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이불로 총탄 막고... 명량대첩은 이랬다

전라도 백성들과 함께 조선수군 재건해 이룬 명량대첩

등록 2016.03.11 14:29수정 2016.03.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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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과 일본군 간의 전투는 치열하게 펼쳐졌다. 사진은 전라남도 주최 명량대첩축제 때 재현된 해상전투 장면이다. ⓒ 이돈삼


조선수군의 일제 공격에 적선은 갈팡질팡했다. 판옥선을 거북배로 꾸민 탓에 예전처럼 함대에 기어올라 백병전을 펼 수도 없었다. 일본군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선수군의 화력이 만만치 않았다. 수군들의 저항도 거셌다.

겁없이 다가온 적선들이 황당해하더니 어찌할 줄을 몰랐다. 조선 수군은 그 틈을 이용해 적선에 불을 붙였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불을 놓았다. 그 불이 옆의 적선으로 옮겨 붙었다. 이순신은 함선 위에서 병사들에게 계속 외쳤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을 것이다(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라!"

이렇게 시작된 전투가 한낮까지 계속됐다. 바다의 물살은 간조와 만조가 평형을 이뤄 잔잔했다. 중천에 떠있던 해가 서쪽으로 약간 기울 무렵이었다. 간조였던 바닷물이 만조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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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당시 해전도. 조선수군은 울돌목에서 일본군과 맞섰다.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에 세워져 있는 그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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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수군과 일본군은 조류가 거센 울돌목에서 치열한 격전을 펼쳤다. 이순신 장군이 거센 물살을 이용한 전략을 짜고 일본군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 이돈삼


바닷물의 흐름이 소수의 전선으로 싸우는 조선 수군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반대로 전선이 많은 일본군에는 불리한 물흐름이었다. 덕분에 조선 수군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부담없이 적선을 공략했다.

거제현령 안위와 중군장 미조첨사 김응함의 배가 앞으로 나아가 적선을 쳐부쉈다. 안위와 함께 전함을 탄 수군들은 긴 창과 수마석으로 일본군을 공격했다. 안위의 군사들이 먼저 공격을 하고 나면 이순신은 화포를 쏴 적선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활시위를 당기는 군관들도 매한가지였다. 얼마나 많이 활시위를 당겼는지, 손가락이 칼에 벤 것처럼 상처투성이였다. 수군의 뒤에 선 주민들은 맨몸으로 적선의 접근을 막아냈다. 솜이불로 적선에서 날아오는 총탄을 막기도 했다. 말 그대로 죽음을 무릅쓴 싸움이었다.


이순신은 "적이 천 척이라도 우리 배에게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일체 힘을 다해서 적선에게 포를 쏴라!"고 외쳤다. 전라우수사 김억추, 녹도만호 송여종, 평산포대장 정응두, 순천부사 권준 등 여러 장수와 병사들이 지자총통과 현자포, 화살을 빗발처럼 쏘았다. 지자총통, 현자총통의 포성이 강산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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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을 것이다. 울돌목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에서 명량대첩 당시 장군의 함성이 들리는 듯 하다. ⓒ 이돈삼


서북풍을 탄 수군의 함대가 적선을 차례로 공격했다. 조선 수군은 나팔 신호에 따라 화공술로 무장한 왜선을 한꺼번에 공격했다. 적선 진영으로 연기와 불길이 가득했다. 조선 수군의 포격을 받은 적선 3척이 격침됐다. 분파되는 적선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갔다.

이순신은 김억추에게 일본군의 지휘관을 집중 공격토록 명령했다. 일본군 지휘관들은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금빛의 투구를 쓰고 함선의 2층에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조선 수군의 사격으로 적장이 하나 둘 함선에서 바다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준사가 소리쳤다.

"장군님! 꽃무늬 옷을 입은 저기, 저 자가 왜장 마다시(구루시마 미치후사)입니다."

준사는 일본군에서 투항해 온 병사였다. 그래서 적장의 얼굴을 금세 알아봤다. 이순신은 물을 긷는 병사 김석손에게 물에 떠다니는 적장의 사체를 끌어올리도록 했다. 사체를 다시 확인한 준사가 마다시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이순신은 마다시의 목을 베어 함대 위에 높이 매달았다. 일본군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마다시의 주검을 확인한 일본군이 크게 동요했다. 금세 뱃머리를 돌리는 배도 보였다. 일본군의 사기가 꺾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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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수군은 화공술로 무장한 왜선을 한꺼번에 공격하자 적선 진영에서 연기와 불길이 가득했다. 사진은 전라남도 주최 명량대첩축제 때 해상전투 재현 장면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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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 있는 정유재란 순절묘역. 명량대첩 때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조선수군과 군사들의 무덤이다. ⓒ 이돈삼


이 모습을 본 이순신은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조선의 수군들은 북을 더 크게 울리고 함성을 질러 일본군의 심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자총통, 현자총통을 동원한 포격도 더 매서워졌다.

승기를 잡은 조선 수군은 크고 작은 화살을 모두 적선으로 쏘아댔다. 적선이 갈팡질팡하고 일본군이 혼비백산했다. 벌써 저만치 도망친 적선도 부지기수였다. 울돌목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적선 31척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망자도 4000명을 헤아렸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적선은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줄행랑이었다.

이순신이 탄 배에서 다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승리를 알리는 북소리였다. 조선의 수군들은 울돌목이 떠나가도록 승리의 함성을 외쳤다. 승전가가 명량의 바다에 울려 퍼졌다. 칠천량 전투에서 패하면서 잃은 제해권을 두 달여 만에 다시 장악하는 순간이었다.

짜릿한 대역전승, 13척으로 일군 승리였다. 전라도 백성들의 헌신적인 참여로 조선 수군을 재건해 이룬 승리였다. 목숨까지 내던진 전라도 의병과 백성들의 희생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이순신이 4년 전(1593년)에 명쾌하게 정리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였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었다는 말 한 마디로 정리되는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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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왜덕산. 명량대첩 때 숨진 일본군이 파도에 떠밀려 바닷가로 밀려오자 진도주민들이 거둬 묻어준 무덤이다. 왜군에 덕을 베푼 산이라고 왜덕산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남도 이순신길 조선수군재건로 고증 및 기초조사(전라남도), 이순신의 수군재건 활동과 명량대첩(노기욱, 역사문화원), 명량 이순신(노기욱,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등을 참고했습니다. 지난 11월과 12월 두 차례 답사했습니다.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선수군재건 #이순신 #명량대첩 #약무호남 시무국가 #필사즉생 필생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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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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