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 등장하는 일진들... '미화'일까, '묘사'일까

[주장] '일진 미화' 논란에 휩싸인 웹툰, 콘텐츠의 영향력 생각해야

등록 2016.02.11 19:48수정 2016.02.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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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됐다', '개 빡쳤어', '처맞을라고.'

한 웹툰에 등장하는 대사다. 여러 번 이런 대사들이 반복된다. 이 대사를 읊는 주인공들은 청소년이고 학생이지만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 때로는 약한 아이들을 힘으로 제압하며 괴롭힌다.


독서실에서는 '까드득'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조용히 하라는 아이들에게는 욕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 '폼나고 멋있어서'다. 그들은 설레는 연애를 하고, 진한 우정을 쌓는다. 이들은 소위 '일진'들이다.

웹툰에서 '일진'이 인기다. 모 포털의 상위에 올라가 있는 웹툰은 대다수가 소위 '일진물'이다. 일단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이 일진이고, 배경은 '평범하지 않은' 학교다. <일진의 크기>뿐 아니라, <연애혁명>, <복학왕>, <외모지상주의>, <프리드로우> 등을 '일진물'로 분류할 수 있다.

웹툰 인기 연재작 중 상위권에 있는 다수가 '일진물'이라는 것은, 다수의 독자에게 이러한 '일진물'이 인기가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먼저 웹툰은 접근하는 연령층이 비교적 낮고 가볍게 읽히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그렇다. 청소년층에게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학교를 배경으로 해, 문제를 잘 일으키는 일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토리가 많은 이유다.

동시에 '일진 미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단순히 일진을 소재로 해 그들의 학교생활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을 '미화'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면서 대중들에게 '일진'의 존재는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툭하면 연예인들의 일진 논란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웹툰은 일진을 어떻게 다루고 있기에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

일진도 '알고 보면 착한' 놈?


'왕따를 당하던 내게 잘생기고 몸이 좋은 다른 몸이 하나 더 생긴다면?' <외모지상주의>는 이러한 상상력을 풀어나간 웹툰이다. 다른 몸이 생긴 주인공 박형석이 학교에서 받는 대우는 천지 차이다. 낮에는 일진 무리에 끼어 그들과 어울려 다닌다.

저녁에는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괴롭힘을 당한다. 똑같은 박형석이지만 외모 하나만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웹툰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외모지상주의'의 모순이다. 그런 면에서 초반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되어 가면서 '일진을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외모가 바뀐 박형석이 얻은 일종의 혜택은 일진 무리에 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고 몸이 좋아 남들에게 무시 받지 않는다는 설정이 일진을 정당화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스스로가 자신감이 없고 살을 빼려고 노력하지 않아서"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일진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이유를 피해자의 탓으로 돌린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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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웹툰 <외모지상주의> 캡쳐 ⓒ 김가윤


또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의 대부분이 일진이다. 그러다 보니 일진들은 단순 가해자에서 '알고 보니 착한 놈'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등장인물 이진성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주인공 박형석을 가차 없이 발로 밟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냥 깡패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미진이와 관련된 일에만 폭발하는 거였다"며 여자 친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된다. 바스코라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힘을 통해 쉽게 상대방을 제압하며 두목처럼 양옆에 친구들을 끌고 다니지만, 과거에 왕따를 당했던 경험이 있어 애틋한 감정이 들게 하는 인물이 된다. 두 인물 모두 힘이 세 일진의 자리에 있지만, 실은 순수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추억도, 연애도 '일진' 중심?

작가는 '왜 굳이 일진을?'이라는 비판에 부딪혔다. 여자 친구를 챙기는 인물, 과거에 따돌림을 당했던 인물의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데 굳이 일진이라는 자리가 필요했느냐는 것이다. 이는 최근 들어 웹툰에 '일진'이라는 키워드가 지나치게 많이 포함된 추세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연애·우정·가족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가 일진, 그들의 이야기가 될 필요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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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웹툰 <연애혁명> 캡쳐 ⓒ 김가윤


<연애혁명>은 등장인물인 이경우 에피소드에 들어 '일진 미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은 학교 구석에서 담배를 피운다. 친구들끼리 모여 술 게임을 하며 술을 마시기도 한다. 몇몇 독자들은 이를 보고 단순히 일진을 '묘사'한다고만 느끼지 않았다. '일진혁명'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 독자들은 덧글로 불쾌감을 표시하곤 했다.

"이번 화는 담배 피우는 장면이 절반이다"라거나, "볼수록 싫어진다. 일진이다 뭐다 이런 애들 정말 싫다"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반면 "실제 중학생들은 이렇다. 미화가 아니다"라거나, "스토리 진행 상 필요한 부분이다"라는 반박 댓글도 많은 '좋아요'를 기록했다. 이렇듯 일진을 소재로 한 웹툰은 이렇게 '미화' 논란에 휩싸이기 쉽다.

