판결문의 마무리 문장은 본 사건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이들과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올바르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의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든다. 본 사건의 처리과정을 "에너지 낭비"라고 표현하는 부분은 한국교회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철저히 반성하고 문제의 근본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부흥, 즉, 성장에 방해가 되는 귀찮은 잡음 정도로 생각하고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덮고 지나가려 하는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판결은 사실상 이 문제를 조용히 덮고 지나가자는 의도로 보인다. 본 판결이 교단 내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진 총회의 정식 재판을 통해 나온 판결이라는 사실이 많은 교인들을 절망시키고 있다. 이는 사실상 교회가 자정능력을 완벽히 잃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본 사건은 단순히 개별사건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교회 안에서 벌어진 사건 중 사안이 가장 중대한 사건이었고, 가장 이슈화 되었던 만큼, 본 사건에 대한 처리는 곧 교회 안에 최소한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그 기회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마무리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 정치 안에 정의가 없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분노한 교인들은 판결에 불복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교회의 지도부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교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관심을 통해 진상이 규명되고, 많은 이들이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처리될 수 있을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전병욱 #평양노회 #한국교회 #홍대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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