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에 사람이..." 컨테이너 속에선 무슨 일이

주위를 돌아보면... 작은 관심이 필요한 이웃들이 많습니다

등록 2016.02.22 17:45수정 2016.02.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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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사람이 산다... ⓒ 신광태


"박스도 뜯지 않은 42인치 벽걸이 TV가 한 대 있는데, 어디 줄 데 있을까요?"
"진짜 필요한 집이 있는데…, 지금 같이 갈 수 있으세요?"



사내의용소방대장 조창환씨와 찾은 5평 남짓한 컨테이너. 한아무개씨(62)가 기거하는 곳이다. 그는 1992년 목도를 이용해 전봇대를 옮기다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이후 컨테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한아무개씨는 기초생활 수급자 중 생계·의료·주거 급여 수급자로 분류돼 정부로부터 매월 27만 원을 지원받고 있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여러 모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 보였다.

다친 허리 때문일까. 한씨에게 노전증(간질)까지 겹쳤다. 그가 아흔 홀어머니 집 부근에 컨테이너를 설치한 이유다. 집안은 어수선했다. 노모는 나이 든 자식을 수발하는 데 한계에 이른 모양이다. 물병과 먹다 남긴 음식물이 한쪽 귀퉁이에 널브러져있다.  50여 미터 떨어진 어머님 집에서 식수와 음식물을 가져온다고 했다.

한 씨가 사는 컨테이너 내부, 거동이 불편해 청소도 힘들다. ⓒ 신광태


"뱀술이 허리에 좋다고 해, 그걸 먹어서 그래요."

한씨는 나이보다 늙어 보였다. 치아가 없어서일까, 홀쭉한 턱은 영락없는 80대 노인의 모습이다. '어쩌다 이를 다 잃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뱀술 때문이라고 했다. 허리 수술을 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허리에) 좋다는 건 뭐든 먹었다. 이가 모두 빠진 건 뱀술 때문이라고 했다.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맨땅에 장판을 깔았다. 언 땅이 뿜어내는 냉기 때문일까. 얼음판을 밟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컨테이너 맨 끝자락, 조그만 전기장판을 깔아 놓은 게 유일한 보온시설이다.


한 씨의 콘네이너, 태극기를 걸려있다. 나라사랑 의미란다. ⓒ 신광태


"불편하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세요!"

이번이 세 번째 방문. 누추한 생활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일까, '이렇게 해 드리는 건 어떠냐?'는 제안에 처음 그는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닫힌 마음을 여는 데 면장이란 직책이 한몫했다. '우리 집에 면장이 찾아온 건 처음'이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지저분한 병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이 사람이) 냄새나는 집 안에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일까, 내 농담에 그는 가끔 웃었다. 사실 난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원인을 모르겠다. 순간 '이럴 땐 이것도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m×6m 규모 컨테이너, 한쪽 끝 벽면에 맞추어 전기장판을 깔았다. 등을 벽에 기대기 위함이다. 볼록한 브라운관 14인치 TV는 반대편 벽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시력도 변변치 않은 그가 6m 거리에서 TV를 본다. 화면 속 자막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화면이 작아 소리에 의존하다 보니 차라리 라디오에 가깝다.

한 씨를 위해 14인치 TV(위)를 42인치(아래)로 교체했다. ⓒ 신광태


'좀 커다란 TV가 있었으면 좋겠다.'

첫 번째 그를 방문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조 대장, 그는 마치 영화 <홍반장> 같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니…."

조 대장도 딱한 모양이다. TV 교체 후 나오면서 '더 필요한 게 뭐냐?'는 질문에 한씨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됐어요. 제발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된다고…."


한씨는 연탄 값이 걱정됐던 모양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에 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조 대장은 '컨테이너 안 물건을 모두 들어내고, 시멘트 공사 후 양성까지 걸리는 기간은 대략 15일은 소요될 것 같다'고 했다. (한씨가 임시 기거할 공간이 필요하니) 날씨가 조금 더 풀린 후 공사를 착수하기로 했다.

조창환 대장은 전기·보일러 전문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현장에 달려가는 것도 그다. 생업보다 타인 재산보호가 우선이란 생각이 강하다. 20년 의용소방대 봉사활동을 하면서 산불을 포함해 300여 회 출동했단다. 휴일엔 봉사활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 <홍반장> 같은 존재다.

이제 남은 일은... 생수, 밥솥, 울타리 설치

이제 남은 과제는 컨테이너 주변 울타리 보수다. ⓒ 신광태



"물 떠 오는 것과 밥솥이 고장이 나서…. 또 울타리가 다 망가졌어요."

TV 교체 후 나오면서 '더 필요한 게 뭐냐?'는 질문에 한씨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기자의 생수 지원 부탁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사실 한씨와의 만남은 시민단체 '좋은 이웃' 회장인 한옥희씨의 소개로 이뤄졌다. '좋은 이웃'은 기초생활 수급자 중 급여가 적은 대상자를 비롯해, 자녀가 있지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단체다. 며칠 전 '면장님이 한 번 들러봐야 할 집이 있다'며 나를 그곳으로 안내했다. '회장님 덕분에 TV를 교체해 드렸다'는 인사말에 그녀는 "밥솥도 고장이 났던데, 그건 우리가 사드리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이제 울타리만 남았다. 컨테이너 주위에 나뭇가지를 촘촘히 꽂아놓은 구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뭇가지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밖에서 보면 미관상 좋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낄지 모른다'는 것이 울타리 수선 요구의 이유다.

한 씨가 사용하는 화장실, 이 또한 조속히 해결 하기로 했다. ⓒ 신광태


"좋은 일 한번 합시다."

사회단체장들과 모임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이 같은 제안을 해볼 생각이다. 긴 설명보다 이 기사를 출력해 읽어 보도록 권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조창환 #사내면 의용소방대장 #사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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