"다시 크게 해서 일진이 되게 해 달라."

다음(Daum) 웹툰에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일진의 크기>에 달렸던 댓글이다. <일진의 크기>는 과거 일진이었던 주인공 최장신이 작아지며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내용이다. 최장신이 일진이었을 때 자주 사용했던 말은 '죽는다', '야, 셔틀'이었다.

주인공은 다른 애들을 내려다보며 "이 X만한 새X야"라고 습관처럼 말한다. 이랬던 최장신을 어느새 독자들이 응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공이 작아지고 나서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이 되자, 일진들에게 복수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일진을 응원하는 상황이 생기자, <일진의 크기> 역시도 '일진 미화' 시비에 붙은 바 있다.

일진을 다루면서도 '미화'하지 않은 웹툰은?

포털 검색창에 <일진의 크기>를 치면 연관 검색어로 '일진 미화'라는 단어가 붙어 나온다. 이 단어가 한 때는 실시간 검색어에 뜨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웹툰에서 그려지는 일진의 모습이 미화됐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당시 <일진의 크기>를 지원하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일진 미화는 왜곡된 것이고, 검토해본 결과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며 해명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최장신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시작하며 '일진 미화'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괴롭히던 애들을 혼내주면 또 다시 그 자리에 다른 일진이 생길 거라"며 '일진이 없는 교실'을 그려내 우려를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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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웹툰 <복학왕> 캡쳐 ⓒ 김가윤


마찬가지로 일진을 그려냈지만 미화한다는 평을 받지 않은 웹툰이 있다. <패션왕>, <복학왕>이다. 설정 면에서는 <외모지상주의>나 <연애혁명>과는 다를 바가 없다. 공부만 하던 주인공 우기명이 꾸미기 시작하면서부터 '노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내용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의 찬사를 받으며, 인기를 즐긴다. 일진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좋아하던 여자 친구와 연애도 하며, 다른 아이들이 못하는 술, 담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웹툰 역시도 '일진 미화'가 아닌가 싶다.

웹툰을 본 많은 독자들은 '저렇게 살면 안 된다'고 느낀다. 작가는 '일진 놀이'와 그로 인해 학창시절 얻을 수 있었던 인기에 심취해 있던 우기명에게 현실을 안겨줬다. 공부를 하지 않고 놀다가 원서만 쓰면 붙여주는 기안대에 들어가고, 거기서 자신의 보이지 않는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이 웹툰이 단순히 '노는 아이들'을 미화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진을 '묘사'했을 뿐, '미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기명은 잘못한 일을 하면 사회봉사도 해야 했고, 도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전전하기도 했다. 대학교에서도 아이들 위에 군림해 실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변변한 직장을 찾지 못하고 좌절을 거듭해야 했다.

하지만 '일진물'에서의 결말이 이렇게 권선징악으로 가는 것만이 옳다고 판단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복학왕>의 재미요소가 결말이 주는 현실풍자에 있었던 것처럼, '일진 미화' 논란이 있었던 다른 웹툰도 그만의 재미요소를 통해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일진 미화' 논란은 갈팡질팡

단순히 '일진 미화'를 작가들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똑같이 외모지상주의를 지적했던 다른 웹툰보다 <외모지상주의>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그 웹툰의 설정이나 배경, 스토리들이 독자들에게 재미요소로 다가갔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 역시도 '미화'에 있지는 않았다.

<연애혁명> 작가인 232는 한 인터뷰에서 "술, 담배하는 아이들이 나온다고 그게 미화일까. 나는 그런 모습에 대해 한 번도 멋있거나 아름답게 포장한 적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할 뿐"이라고 했다. 상당수의 독자들 역시도 "웹툰은 웹툰이다"라고 얘기한다. 재미로 보는 것일 뿐, 이것 때문에 일진을 멋있게 생각한다거나 그들을 따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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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캡쳐 ⓒ 김가윤


앞으로도 '일진 미화'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과거에 비해 일진에 의한 학교폭력을 사회문제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언급한 웹툰들은 학교폭력의 원인이 되는 힘의 우열을 인정하고 미화시켜서 논란이 됐다. 웹툰을 접하는 많은 이들이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심지어 '멋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독자 중에서는 한 때 학교폭력의 '피해자'로서 일진들이 이렇게 그려지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다. 가해자인 일진과 피해자인 다수의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단순 재미요소로만 다뤄지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다.

웹툰이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으며, 웹툰의 영향력 역시도 강해졌다. 웹툰은 이미 대중과 소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창이 됐다. 그렇다면 웹툰은 어떤 콘텐츠를 담아야 할까. 이렇듯 '일진'을 다루는 웹툰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또 이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독자들이 만들어진 '일진 미화' 논란은 어떠한가. '일진 미화' 논란은 대중성이 높아지는 웹툰이 풀어야 할 하나의 숙제가 됐다.
#웹툰 #일진미화 #외모지상주의 #연애혁명 #복학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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